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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Oct 03. 2022

날씨에 진 빚

변덕스러운 마음


아침 달리기를 시간, 속도, 거리에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무릎에서 이상신호가 오기 전까지만 격일로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떤 날은 비를 왕창 맞았고, 갑자기 갠 날씨에 뜨거운 태양아래서 달려야 했고, 미세먼지 나쁨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늘 뛰고 나면 기분좋은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날이 궂으면 일도 궂을거란 믿음이 있어 매일 기상예보를 확인하며 오늘 하루를 점치고는 했는데 달리기를 이렇게 하다보니 날씨와 상관없이 내 컨디션은 충분히 관리가 가능함을 깨달았다. 기압이 낮아 숨이 턱턱 막히면 속도를 줄이고 작은 숨으로 이어가면 되었고, 몸이 무거워 다리를 옮길 힘이 없으면 어깨를 내리고 아랫배에 조금 힘을 불어넣어 몸을 가볍게 하면 뛸 만했다. 날씨와 상관없이 뛰는 연습을 하니 그동안 날씨 탓을 하며 몸을 사리는데 집중했던 나를 발견했다. 날씨에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날씨를 비유하곤 한다. 날씨가 절기에 흐름에 따라 기압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같다. 타인과 나는 그 마음에 의해 상호작용을 하며 관계를 맺는다. 그로인해 나와 다름을 인식하고, 그에 적응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좋은 관계로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그 노력이 통하지 않으면 끊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원한다고 나와 다르다고 쉽게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부모다.


우리 엄마는 날씨로 비유하면 기후가 매우 불안정한 변덕스러운 날씨다.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로 동네 부잣집 맏딸로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 외할아버지는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가부장제 사회에 나오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런 엄마가 정서적인 온기가 낮은 집에 시집와 애 셋을 낳고, 시부모를 모시며 평생 살림만 했으니 시집살이가 얼마나 힘겨웠겠나.. 귀한 외동아들인 우리 아빠는 반대의 가정에서 자랐다. 둘의 공통점은 금지옥엽으로 자랐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받은 사랑의 질과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 둘은 평생 서로 주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고 원망하며 불안정한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로인해 우리 삼남매는 엄마의 변덕스런 기분, 불안과 걱정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 엄마는 전형적인 희생의 아이콘 어머니 상이 아니다. 맛있는 빵을 사면 제일 달고 고소한 부분만 쏙 떼어 먼저 드시고, 목욕탕에 가면 귀한 우유를 자신의 몸과 내 몸에 처발처발 발랐다.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아프고, 힘든 사람으로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종합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이상소견이 없다는 의사의 말도 엄마에게는 이상있으니 조심하라는 말로 들리는지 온갖 건강관련 약과 음식을 챙겨 드신다. 자기연민과 자기애가 높은 엄마는 시대를 잘 못 타고 난 것 같다. 만약 엄마가 지금 30대라면 예쁘게 치장하고, 예술관련된 일을 즐기며 자신의 성장을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는 작은 오빠와 대화를 나누다가 언성을 높혔다. “아으.. 지겨워! 그놈의 엄마는! 엄마는!!” 옆에서 듣던 나는 빵터졌다. 나도 엄마와의 대화가 답답해 “엄마는 왜 이렇게 해?”라는 말을 자주하고 있던 터라 웃으면서도 찔렸다. 어려서는 “엄마아~ 밥줘”, “엄마아~ 이거 해도 돼?”, “엄마~”하던 우리가 이젠 엄마를 타박하고, 가르치려 드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싶다. 분명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상이 있고,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거고, 자식들이 원망하는 것을 알 것이다. 자신의 욕구가 누구보다 뜨겁고, 감정은 쉽게 시시각각 변해 생각을 흔들고, 타인에게 줬던 불편함이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 왔을 때의 쓰라림을 몰랐을 리가 없다.


아무도 변덕스러운 날씨를 탓하지 않듯이 사람의 변덕스러운 마음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진 엄마에 대한 원망의 핵심은 엄마의 불안정한 마음이 늘 나에게 영향을 미쳐 방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자주 하는 아프다는 말, 기분에 따라 피드백하는 신경질적인 말이 너무 싫었다. 이제는 그러려니..하며 다시한번 안부를 살피거나 오늘 내 기분을 유지하려고 마음을 잡는게 버릇이 되었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상관없이 나가는 달리기처럼 말이다.


엄마는 심통이 잔뜩 난 어느날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부모 덕에 사는 주제에.. 어쩌구저쩌구” 당시 나는 무시해버렸는데 계속 그 말이 따라다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젠 인정할란다. 늙은 부모가 살아계시고 부모그늘에서 부모 덕으로 이 세상을 사는거 맞다. 그리고 나는 날씨에 빚을 지고 살듯이 부모에게도 빚을 지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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