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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중입니다

슬픔이라는 사치

by 청크리

“산 사람은 살아야지"


흔히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얘기한다.

슬퍼도 기운 차려서 일어나고, 입맛이 없어도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고.


하지만 약 20년 전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단 얘기를 듣고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날아갔던 나는 숨도 못 쉴 만큼 울었고 앞으로 단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참 정정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의 죽음을 모두 고통 없는 호상이라고 얘기했지만 은은한 미소가 배어있는 우리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입에 델 수 없었다. 한동안 쉽게 잠에 들 수도 깰 수도 없는 날들을 억지로 살아냈고 삶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늦둥이인데 그 늦둥이의 막내딸이 나이기 때문에 애초에 너무 큰 나이차이로 할머니와 내가 이 생에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짧디 짧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봐도 한 사람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죽음이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슬픔에 빠져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여유와 시간이 충분히 있었기에 할머니를 잊는 게 더 힘들었다는 것을.


짙은 감수성에 젖어들던 고등학생으로서 할머니를 떠나보낸 지 약 20년이 흐른 뒤 지난 3월에 나의 시아버지를 떠나보내드리게 되었다. 우리 남편의 새아버지이신 분이니 따지고 보면 나와는 정말 머나먼 사이 인 분이다. 그래서일까. 배은망덕하게도 돌아가신 지 한 달쯤이 지나니 H 시아버지의 빈자리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제 시댁에 가도 “왔냐”라고 인사하시며 우렁찬 목소리로 반겨주시는 분이 없고 로키에게 "야 악수하자. 악수 악수" 하며 덥석 손을 잡아주시는 분도 당연히 없다. 달달구리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종종 사들고 가던 주전부리를 한두 개씩 집어 드시며 “너넨 이런 거 어디서 사냐? 맛있다 이거?"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시던 분도 당연히 없다.


우리가 로키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로키가 좋아하는 한 유령노래를 부르며 까꿍놀이를 하고 까르르 웃으며 놀 때 "이놈 어딨냐? 할아버지도 같이 하자"라고 하시며 살갑게 이불속으로 휙 들어오시는 분도 이제는 당연히 없다. 아이의 발달지연을 알게 된 지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 고통의 시간 속 내내 몸부림치던 우리 곁을 묵묵히 지켜주신 분이 이제는 온데간데없다.


나는 로키를 보느냐 장례식의 모든 절차를 매 순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입관식을 진행할 때에 두 눈을 꼭 감은채 수의를 입고 누워계신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앞을 걷다가 등산복을 입은 비슷한 연배의 남성분을 보면 "어?" 하며 멈칫하는 나는 두 눈이 동그래진다. 심지어 로키조차 등원길에 마주친 등산복 차림의 한 할아버지께 달려가서 덥석 손을 잡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어 '우리 할아버진가?' 하는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본다.


1년 전 오늘의 사진을 띄워주는 핸드폰 속 로키와 함께 비비빅을 먹는 H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모든 게 참 덧없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나는 사색에 잠길 새도 없이 매일 바쁜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그렇게 어김없이 밥때가 찾아오고 로키가 좋아하는 감자를 집어 들어 껍질을 벗겨낸다. 아이의 입맛에 맞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굽는다. 긴 나무젓가락으로 감자를 하나하나씩 뒤집다가 문득 로키처럼 감자를 좋아하시던 H 시아버지 생각이 스친다. 이제 그는 내 잠재의식 속에나 잠깐씩 드나드는,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실존 하지 않는 인물이 됐다는 것이 서글프게도 와닿았다.


몇 주 전 49제 때 생전 좋아하시던 과일을 좀 챙겨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시어머니께서 깜빡하고 커피를 잊으셔서 일까. 차를 타고 떠나는 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술궂은 비를 퍼부으시더니 어젯밤에는 내 꿈에 나타나 커피를 찾으셨다. 생각해 보니 함께 보낸 지난 10년여의 시간 동안 우리 부부가 커피를 대접해 드린 게 손에 꼽을 정도더라. 그만큼 우리는 늘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다는 게 다시 한번 죄송스러웠다.


우리가 그나마 해드린 게 있다면 난생처음 혼주석에 앉게 해 드린 것과 로키가 두 돌인 겸 사진을 찍자고 졸라서 가족사진을 남겨드렸다는 것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자녀분들과는 그런 추억이 전혀 없으시기에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이 조금이나마 가슴속의 헛헛함을 채워드렸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든 와.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와"라고 하시며 현관에 서서 우리를 배웅해 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로키를 끌어안고 지긋이 쳐다보시던 오랜 세월의 풍파가 담겨있는 촉촉한 두 눈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모든 기억을 뒤로한 채 그분이 없는 일상이 오늘도 속절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그분 없이도 세상은 돌아가고 그분 없이도 우뚝 솟은 산에는 변함없이 등산객이 몰린다. 대선을 앞두고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 늘 호기심 많고 진취적이셨던 H 시아버지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세상이 어떻게 발전하고 돌아가는지 너무나 관심이 많으셨던 분인데 이제는 오늘의 떠들썩한 뉴스거리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으시다니.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윗사람이 떠난 자리라 그런지 바쁘다는 핑계와 이기심으로 우리는 그 자리를 금방 메꿔버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 죽는 거지 뭐'라고 말하며 겸허한 척 대충 살던 나는 이제 내가 위치한 자리에서 이를 악물고 잘 살아가려고 용을 쓴다. 한 사람이 사라지는 이 과정 속 H 시아버지가 가장 흡족해하실 애도 방법은 열과 성을 다 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같기 때문에 말이다.


노란빛 수의를 입으신 H 시아버지께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다가가 귓가에 대고 약속드렸던 대로 오늘도 난 로키를 아주 잘 키워보려 한다. 그분을 떠나보내며 내게 알려 주신 성실함, 끈기, 열정 같은 요즘 시대에는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한물 간 헝그리 정신의 산물이 사라지지 않도록 나는 오늘 하루도 악착같이 살며 그를 잊는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아이 일로 좌절하던 내게 말씀하셨듯이 아무리 힘든 일이 투성이어도 난 오늘도 고개를 치켜들고 앞만 보며 걷는다. 내가 젖은 낙엽이라도 된 것 마냥 어떻게든 나를 탁탁 털어내 버리려 하는 우울이라는 놈과 끈질기게 싸워가며 오늘도 나는 과거가 되어버린 시아버지를 한번 더 가슴속 깊숙이 묻는다.


한 줌 재가 되어버린 시아버지의 유골함에 로키와 함께 손을 대고 마지막 인사를 전할 때에 느껴지던 뜨거운 온기가 아직도 손끝에 생생하다. 하지만 먹고 사느냐 슬퍼할 겨를도, 여유도 없는 내 새끼밖에 모르는 나는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황망한 마음으로부터 한 발자국 더 멀어진다.


우리 집의 링컨이 된 것처럼 로키의, 로키에 의한, 로키를 위한 엄마인 나는 그렇게 큰 산 같던 나의 시아버지를 오늘도 열심히 잊어낸다. 슬픔에 빠져 무기력하게 지내는 사치를 부리다가는 엄마로서 빈털터리 신용불량자가 될 것만 같아서 오늘도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로키만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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