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스펙트럼 아이와의 의사소통
어릴 적 나는 좋게 말하면 똑 부러진 아이였고 나쁘게 말하면 피곤하게 구는 아이였다. 우리 엄마가 과도로 사과 껍질을 길게 늘어트리며 깎아주다 무심코 그 칼로 사과를 하나 쿡 찍어 먹기라도 할 때면 나는 “엄마! 왜 위험하게 칼로 먹어? 포크로 먹어야지” 하며 잔소리를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정신없이 저녁을 차리고서 내 밥에 반찬을 올려주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손에 한꺼번에 쥐고 있으면 “엄마! 수저를 하나씩 들어야지. 왜 그렇게 들어? “라고 타박하기 일쑤였다. 가끔 우리 엄마가 식탁대신 작은 상 앞에 대충 쪼그려 앉아 먹는 걸 보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면 “엄마! 똑바로 앉아서 먹어야지”라고 나무라던 나는 6살이라고 믿기 힘든 애어른 같은 꼬맹이였다. 맞는 소리만 해대는 쪼끄만 꼬마에게 우리 엄마는 “네가 내 엄마야?”라고 물으며 실소를 터트렸고 나는 ”그러니까. 내가 엄마의 엄마도 아닌데 왜 이런 걸 알려줘야 해? 엄마가 똑바로 해야지”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엄마에게 사사건건 따발총처럼 쏴대던 나의 어릴 적 얘기를 숱하게 들으며 자랐고 때때로 어른들에게 ”요거 보통이 아니네” 소리를 들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그래서일까. 내가 자식을 낳으면 당연히 이렇게 실소가 터지는 상황이 비일비재할 줄 알았다. 쪼꼬만 게 이제 몇 년 살았다고 엄마를 훈계해서 어쩔 땐 당황스럽고 어쩔 땐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지는 상황들 말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고 나면 아이가 하는 말을 통해 동심의 순수함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자기 성찰을 하게 될 거라고 막연하게 또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 같다. 하지만 자주 언급해 왔듯이 우리 아들은 현재 6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말이 트이지 않았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어도 좋으니 짜증이라도, 투정이라도 긴 문장으로 한번 들어본다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 이 바람을 아이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내 가슴속에 품어왔다.
7월의 붉은 태양이 작렬해 온 세상을 달구는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아이는 머리가 땀에 흥건히 젖어가면서도 여전히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두 시간은 뛰어논다. 한때는 그네만 주야장천 타대서 걱정스러울 정도였는데 이제는 미끄럼틀은 물론이고 구름다리, 구름사다리 등 모든 걸 섭렵해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온갖 곳을 누빈다. 물론 여전히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아서 아이를 잡아주고 올려주고 하다 보면 나 역시 금세 땀으로 샤워를 한다. 요새는 땡볕에 달궈진 놀이터에 오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서 덩그러니 우리뿐일 때가 많지만 여전히 로키는 나와 신나게 논다. 아니 오히려 아무도 없으니 그네를 독차지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그네홀릭인 로키가 아주 애기일 때부터 그네를 타고 내가 뒤에서 밀어줄 때면 옆에 있는 다른 엄마와 아이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됐었다. “엄마! 더 세게 밀어줘”, “엄마! 무서워! 이제 내릴래”, “엄마! 하늘을 나는 것 같아” 등등 다른 아이들은 끊임없이 표현하며 재잘거렸다. 그러면 등뒤에서 그네를 밀어주는 엄마는 상냥하게 대답해주기도 하고 이제 그만 타고 가자며 실랑이를 하기도 하며 평범하게 주고받는 일상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옆에서 똑같이 그네를 타고 있는 로키와 나는 내내 침묵의 시간 보내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그네를 타며 나누는 엄마와 아이의 별거 아닌 그 대화가 참 부러웠다. 가끔은 더 타고 싶다고 하는 아이의 눈물엔딩으로 끝나기도 하는 그 대화를 나도 너무나 해보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그랬던 우리가 그렇게 평범하지만 손에 닿을 듯 말듯한 신기루 같았던 그네 대화를 드디어 나누게 되었다. 여전히 로키는 한 음절에서 두음절로만 얘기하지만 그래도 내게 더 세게 밀라고 짜증을 내며 “밀! 밀어 밀! 밀!” 하고 요구하면 나는 너무나 평범하게 “아이참 알았어~ 더 세게 밀어줄게”라고 대답하며 힘차게 그네를 밀어준다. 이렇게 우리도 드디어 그네를 타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하루는 등원길에 로키 얼굴에 뭐가 묻어서 떼어주는데 아팠는지 ”파. 아파 “라고 말하길래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팠어? “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며 “미! 미! “라고 반복해서 말했는데 자기를 아프게 했으니 ’ 미안해 ‘라고 사과를 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 실수! 미안해!”라고 얘기하며 엉엉 우는 표정을 지었는데 아이는 그게 그렇게 재밌었는지 깔깔깔 웃으며 또 사과를 해보라는 장난에 꽂혔다.
누가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아니 오히려 저게 대화라고? 하며 반문할 수도 있는 아이와의 이런 의사소통이 요즘 내게는 가장 큰 낙이다. 로키 역시 자신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늘어나니 신이 나는 모양이다. 요새 들어 아이의 표정이 더 밝아지고 장난기도 늘었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말들은 굉장히 한정적이고 아이는 같은 말의 반복을 요구할 때가 많아서 소위 얘기하는 화용언어로서의 질이 높지는 않지만 이렇게 아이와 소통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눈물 나게 기쁜 나날들이다.
*화용언어: 상황에 맞게 말하고 듣는 사회적 소통 능력
아직 로키의 말을 잘 알아듣는 건 엄마, 아빠, 담임 선생님 정도이고 또래와의 소통은 거의 없지만 언젠가 아이가 친구들과 뛰어놀며 의사소통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사실 현재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모습이지만 지금 나와 자연스레 그네 대화를 나누게 되었듯 언젠가는 너무도 자연스레 친구와 말을 주고받게 될 거라 믿어본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아이와의 의사소통처럼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행복과 특권이 얼마나 많을까. 살아있는 것 자체가 형벌인 것만 같았던 긴 시간을 지나와서 보니 예전엔 당연시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땀을 흘리며 걷는 이 모든 순간순간을 당연시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늘도 하원시간이면 웃으며 달려와 내 품에 쏙 안기는 로키는 내게 당연하지 않은 행운이자 행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