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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하지만 평범하고 싶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도넛가게

by 청크리

현재 6살인 우리 아들은 유치원 특수반에 다닌다. 올해 처음으로 특수반에 입성을 하였는데 지난달 새 학기를 앞두고 나는 여러 고민이 많았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특수반의 생활이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말이 다양성을 포용하는 코리안 캐네디언이지 사실 그릇이 작은 나는 혹시라도 함께 생활하게 될 특수반 아이들이 폭력성을 띄거나 선생님들이 강압적이진 않을까 하며 걱정을 해왔다. 하지만 모든 건 기우였을 뿐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고 아이를 등원시킨 후 마음 졸이지 않으며 이렇게 글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우리 아이는 매일 아침이면 등원을 하고 오후가 되면 하원을 한다. 특수반은 통합반(일반반)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통합반 아이들과는 다른 문으로 등하원을 한다는 걸 빼고는 그 어떤 다른 점도 느낄 수 없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4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다니는 서울에 위치한 대학병원의 소아정신과 진료를 볼 때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평소에 우리 세 식구는 일상이라는 바닷속을 유영하며 '평범' 하다고 쓰여 있는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화롭고 안정된 나날들이 우리에게 가장 큰 에너지로 작용하여 마음이란 바다의 적당한 수온을 유지해 주고 따가운 땡볕에 말라죽을 것 같은 날에도 바닷물이 바닥나지 않게끔 유지해 준다.


하지만 진료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라는 바다는 출렁이기 시작하고 일상 속 여유롭게 유지하던 수온도, 수심도 결국 수직낙하를 해버리고야 만다. 가득 차 있는 욕조의 마개를 뺀 것처럼 바닷물은 소용돌이치며 바닥이 나버리고 빙하 밑 여전히 깊게 새겨진 채 두 눈을 시퍼렇게 부릅뜨고 있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실체를 드러낸다.


보통 아이가 6살 정도 되면 재잘재잘 말을 하는 걸 넘어서 어른들이 당황스러울 만큼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기도 하고 장수풍뎅이부터 화성, 토성까지 별의별 걸 다 알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박학다식한 아이들은 존재하는지도 모를 소아정신과란 곳은 아직 말이 트이지 않은 우리 아이에겐 참으로 익숙한 곳이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내게는 여전히 가슴 시린 곳이기도 하다.


물론 발달장애가 없다 해도 모든 아이들에겐 각각 예민한 면이 있고 특이한 구석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어쩌면 요즘 세상에 평범한 아이는 물론 평범한 어른조차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지 모른다. 오죽하면 발달상 아무 문제 없이 자라온 나 자신조차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내가 신경정형인 같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까.

*신경정형인(Neurotypical): 자폐나 ADHD 같은 신경다양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 즉 전형적인 뇌 발달을 보이는 사람을 뜻함.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항상 남들과는 조금 다른 외계인 같은 기분이 들던 나는 예전 글에도 자주 언급해 온 신경다양성이란 개념에 매료되었다. 그 후 나의 핸드폰 알고리즘은 신경다양성에 대한 콘텐츠를 내게 끊임없이 날라대기 바빴다. 그런 알고리즘에 빠져 우연히 클릭한 영상에서 외국의 한 언어치료사가 신경다양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됐다. 요즘 adhd나 자폐 스펙트럼이 거의 유행인 수준이라 너도나도 주요 증상에 대해 공감하는 추세지만 사실 아닌 사람은 정말 아니라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신경다양성: 자폐, ADHD, 학습장애처럼 뇌가 다르게 작동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차이로 존중하자는 개념.


신경다양인이란 마치 도넛가게에 있는 다양한 도넛과도 같아서 기본적으로는 다 같은 도넛이지만 어떤 사람은 메이플 시럽이 뿌려져 있고 어떤 사람은 초코맛이 나는 식으로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신경정형인은 어떨까? 어떤 도넛일까?’ 하고 생각하던 내 허를 찌른 그의 다음 설명은 신경정형인은 그저 계란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도넛과는 아예 본질 자체가 다른 닭이 "꼬끼오!" 하고 낳은 계란 말이다. 그들은 아무리 넓은 스펙트럼이라 해도 같은 선상에서는 다룰 수도 없는 아예 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 세 식구가 다 신경다양인이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조금씩은 특이한 구석이 있으니 그저 모두 개성이 강한 도넛이라 생각하며 너무 안도해 왔던 걸까. 신경정형인은 도넛의 사촌 정도인 쿠키도 아니고 그저 계란이라니. 이 비유가 내게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느 정도 우리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해 왔는데 간사한 나는 비범해지고 싶었을 뿐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 아이가 좀 특이하니 ‘눈에 띄면 뭐 어때’라고 생각하면서도 선택적으로는 군중 속에 묻히는 게 가능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쿨하지 못한 속내였다. 이 역설적인 바람은 어쩌면 영영 내려놓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아이의 손을 잡고 소아정신과 진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여전히 긴장이 되고는 한다. 놀이동산에서나 볼법한 우스꽝스러운 도넛 탈을 쓴 채 오직 계란만을 취급하는 양계장에 들어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그저 다양한 도넛 중 하나인 나름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진료실 안에서는 참… 튄다. 아이 배에 뻥 뚫려있는 도넛 구멍이 갑자기 더 부각되어 보여 뭐라도 가려줄 것이 없나 자꾸 두리번거리게 된다. 태연한 척하려 해도 이미 안달이 난 어미는 아이의 머리라도 한번 더 예쁘게 쓸어 넘겨준다. 하지만 숨길 수 없이 달콤한 도넛 냄새가 진동하는 우리 아이는 이미 속이 터져 딸기잼이 줄줄 새는 모습을 하고 서있다.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 조바심이 나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인사를 건네는 의사 선생님을 무시한 채 잼으로 범벅이 된 찐득찐득한 손으로 진료실 안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난 어쩜 이렇게 무뎌지지 않고 한결같이 애가 탈까.


모든 걸 해탈한 듯 '아무렴 어때.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일상을 살던 도넛 엄마인 나는 대학병원에만 오면 계란 가족이 돼 보려고 애를 쓴다. 우리 아이가 고급진 에그 베네딕트는 아니어도 잘 익은 삶은 계란 정도면 좋겠다는 바람이 기어코 또 생기고야 만다.

*에그 베네딕트: 반으로 자른 빵 위에 수란과 햄을 올리고 홀랜다이즈 소스를 뿌린 브런치용 달걀 요리.


약 1년 전 미미한 효과가 있었던 소아정신과 약을 한 차례 복용 해본 우리 아이에게 이번에는 아예 새로운 약이 처방되었다. 우리 아이는 편한 사람들과는 다양한 표정을 짓고 한 음절로 의사소통을 하며 놀지만 상호작용이 안 되는 정반대의 모습 또한 여전히 공존하기에 그 간극을 좀 줄여나가자는 취지에서 처방된 약이다.


이 약을 복용하며 불안도가 낮아지면서 아이의 뇌가 더 깨어나고 짙은 회피 성향과 여전히 낮은 사회성이 조절되기를 기대하자면서 말도 더 트이게 해 보자는 것이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었다.


처음으로 받은 소아정신과 약도 아닌데 이게 뭐라고 잔잔하다고 여겼던 내 안의 파도가 또 한 번 크게 일렁인다. 그렇게 내 마음속 갑작스러운 해일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약을 먹는다고 도넛이 계란이 될까? 아니 꼭 계란이 되어야만 할까? 이제 난 그냥 도넛 세상에서 오손도손 살고 싶은데 그건 나만의 욕심인 걸까?


혼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어린아이의 보호자로서 그때그때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건 앞으로도 쭉 쉽지 않을 예정이다. 그러니 우리 아들이 하루빨리 “엄마 난 그냥 나야!”라고 외치며 알아서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시간 동안 느린 아이의 엄마로서 여러 전문의를 만나가며 맷집이 세진줄 알았는데 약 처방 하나에 서글퍼진 나는 또다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꼴이다.


결국 난 도넛가게 안에서만 한가닥 하는 구멍이 숭숭 난 도넛엄마일 뿐인 걸까. 매일 특수반에 등원을 하고 언어치료를 받는 등 도넛으로 사는 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바깥세상의 삐까번쩍 한 기준을 맞닥뜨리고 매운맛을 볼 때면 무력하게 아파온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아무리 아파도 매일 도넛가게의 문을 열고 닫는다. 오늘 밤에도 쓸고, 닦고 내일을 준비하며 셔터를 내리고 불을 끈다. 그렇게 쳇바퀴 같은 도넛의 삶을 살면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비범 하고도 평범한 계란이 될 날을 꿈꾼다.


여러 생각에 한숨을 푹 쉬다가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를 들여다본다. 푸르스름한 달빛 속에서도 아이의 뽀얀 얼굴이 날계란처럼 반질 거린다. 그 어떤 도넛보다도 달콤한 향이 나는 아이의 등에 얼굴을 파묻다가 하루의 노고가 쌓인 것 같은 그 작은 등이 애처로워 연신 쓰다듬는다. 그렇게 도넛가게 주인장도 간신히 잠을 청해 본다. 비범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우리의 밤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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