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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번역 자영업자가 갖춰야 할 태도와 역량

번역사는 치킨집 사장과 다르지 않다

by 이태리

치킨은 서민음식의 반열에서 벗어난 지 오래됐죠. 그러니 어지간한 사람은 심혈을 기울여 주문을 고민할 것입니다. 메뉴, 가격, 음식 이미지, 배달팁, 후기 등 모든 요소를 종합해 결정하고, 결국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악평을 남길 겁니다.


그런데 번역도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번역 품질이나 자기 어필에 놀랄 만큼 무심한 번역사가 많습니다. 고객 만족의 수단만 치킨에서 글로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죠.


의사와 비교해 봐도 번역업을 대하는 일부 번역사의 마음가짐은 참 가볍습니다. 의사는 몇 년의 수련을 거쳐서 실력을 검증받고, 의료 사고가 나면 책임을 지고 지탄도 받습니다. 그런데 번역사는 진입 장벽도 낮고, 사고를 치면 감수자나 PM이 수습한니다. 매년 수백 명 이상의 신규 번역사가 시장에 쏟아지고 AI 모델이 갈수록 느는데, 설렁설렁 일하는 번역사가 경쟁에서 쉽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번역사의 경쟁력은 나를 사용하는 사람의 일손을 얼마나 덜어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번역뿐만 아니라 채용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력이 뛰어난데도 자소서 작성이나 면접 준비에 소홀한 번역사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평가할 요소가 보이지 않아 면접관이 계속 꼬치꼬치 캐묻게 됩니다. 면접관한테는 시간 낭비고, 지원자도 취조당하는 기분이 들 수 있죠. 서로에게 마이너스입니다. 치킨집 전단지에 별 내용이 없어서 손님이 전화 문의를 해야 한다면 사장과 손님 모두 시간 낭비 아닐까요?


그래서 '나'라는 치킨을 먹음직스럽게 제공하는 팁을 전달하고자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프리랜서 자리나 정규직으로 지원하려는 번역사들이 이 책을 통해 지원의 질을 높이고, 면접관들도 좀 더 손쉽게 우수한 번역사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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