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을 위한
우리는 선택에 대한 질문들을 할 때가 있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최악의 선택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떠올려보게 하기도 하고, 삶의 과업을 이루는 과정 속 진로, 관계 등에 관한 질문들이 있다. 만약 그때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이걸 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이에 반응하는 대답 안에는 현재 삶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가 반영되어 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40대 후반 여성이다. 사람들은 5년 전 만해도 결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 없어 애매한 호칭으로 불렀으나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호칭은 그렇다쳐도 당연히 결혼하고 아이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거나 대화를 이어나간다. 앞으로 계속 만날 사이라면 솔직히 말하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예상처럼 나도 연기(?)를 한다. 괜한 질문을 또 받아서 기분 상하기 싫기 때문이다.
왜 결혼하지 않았어요?
꼭 해야되는건 아니지 않나요?
초면에 이런 질문을 던지면 나는 바로 방어적인 대답이 툭 튀어나간다. ‘왜’로 시작하는 질문에는 나도 모르게 불쾌감이 섞인 답으로 대응하게 된다. 차라리 ‘그동안 만난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라는 질문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바로 당시의 나로 돌아가 그때 상황을 상기하고, ‘만약에’를 상상하며 지금 삶과 대조해보는 즐거운 경험이 된다.
과거 속 내가 내린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역시 좋은 선택이라고 다독여보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고, 앞으로 닥칠 미래는 알 길이 없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문제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나는 현재를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선택의 순간은 피할 수 없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조금이라도 그 무게를 덜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다. 그 선택이 ‘얼마나 나답게 할 수 있게 하는가’이다. ‘나다움’에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나, 심리정서적 / 물리적 환경 속의 나, 주변사람과의 관계 속의 나, 사회적 역할 속의 나.. 모두 포함된다. 이것들을 펼쳐서 선택에 의한 영향이 서로 상호보완이 가능한지 고려해 본다. 중요한 선택일수록 그 과정이 정교하다. 물론 아주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선택도 있어 후회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현재의 삶을 더욱 잘 느끼고,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선택의 앞면 뿐만 아니라 뒷면도 늘 확인해야 한다.
오늘은 연휴인 날이어서 아침 일찍 운동을 다녀와 이불을 빨아 옥상에 널었다. 어제 내린 비로 온도가 부쩍 내려가고, 바람이 많이 불었으나 언뜻 보이는 햇살이 마음에 들었다. 청소를 마치고 반려견 달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동네에 강아지들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마력의 카페가 있다. 평소에는 피해가지만 오늘은 여유를 부려 커피한잔과 쿠키를 먹으러 들어갔다. 카페사장들에게 환대를 받던 달이를 흐뭇하게 보는데 투둑 투두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어쩌나 옥상에 널어놓은 이불이 먼저 생각났다. 날씨를 다시 확인했어야했는데 아무 생각없이 행동한 나를 나무랐다. 그러다 소파 위에 쉬고 있는 달이를 보니 만약 이 카페를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린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비를 쫄딱 맞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 이불을 걷고 투덜댔을 것이다. 이불빨래에만 신경을 썼다면 카페에서의 안락함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비가 그치고 금세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달이와 나는 언릉 나가 자주가는 공원을 갔다. 원래 가족, 연인, 강아지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인데 변덕스런 날씨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리드줄에서 풀려난 달이는 비에 젖은 나무데크, 잔디에 들어가 마구 등을 대고 비비고, 구르는 난리부르스를 췄다. 밋밋할뻔 했던 하루가 이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