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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이라는 가시방석

로키의 태권도 생활, 그리고 생일

by 청크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하게 글을 쓰고 싶었는데 요새는 손에 마치 무거운 추를 단 듯이 무거워 쉽사리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사실은 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 같은데 이럴 때면 뭐라도 해야 해서 그런지 손을 대신해 나의 발이 참 분주했던 여름이었다. 아이와 함께 바닷가로 휴가를 다녀오기도 하고 한동안 내키지 않던 운동을 꾸준히 하기도 하면서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평소 로키와 즐겨 듣는 동요가 아닌 귀가 터질 듯이 쿵쾅거리는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틀고서 러닝머신 위를 뛰고, 매트 위를 뛰고 그렇게 내가 숨을 헐떡이는 만큼 정직하게 흘러대는 땀과 미약하게나마 줄어드는 몸무게를 보며 성취감을 느끼고 위안을 얻으며 나는 계속해서 달려댔다.


나는 원체 몸도 마음도 예민한 편이지만 세상에 섞여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무뎌지는 법을 터득하며 수더분한 버전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운동을 할 때만큼을 있는 그대로 맘껏 찡그리기도 하고 힘들어할 수 있어서 몸은 힘들지언정 가면을 벗은 마음은 오히려 더 홀가분 한건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우리 로키처럼 신경다양인이 아닐까 고민을 할 정도로 나는 청각적으로 예민하고 사회적 상황 속에서 자주 masking을 하며 산다. 설명하자면 누구나 하는 사회생활보다는 조금 더 촘촘하고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높은 일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의 social cue를 놓치지 않고 읽으려 매 순간 노력하고 비사회적인 나의 진짜 속마음보다는 상황적 맥락에 맞는 반응을 보여주려 애를 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나도, 내 주변도 예민한 나의 본모습으로 인해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이다. 영원히 외딴섬처럼 혼자 살 수 있으면 몰라도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 세상 속에서 모든 걸 불편해하며 매사 불평만 해댈 수는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가 된 이상 나는 더더욱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틀 안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기에 이 세상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자 결심이었다.

*masking: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흉내 내거나 감추는 것

*social cue: 사회적 신호


하지만 딱 알맞은 기준과 정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이 고요하고도 치열한 무던함을 향한 고행은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한낱 겉치레나 번지르르한 처세술을 연마하는 것으로 시작했을지 모르는 이 사회 친화적인 사람이 되는 여정은 특별한 로키를 키우며 진심으로 나를, 또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는 과정으로 한층 진화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눈이 부시거나 씨끄러울때면 난 때때로 어지러움이나 메스꺼움을 호소하고는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 증상을 숨겨가며 상황에 맞게 미소를 띠기도 하고 연달아 사람들을 만난 뒤 몇 날 며칠을 혼자 어둠 속에 누워 있고 싶을 때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적절한 사회적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할 때에도 난 미리 전략을 세워보고 짜놓은 대본 그대로 실천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저 스몰토크를 나누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내게는 물 흐르듯 쉬운 일이 아니기에 모든 인간관계에 품이 참 많이 든다.


겉으로는 사교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뚝딱 거리는 로봇 같고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불편한 게 천지인 나임에도 육아를 하면서는 많이 달라졌다. 로키를 위해서라도 나의 몸과 마음의 예민 레이더가 과하게 작동하거나 과부하에 걸려 내면이 무너지지 않게끔 최대한 자연스려운 평온함을 유지하려 꾸준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잔잔한 호수 위를 평온하게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력을 다해 헤엄치고 있는 포커페이스의 백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예민한 부분을 다듬어가는 이 정교한 과정 속에서도 부작용은 존재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수다나 식사를 진심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정할 수 없이 처절하게 뼛속까지 외골수인 나의 성향을 무시한 채 나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다 번아웃이 왔던 시기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최근에는 마침내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을 만큼의 딱 알맞은 균형감각을 갖추었다고 믿었다. 일상 속의 크고 작은 파도를 완만하게 받아들이고 또 덜어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며 그럭저럭 남들과 어울리고 원만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해 왔는데 이게 웬걸.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로키가 덜컥 제 발로 태권도장을 찾아가 다니게 되면서 내 마음이 영 편치 않았고 명랑한 사회적 가면을 쓸 여력이 현저히 줄어만 갔다. 역시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때때로 치고 올라오는 나만의 ‘완벽한 통제감‘이라는 자만심을 가뿐히 꺾어주어 겸손의 길로 나를 인도하는 듯하다.


이제는 여유롭게 수많은 공을 한꺼번에 저글링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건방을 떨던 내가 다시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좋았으나 태권도장의 정상발달 아이들이라는 주류 속에 낀 비주류로서 나는 또다시 우리는 떳떳하지 못한 2등 시민이라 생각하며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우리의 상황을 흔쾌히 이해해 주시고 품어주시는 관장님 그리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도 나는 무던치 못하게 많이도 아팠고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닌 척을 해봐도 내겐 가시방석만 같은 태권도장 안 우리 아이의 모습, 그리고 또 추가된 지출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탓일 것이다.




아이의 생일을 앞두고 미리 여러 가족을 만나 축하를 받고 들뜬 탓에 뭘 먹든 입에 맞아 과식을 할 정도였지만 예리한 내 명치가 앞발을 번쩍 든 채 흥분한 말 같은 나를 ‘워워’ 하고 막아서며 고삐를 붙들었다. 나의 소화기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참으로 사회성도 눈치도 없는 투명한 놈인데 정말 더럽게도 거짓말을 못하는 친구다. 내 속에 들어오는 모든 걸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내 위장은 딱딱하게 굳은 채로 이제 더는 무딘 척할 수 없다며 말 그대로 shut down 해버렸고 난 결국 모든 걸 다 토한 뒤 앓아눕고야 말았다.

*shut down: (기계가) 멈추다, 정지하다


어느 한의사던지 내 맥을 짚으면 꼭 하는 말이 이제야 완전히 납득이 될 것 같다. 늘 듣는 얘기가 정말 예민하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진맥 상 체질 자체가 워낙 예민하여 소화가 잘 안 되니 살이 절대 찔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먹지 말란 걸 하도 먹어대서 이리도 인자한 체형이 되어가는 걸까. “밀가루, 고기 다 멀리하시고 스님이다 생각하시고 채식 위주로 드세요. 그래야 소화가 돼요”라던 한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럼 제 식욕은 타고난 체질을 뛰어넘은 건가요?‘라고 묻고 싶은 내 의구심을 꾹 누르고 그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던 나다. 어릴 적부터 배고픈 것도 잘 못 참고 살도 잘 붙는 나는 정녕 식탐에 지배라도 된 걸까. 오죽하면 내가 확 예민해질 때면 남편이 배고프냐고 물을 정도이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꽤나 무디거나 적어도 평범해 보일만큼 나를 훈련해 왔음에도 내 장기는 아직도 갈길이 구만리다. 그래서 유치원이 끝난 후 로키를 태권도장에 데리고 갈 생각을 하면 ‘우리가 센터가 아닌 보통의 학원을 간다고?‘ 하는 설렘 반 그리고 지시를 따르지 않고 태권도장을 휘젓고 다닐 로키에 대한 근심 반으로 배가 사르르 아파 오고는 한다.


현재 6살인 우리 아이는 오늘부로 만 5세 생일을 맞이하였지만 아직 또래와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한다. 그래서 로키는 태권도장의 멋진 형아, 누나를 보고 신이 난 기분을 방방 뛰는 것으로 표현하고 같은 유치부 아이들이 반가워서 곁을 맴돌고 웃으며 또 힘차게 위아래로 점프를 한다.


정적이 흐르는 명상 시간에는 대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은 얼굴로 마지못해 앉아 주위 눈치를 쓱 보고 눈을 한번 찡끗 감았다가도 도저히 안 되겠는지 일어나 버리기 일쑤이고 너무나도 좋아하는 관장님을 덥석덥석 안는 일도 다반사다. 발차기 시범을 보이시다가도 때때로 다가오는 로키를 안아주고 달래주는 너그러운 관장님과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그러려니 지켜봐 주는 아이들을 볼 때면 너무 고마우면서도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그래서 마치 로키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마음을 내려놓는 수행을 하려고 태권도를 다니는 것만 같다.


물론 다른 유치부 아이들도 태권도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하기는커녕 마냥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고 바닥을 구르기 일쑤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꼬물대는 새끼 강아지 같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임에도 우리 아이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아직 태권도를 다닌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게 애정이 식어가는 애인의 모습을 눈치채고 먼저 이별을 고할 찌질한 결심을 하듯이 난 속으로 태권도에 대한 애정을 애써 억누르고는 했다.


어느 날 불쑥 아이들이 로키가 싫다고 밀어내거나 관장님이 어렵사리 “어머님 죄송하지만…”이라는 서두로 우리에게 안녕을 고한대도 고작 태권도 하나로 상처받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태 본능적으로 기를 쓰고 상처 입지 않으려고, 절대 피 한 방울 내어주지 않으려고 정을 떼고 또 떼가며 태권도에게 내 마음속 작은 방 한 칸 조차 내주지 않으며 안간힘을 써 온 듯하다.

그렇게 가시방석 같은 자격지심 위에 앉아 로키의 엉망진창인 태권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어찌어찌 견뎌 내고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서려던 찰나 관장님이 “잠시만요!” 하시며 우리를 불러 세우셨다.


‘올게 왔구나.’


나는 결국 분수에 안 맞는 인싸 태권도에게 뻥 차이는구나 싶어 심장이 내려앉았지만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내 표정을 읽어내려는 로키 앞에서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관장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나의 모든 예상과 알량한 자존심이 무색해질 만큼 어안이 벙벙해지며 울컥해서 목이 콱하고 막혔다. 관장님이 예쁜 초코 케이크가 든 박스 하나를 들고 “로키 생일이죠? “라고 물으시며 우리에게 성큼성큼 걸어 나오셨기 때문이다.

*인싸: 인사이더의 줄임말로 친구가 많고 사회생활에서 활발하게 지내는 사람


아 나는 여전히 얼마나 하찮고 비루한 인간이란 말인가.


웬만한 건 다 초월했다고 말하면서도 태권도장 내 다른 아이들을 보며 속이 타 내 멋대로 사람들 마음을 곡해하고, 해석하고, 결론 지어버리려는 이 못된 심보를 조장하는 자격지심에게 여전히 이리 쉽게 휘둘리고 있으니 말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내 마음은 상상도 못 하신 채 “로키! 생일 축하해!”라고 호탕하게 말하시고 씩 웃으며 아이를 쳐다보시는 관장님께 충분한 감사인사를 전하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밀려드는 다음 시간대 아이들의 인파에 등 떠밀리듯 나오며 결심했다. 그만 두려워하자고.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어디 한번 마음껏 사랑해 보자고 말이다. 누구나 두렵고, 누구나 상처받는 예측불가하고 정답이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만 불리한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 고약한 자격지심을 좀 끊어내자고 말이다.


아무도 몰라줄… 아니 몰랐으면 하는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 괜한 자존심을 세우며 신경정형성이 주를 이룬 세상과 줄다리기하는 이 영양가 없는 밀당에 마침표를 찍어야만 비로소 로키의 생일을 보다 떳떳하게 축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만 진심으로 너도 나도 지난 1년 동안 성장하느냐 참 고생했다고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말해주며 아이를 꼭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로키 네가 참 자랑스럽다고,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든 걸 사랑한다고…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온마음을 다해 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다. 우리가 좀 무던하지 못하면 어때? 좀 예민하고 뚝딱 거리면 어때? 함께 먹는 초코 케이크 맛이 이렇게 좋기만 한데. 그러니 우리의 삶의 초점이 자격지심이라는 가시방석에 내내 찔리지 않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라본다.


생일 축하해 우리 아들. 부족한 나를 매일 로키엄마라는 존재로 거듭나게 해 줘서 고마워. 정말 많이 사랑해. 우리 계속해서 마음껏 사랑해 보자! Happy 5th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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