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 탈피하기
참 희한하다.
나는 사람이 붐비는 곳이 싫어서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는데도 이상하게 내 주변은 금세 북적거린다. 한적한 카페에 사람이 가득 차고 여유롭던 식당도 금세 바빠져서 웨이팅이 생긴다. 이 정도면 뭘 차려야 되나? 싶다가도 각양각색으로 다른 손님들 취향을 맞출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사실 내가 손님을 끈다기보다는 좀 먹을 줄 알아서 처음부터 맛있는 집을 골라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는 보통 인적이 드문 곳을 좋아하지만 내가 가는 곳은 늘 우연하게도 사람이 많아지고는 한다. 이런 우연의 상호관계가 어찌 됐든 번잡거리는 게 싫은 나 혼자만 좀 불편할 뿐 긍정적인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장사가 잘되는 카페, 햄버거 가게, 쌀국숫집 등에서 다수의 손님들이 맛있게 먹으니 좋은 일이고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파리가 날릴 바에 눈썹 휘날리게 바쁜 것이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우연 말고도 내가 마치 큰 자석이라도 된 것 마냥 가는 곳마다 필연처럼 꼭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바로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들이다.
한산한 게 좋아서 간 공원에도, 등원전쟁을 치르고 한숨 돌리러 간 카페에서도, 주말에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간 축제에서도 나는 매번 그들과 마주치고 어떠한 해프닝을 겪는다. 안타깝게도 이건 내게 긍정적인 일이 아닌 말 그대로 멘탈이 탈탈 털리는 일이다. 이제까지 신경다양성 얘기를 그렇게 해놓고, 우리는 모두 다양한 도넛이 아니겠느냐고 계몽한 듯 열변을 토하고서는 이런 푸념 섞인 글을 쓰는 게 얼마나 큰 모순인지 알면서도 나는 이 껄끄러운 속얘기를 한번 해보려 한다.
나는 일상 속에서 어른이 된 발달장애인을 만나면 불편하다. 아이들이야 내가 우리 아이를 키우며 친숙해져서 그런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결점으로 보이지 않아서 인지 곧잘 받아들여지지만 성인들은 이내 거리를 두게 된다. 발달장애인 성인을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고 내 눈에는 유독 크게 두드러져 보이는 튀는 행동을 누군가가 손가락질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당장 나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슬그머니 거리부터 두는 편견 가득한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지만… 이게 나다. 나는 그들이 곤경을 겪거나 불리한 일을 당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무시당하는 걸 보게 되면 안타깝고 열불이 나기도 했다가 너무 골치가 아파져서 그냥 다 모른 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좋은 일, 나쁜 일을 다 겪으며 살듯 이런저런 날들을 나름 잘 살고 있는 그들에게 이게 웬 말도 안 되는 싸구려 관심인가 싶어서 나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한다.
평소에도 이렇게 잘 흔들리는 나는 한 달 전 아이와 함께 간 축제에서 무너져 내렸다. 축제의 행사 중 하나였던 뮤지컬 공연을 보던 중 느닷없이 뛰어든 한 성인 발달장애인의 춤을 보며 미치도록 괴로웠기 때문이다. 막무가내로 신명 나게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보자니 편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이 돌발상황을 로키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복잡한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갑작스레 등장한 춤꾼 아저씨를 공연의 일부로 받아들인 듯 한두 번씩 박수를 치며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그렇게 느닷없이 나타난 자객 같은 춤꾼으로 인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이 난감한 상황이 견딜 수 없어서 경직되어 가는 나와는 참 상반 된 반응이었다. 우리 아이는 아무런 편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아이의 특성상 사회성이 좀 낮아서인지 이 깜짝쇼 마저 천진난만하게 즐겼다. 그 옆에서 식은땀이 줄줄 나는 채로 앉아있던 나와는 참 달랐다. 아이와 달리 나는 몰래카메라를 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놀랐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폼생폼사 춤꾼의 등장 이후 뮤지컬 공연이 내 눈에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저 수군대는 군중을 뒤로한 채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그를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행사 측 경비가 참다못해 인상을 쓰고 그에게 다가갔다. 무시하는 말투로 반말을 해가며 그를 제지했는데 그에게는 타격이 없어 보였지만 내 가슴에는 비수가 꽂혔다. 안하무인 춤꾼은 그렇게 제지를 당하며 끌려가다가도 거세게 뿌리치고 무대로 돌아와 춤을 췄다. 그런 그에게 모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그 모습을 맨 앞줄에 앉은 채 눈앞에서 생생히 보고 있자니 나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내게 너무 폭력적인 광경이었다. 차라리 보지를 말자 싶어 고개를 돌렸다가도 이내 그의 동작 하나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난 심각하게 이 사태를 지켜보다가 혹시 이런 나의 시선을 그 누구도 아닌 당사자에게 들킬까 봐, 그래서 행여나 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혐오하는 것으로 오해할까 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의연한 척해가며 줄곧 그 춤꾼 아저씨를 관찰했다. 그는 충동성 조절이 좀 힘들어 보였지만 의사표현도 수월하게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 하며 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건방지게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분이 기특해져서 박수를 쳐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의 눈치가 보이는 쫄보인 나는 그가 이제 그만 춤사위를 멈추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웃으며 즐겨야 하는 공연 내내 나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춤꾼 아저씨에게 쏠리는 시선과 술렁이는 관중을 뒤로한 채 나는 로키와 애써 미소 지어 보았지만 채 15분 남짓 하는 공연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놈의 축제는 왜 오자고 해서 진짜.' 무력한 상황 속에서 그저 내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생각이 나를 짚어 삼켰고 아이 옆에서 억지로 박수를 쳤지만 축제에 온 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게 경직되어 가는 내 몸이 애초에 이럴 때 아이 앞에서 대체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하느냐고 속으로 울부짖는 것만 같았다.
'아 이건 축제가 아니라 고문이야.'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초긴장 상태가 지속되며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고 '두통약을 가져올 걸' 하며 후회하던 나는 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왜 이렇게나 불편할까? 아이 앞에서 왜 이렇게 난감해질까?
참 웃긴 게 이 불편함은 한국인에게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 틈틈이 즐겨보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Love on the spectrum이라는 넷플렉스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참 편안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각자 개성 넘치고 독특한 출연진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혹시 그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서서 싸워주고 싶을 정도니 말이다.
내가 우연히도 아닌 자발적으로 보는 이 프로그램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성인들이 데이트를 해보고 사랑을 찾는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시리즈이다. 그들은 자기소개를 하고, 이상형을 설명하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성인이면 자연스레 알만한 데이트 상식을 배워가기도 한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엄마미소를 짓는 나와 일상에서 마주치는 발달장애인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인 것만 같다.
이런 내 극과 극인 반응에 대한 간극을 알게 된 이후로 이 글을 쓰기까지 참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내가 모든 신경다양인을 우리 아들에 빗대어 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고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다른 신경다양인에게 투영하며 그들이 성인으로서 겪는 각기 다른 환경과 사회적 시선을 내 일인 것처럼 여기고 반응했던 것이다. 이런 나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문화의 일부이기에 신경다양성에 대해 수용적인 영어권의 문화를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이다.
내가 속해있는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극과 극의 반응은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를 기초로 하는 것 같다. 나는 로마에 가면 그에 맞는 생활방식을 배우고 그 문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한국인으로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 캐네디언이 되는 과정을 겪으며 각각 다른 세상 속에 맞는 문화를 열심히 배우고 지켰으니 말이다. 언제나 튀는 게 참 싫었던 내향적인 나는 참 다른 두 세계관 속에서 이질감 없이 스며드는 아이가 되는 것이 간절했었던 것 같다.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그렇게 카멜레온처럼 주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익숙한 나는 심지어 발달장애인에 대한 반응 또한 각 나라와 문화에 맞추어 설정해 왔던 것이었다. 한국인으로서는 누군가가 조금 다르고 튀면 이상하다는 생각에 곁눈질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반면 캐네디언으로서는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별생각 없이 가던 길을 가니까 말이다.
이렇게 나의 속마음을 파헤치다 보니 매일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던 내가 참 오랜만에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아직은 귀여운 6살인 우리 아들의 예후가 정확히 어떠할지는 알 수 없지만 예상보다 더 부족한 모습으로 성장한대도 난 정말 괜찮을까? 엄마로서 느끼는 실망감과 불안감을 뒤로한 채 언제나 너그러운 시선으로 자식을 바라봐주며 지지해 줄 수 있을까? 러브 온 더 스펙트럼에 나오는 따뜻한 조언과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 멋진 부모님들처럼 말이다. 참 희한하게도 영어권에서는 나 역시 그렇게 해볼 법도 할 것 같은데 한국 내에서는 영 자신이 없다. 평생 주변이 띄고 있는 문화의 색을 의식하며 살아와서인지 나만의 신념을 고집하며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게 내겐 참 어렵다.
이렇게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게 되는 엄마와 자신만의 알록달록한 스펙트럼을 가진 우리 아들은 여전히 보수적인 한국에 거주 중이다. 우리 아들은 내후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는데 한국 초등학교 생활을 떠올리다 보면 금방 주눅이 든다. 마치 우리에게 유예기간을 준 듯 아직은 어려서 귀엽다고 생각하는 여러 부족한 모습이 한국 내 초등학생으로서는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자스맘 선배들을 보니 이 세계에서도 7세 고시가 존재 한다며 특수학교를 대비하던데 나는 아직 그 세계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아직 초등학교의 세계는 직시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한국 초등학교가 두려운 나의 목표는 아무리 늦어도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쯤에는 캐나다로 돌아가서 사는 것인데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면 녹록지가 않다. 하지만 축제 이후 앓아누울 것처럼 멘털이 나갔다가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을 보며 마음이 편해진 나이기에 캐나다라는 선택지를 놓기가 어렵다. 견디기 힘든 사회적 편견, 시선,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닌 바로 환경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엄마인 나 때문에 말이다.
로키를 한국에서 쭉 키운다면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인 내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아이를 춤꾼 아저씨 보듯 노심초사하며 바라볼 것 같아서 두렵다. 아직은 귀여워 보이는 아이의 부족한 모습조차 커갈수록 다르다고, 뒤쳐진다고, 튄다고 여길 것 같아 무섭다. 아이를 이해해 주려는 노력조차 없이 너는 다 큰애가 왜 조용히 뮤지컬을 보지 못하고 난데없이 춤을 춰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냐고 다그칠 것만 같다. 결국 난 조금 다른 내 아이가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웃음거리가 될까 봐 겁이 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은 다양성보다는 단일화된 규범에 익숙한 사회이고 그런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으로, 또 그 부모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외로운 일인데 특히 주위 눈치를 많이 보는 나에게는 더 그러하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로키가 살아갈 세상은 좀 다르다고 손가락질받지 않는 곳이길 바라고 아이가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으로 당당히 살아갔으면 한다. 이런 이중잣대를 가진 나는 성인이 된 아이에게 안전한 요새가 되어주지 못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일상 속 어딜 가나 약속이나 한 듯 마주치는 성인 발달장애인을 보면 두려운 마음이 증폭돼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축제를 다녀온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춤꾼 아저씨의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직도 그 상황이 떠오르면 두 눈을 질끈 감게 된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아이를 위해서 변화해 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아이의 영원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하는 엄마인 나는 마음 아파하고 두려워할 시간에 요새를 정돈해야 하니까 말이다.
아이가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면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눈치 보고 걱정하는 엄마인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모순을 정면돌파 해보려 한다. 앞으로는 느닷없이 신경다양인을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즐겨 보려 한다. 그 상대가 아이든 성인이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해보려 한다. 나의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다’라는 신념만은 한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토록 반복되는 신경다양인들과의 우연한 만남이라면 필연이 아닐까 싶어졌다. 아니, 필연을 넘어서 나약한 나를 단련시키는 운명이 아닐까 싶어 졌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막무가내로 춤추는 사람을 본대도 당황하지 않고 함께 그 순간을 즐겨 보고 싶다. '공연의 일부가 될 수도 있지 뭐' 하는 마음으로 나부터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준다면 차차 수군대거나 비웃는 사람들이 적어지지 않을까. 나를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들이 조금 독특한 사람을 봐도 '그러려니' 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다 보면 더 나아가 한국판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이 방영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해 본다.
여기까지가 나의 모순 가득한 고백이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발달장애인을 마주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이다. 그 불편함이 한국 사회의 시선과 나의 내면화된 한국식 기준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특정 문화가 아닌 엄마라는 존재가 가장 크고 중요한 세상이기에 앞으로 어느 나라에서 살던지 엄마인 내가 가장 큰 중심이 되어주고 싶다.
비일관적으로 한국 발달장애인은 불편해하고 미국 배경의 발달장애인 프로그램은 편하게 보는 나의 이중성을 그저 문화 차이로만 치부하며 정당화시키고 싶지 않다. 나는 로키를 위해 이 세상 모두의 인식을 바꿀 그릇은 안되지만 아이의 우주 그 자체인 나 자신을 조금씩 다듬을 수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마이클 잭슨의 노래인 Man in the mirror 이 전하는 메시지처럼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장대한 목표를 품기 전에 먼저 거울 속 나부터 바꿔 보려고 한다. 그건 지난 시간 나를 이방인에서 현지인으로 탈바꿈시켜 살아남게 해 주었던 카멜레온 같은 모습으로부터 탈피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Man in the Mirror: 마이클 잭슨의 노래로 자기반성과 변화를 주제로 한 곡. 제목은 거울 속의 나 자신을 의미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먼저 나 자신부터 바꾸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
이런 결심을 하고 나니 그렇게 학을 떼고도 이번 주말에 새로운 축제에 갈 용기가 생겼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도 있고 마술쇼, 버블쇼 등 여러 공연을 한다는데 혹시 그곳에 춤꾼 아저씨가 또 나타나줄까? 그럼 이번엔 나도 ‘에라 모르겠다’ 하며 같이 좀 흔들어 재껴 볼 용기가 샘솟는다.
이제는 한 문화에 맞추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신념에 기반한 태도로 살고자 한다. 나의 신념으로 뿌리내린 풍요로운 삶을 영유하고 싶다. 신경다양성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일을 나만의 소신대로 표현하고 받아들이며 잘 살아내고 싶다. 그래서 우연이든 필연이든 내게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운명적인 성장의 기회로 삼고 싶다.
한때는 받아들이기조차 힘들었던 나의 아이가 그저 주변에 맞추어 살아가던 무채색의 나를 오히려 빛나게 해주고 있다. 스며들기 급급해 무색무취였던 내가 아이를 통해 나만의 고유한 형태를 갖추어 가고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나 넓은 스펙트럼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 벅차다. 그래서 이제 나는 조금은 고집스럽더라도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로키 엄마로 당당히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삶이 우리만의 색으로 찬란하게 물들어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