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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Jun 15. 2019

다음날

이책이글 64회_이글_심연_170411

남자는 오늘도 7시 정각에 일어났다.

잠은 덜 깼지만 익숙한 손길로 이불을 개고 창문을 열었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옷을 벗었다.

샴푸, 린스, 바디클린저, 바디로션.

꼼꼼하게 씻고 바르고 씻고 발랐다.


거울 앞에 앉아서 드라이기를 켰다.

그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시간이 싫었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시간.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머리를 말렸다.


옷장을 열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옷을 꺼냈다.

검은 옷이 싫어졌지만, 다시 검은 옷을 집었다.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차례로 입고, 검은 양말을 꺼냈다.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더 나빠질 일은 남아있지 않았다.


집을 나서기 전, 집안 곳곳을 둘러봤다.

정리는 잘 되어있는지, 가스 밸브는 잠겨있는지,

혹시 열려있는 창문은 없는지,

밤에 들어올 때 깜깜하니 거실 불은 켜놓고.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는 도중에 자꾸 무릎이 꺾였다.

취한 사람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고장이 났나 봐.

그는 생각했다.


일상이 무서운 이유는,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리 도망치더라도 결국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지 않으면 일상이 찾아온다.

자비는 일상의 영역이 아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한참을 참았다.

이대로 내쉬지만 않으면 간단하게 해결이 될 텐데.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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