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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처럼 안 맞는 우리

로또 vs. 로키

by 청크리

결혼생활이 마치 로또 맞은 것처럼 행복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우리는 이제 로또처럼 하나도 안 맞을 때가 더 많은 11년 차 부부가 되었다. 발달지연이 있는 로키를 키우며 서로 더 애틋해지고 합심할 만도 한데 아이 문제로 인해 빈번히 부딪히는 일이 더 잦은 우리는 현실 부부이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아이에게 집중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 부부의 다름 조차 결국 우리 가족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남편이 전적으로 아이에게 집중하는 모습에 나는 자주 서운하고 외로워했다. 한때 나만 바라보던 꽤나 유명했던 아내바보가 완전히 아들천치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는 세상 다정한 아빠이지만 난 몇 년동안이나 이런 남편에게 적응이 안 됐다. 이 남자가 정말 나만 바라봐주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지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유치하게 물어댔다.


“나랑 로키랑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할 거야?”

아들을 바라보며 눈에서 하트가 뿅뿅 튀어나오는 남편을 탐탁지 않은 얼굴로 위아래로 훑어보다 물었다.


“당연히 로키지! 애기잖아!”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들려오는 그의 대답. 내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로키에게만 시선이 고정인 채로 말이다.


“나도 애기거든?”

그러면 난 기분이 상해서 나도 애기라며 생떼를 썼었는데 내가 그땐 정말 관심이 필요했었나 보다.


“앗. 냐"

그럴 때면 남편은 ‘아니야' 발음을 정확히 못하는 로키를 흉내 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오직 로키만을 따라다니면서 말이다. 로키를 헤벌레 쳐다보는 남편이 과거에 나만 죽어라 바라볼 때 그 많은 나의 ‘시댁들'이 이렇게 어이가 없었을까. 떨떠름한 얼굴로 ‘그렇게 좋냐?’ 소리가 절로 나오려 한다. 그렇게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미묘한 배신감도 느끼며 나의 고충에 공감해주지 않는 모습에 화도 많이 났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이앓이를 하느냐 울고불고 안아달라고 해서 밤을 꼴딱 세고 나면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다가도 이가 아픈 아이 걱정부터 했으니까 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한숨도 못 자서 좀비상태인 나를 먼저 들여다보는 척이라도 해줬으면 나도 당연히 자식 생각뿐일 텐데 그걸 몰라도 너무 모르더라.


둘이 살 적에는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떠받들어 간호해 주고 임신 전부터 이미 내가 입덧이라도 하는 듯이 먹고 싶다 하는 음식을 사다 바치던 남편은 이렇게 점점 더 아들 바라기가 되었다. 졸지에 후궁 때문에 밀려난 중전 신세가 됐다고 하기도 뭐 하고, 내가 품고 내가 낳았는데 남편이 더 로키엄마 같았다. 내가 엄마노릇을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이라도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까. 로키가 아기였을 무렵 만사가 귀찮고 실컷 자는 게 소원이던 나는 mom guilt를 느끼며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 아내바보였던 남편의 부성애 넘치는 언행 하나하나에 타격이 컸던 것 같다. 자꾸 서운해지는 내가 모성애가 없는 나쁜 엄마인 건가 싶기도 했다.

*mom guilt: 엄마로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감정.


로키가 우리 인생의 중심이 된 것이 이제 와서야 너무나도 당연하고 행복하지만 과거엔 아들을 최우선시하는 남편의 모습이 상처로 다가왔었다. 우리의 서사에서 주인공은 늘 내 차지였는데 이제는 한낱 조연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초라했다. 아니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죽어라 키우고 있는데 졸지에 엑스트라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냔 말이다.


코로나 시기에 출산 한 나는 늘 혼자였고 애초에 친정은 태평양 건너에 있어 기댈 수 없었다. 그래서 육아를 하며 참 막막하고 외로웠던 나는 남편의 관심과 사랑이 고팠던 것 같다. 아이와 고군분투하며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살아간다기보다는 견뎌 내는 나날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아이가 두 돌 즈음에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그때 우리의 온도차는 더욱더 극명하게 벌어졌고 부부사이의 골도 깊어져만 갔다. 아이를 놓고 우리의 생각 차이가 극대화된 것이었다.


진단 이후 남편은 더더욱 아이만 바라보는 경주마가 되었고 나는 안 그래도 육아가 외롭고 힘든데 발달장애까지 있다고 하니 하늘이, 억장이 다 무너져 내렸다. 마음이 아픈 걸 넘어서 아예 아이가 미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아이가 인생의 짐이 된 것 같은 나의 복잡한 심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보면 그때의 나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나의 아픔을 우선시하는 철딱서니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충분히 그럴만했다. 엄마인 게 처음이었고 자폐 스펙트럼 아이의 엄마는 더더욱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힘들고 아팠던 내가 지금의 단단한 모습이 되기까지 참 열심히도 성장해 왔기에 이 모든 과정은 필연적인 성장통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종종 지난 일을 얘기하다 보면 남편은 이제 자기 마음을 좀 알겠냐면서 그때는 자식에게 올인하는 인생관 자체를 비난했다고 샐쭉 거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육아관을 의심하고 시험했던 그 모든 시간들 덕분에 로키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아정신과에서 내린 진단 하나에 우리는 얼떨결에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하지만 얼떨결에 아이를 위해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위인 같은 부모가 되지는 않더라.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는 아이를 위해 일심동체가 될 수 있었을까? 한마음으로 아이의 발달을 이끌어주고, 품어 주고 흔들림 없이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자폐 스펙트럼을 공부해 가며 반 전문가 혹은 선무당이 되어갔고 서로 다른 견해차이로 인해 오히려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많은 부부가 아이의 교육, 훈육방식 등 온갖 일로 부딪히듯이 독특한 로키를 키우는 우리임에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의 식단, 여러 수업, 경제적인 부분까지 ‘내가 맞네, 네가 맞네’ 하며 충돌하고는 했다. 오죽하면 부부끼리 하나도 안 맞아서 로또 같다는 얘기가 나올까.


그렇게 툭하면 끊임없는 설전이 오갔고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냉전의 시간 또한 겪으며 우리의 인연이 딱 여기까지 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말이 잘 통하는 같은 1.5세 교포 출신의 소울메이트 같았던 우리라도 ‘이혼’을 떠올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무늬만 캐네디언 건지 둘이서 살 때는 몰라도 이제 자식이 있는데 덜컥 이혼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우리 관계가 일시적으로 삐걱거리는 걸 거라 되뇌었지만 우리 사이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특히 아이의 발달 상태나 예후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도 달라서 서로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극도로 무기력 해지고 불행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그리며 대비를 해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반면 남편은 계속해서 청사진만을 그려야만 숨을 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 보면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각자의 자기 방어 기제였겠지만 그때 내 입장에서 보는 남편은 밑도 끝도 없이 로키가 다 좋아질 거라고만 얘기하니 너무 울화통이 터졌다. 내 고민과 걱정을 외면하거나 부정한다고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새까맣게 탄 속내를 충분히 다 토해내고 밑바닥을 한번 찍어야만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나에겐 고문이나 다름없는 청사진 그리기에 신물이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감각적으로 예민해서 자꾸 신발을 벗는 아이에게 억지로라도 신발을 신기는 나와 '벗을 수도 있지' 하며 태연한 남편이 사사건건 부딪히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였다. 나는 장애등록을 고려할 때 마저 남편은 로키가 얼마나 총명한지를 자랑해 대니 할 말이 없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던 사소하다면 사소한 의견차이는 사실 아이에 대한 깊은 고찰과 가치관에서 파생된 작은 파편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은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한마음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괴로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표면적으로는 작은 마찰조차 알고 보면 큰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서 깊숙한 곳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간극이 도사리고 있을 때가 많았고 우리는 점점 말 섞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졸지에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부부가 되어버렸고 난 완벽한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 그나마 덜 불행해지려 하는 차악의 선택이라는 이혼이란 패를 늘 주머니 속에 꼭 넣고 다녔다. 그렇게 아이와 여러 수업을 받기 위해 바쁘게 발달센터를 오가면서도 중간중간 넋이 나간채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패를 만지작 거렸다. 하도 만지작 거려서 닳고 닳은 그 패는 결국 로키의 말간 얼굴을 보면 망설이게 되어 미처 꺼내 들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때는 비겁해 보이기만 하던 그 망설임이 이제와 뒤돌아보면 참 고맙다. 왜냐하면 아이에 대한 생각과 육아관이 부딪히는 순간순간을 잘만 풀어내면 뜻밖의 상호보완을 이루는 육아 선순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로키가 언어치료를 받고 "줘"라는 말만 익혀도 날아갈 듯 기뻐하고 우쭈쭈 격려 해주는 남편과 손동작과 함께 “주세요” 는 해야지 하며 채찍질하는 내가 있기에 아이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연이라도 아이가 두음절을 내뱉으면 환호하는 남편과 겉으론 신나 하지만 속으로는 ‘후루꾸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나는 자주 토론을 벌였고 우리는 경쟁하듯 각자의 방법으로 아이의 발달을 올리려 사력을 다 했으니 말이다. 늘 아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남편과 아무리 예쁜 내 새끼지만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하는 나는 생각의 회로도 육아관도 참 달랐기에 식단도 해보고 자연으로도 나가보며 아이와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이의 안전에 대해 노심초사하는 스타일임에도 간식에 있어서는 너그러운 편이다. 평소엔 건강한 집밥을 선호하지만 무더운 날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 가게에 불쑥 들어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반면에 남편은 먹거리 성분표부터 꼼꼼히 따지며 엄격한 편이고 본인 기준에 부합해야만 볼멘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 좀 먹자. 이것도 경험이야~” 하며 얼른 사주자는 나와 머뭇거리는 남편의 사소한 실랑이 외에도 우리 부부는 사사건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줄다리기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아이는 엄마와 할 수 있는 일과 아빠와 할 수 있는 일을 눈치껏 터득하게 되었다. 웃기게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사회성이 생겨난 것이다.




로맨틱했던 우리의 관계는 이제 사사건건 부딪히는 창과 방패 사이가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우리가 오히려 매일 로키를, 또 우리 가정을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 아이는 움츠러들 때에는 무한한 사랑을 주는 아빠의 방패 뒤에 숨기도 하고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며 간을 보다가도 엄마가 휙 꺼내는 창을 보고 깨갱 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가 태어난 뒤 매 순간 참 달랐던 우리지만 그렇기에 아이가 더 다양하게 세상과 그리고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몇 년 전만 해도 남편이 내게 “당신은 그럼 누구 먼저 구할 거야?”라고 돼 물을 때 “난 적어도 0.1초 라도 고민하고 로키거든” 하며 서운해하던 나는 이제 “뭘 물어? 로키지. 아휴 저리 가”라고 대답한 뒤 장난스레 남편을 밀어낸다. 다시는 한마음으로 살 수없을 것만 같고 말이 하나도 안 통하던 우리는 어느새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아들바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 세 식구는 돌고 돌아 서로가 삶의 원동력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둘이 셋이 되는 과정 속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진단으로 인해 크게 방황했지만 그 혼돈을 겪으며 우리의 관계가 꽝이 나온 복권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둘만의 호시절을 뒤로한 채 부모로서 각자의 역할로 아이를 지켜내고 있다. 참 다른 우리가 오히려 아이에게 균형을 맞춰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남편과 너무 안 맞아서 괴로운 날이 분명히 또 올 거란 것을 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일확천금 같은 사랑을 꿈꾸기보다는 언제나 내 곁에 있는 로키, 그리고 로키아빠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했고 각자의 기준으로 아이를 걱정했을 뿐인데 그게 서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큰 좌절로 다가왔었다. 누구 하나가 틀려서 다투었던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다르게, 하지만 똑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해서 생긴 갈등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우리 부부는 현재도 안 맞을 때가 더 많지만 어쩌면 그런 ‘불일치’가 우리 가족을 더 단련시키며 단단하게 만들어주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아끼고, 다른 태도로 현실을 받아들여왔기에 우리는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신기루 같은 한낱 로또와는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귀하고 귀한 로키와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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