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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기덕희덕 Aug 10. 2023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관계에 대한 이야기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2016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이다. 다니엘르 톰슨이 감독하고, 기욤까네, 기욤갈리엔이 각각 에밀졸라, 폴세잔을 맡았다. 네이버 영화정보의 줄거리로 내용을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남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만난 두 소년, 화가를 꿈꾸는 폴과 글을 쓰는 에밀은 어린 시절부터 희망, 좌절, 꿈과 사랑까지 모든 것을 공유한다. 서로를 동경하고 무척 아끼면서도, 냉혹한 평가 또한 서슴지 않으며 함께 성장하는 두 사람은 청년이 된 후, 파리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화가와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테레즈 라캥], [목로주점] 등을 출간하며 명성을 쌓는 에밀과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에도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폴. 한때는 모든 것을 함께했지만, 엇갈리는 운명을 맞이하고 에밀이 비참한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발표하자 폴은 에밀을 찾아가는데... 40년에 걸친 두 예술가의 위대한 우정이 공개된다!


https://naver.me/GAiBhL9Q

이 영화는 지난 학기 미술평생교육원 수업에서 추천받았는데 다른 수업에서 세잔의 그림을 모작하고 있던 때라 꼭 봐야 할 영화로 목록에 넣어놨었다. 폴세잔의 작품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할 정도로 눈으로 관찰되는 내용으로 따라가며 그리기에 매우 어려웠다. 자유로운 붓터치는 형태를 포착하는데 방해가 되었고, 유화 초보가 같은 색을 조색하기에는 중간색이 많아 칠했다 지우고 덧 그리기를 반복했다. 대체 세잔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겨우 흉내내고 마무리한 나의 완성작
폴세잔이 매일 바라본 생-빅투아르 산, 그의 옆에 있는 에밀졸라
Paul Cezanne (1839-1906) Montagne Sainte-Victoire, c1890

위대한 화가 폴세잔의 작품이다. 다른 그림에 비해 단순해 보였고, 빠른 시간에 완성할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이거 웬걸.. 유화물감의 장점을 수정과 덧 그리기로 잘못 알고 있던 나는 그림 그리는 내내 난항을 겪었다. 건조가 늦다는 유화의 특성은 내 속을 마구마구 긁어댔다. 탄력 있는 붓은 기존에 채색해 놓은 부분을 모두 밀어냈고, 어렵게 만들어 낸 색은 밑색과 섞여 전혀 다른 색이 되어버렸다. 세잔의 과감하고 무심한 붓터치를 따라가지 못한 나는 조금이라도 붓이 엇나갈까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손을 벌벌 떨었다. 3주에 걸친 작업은 건조상태에 따라 수정을 하거나 기다리며 진행해야 했다. 그 과정이 너무 고달파 폴세잔을 찾아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히 지도교수님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망정이지 붓을 놓고 울뻔했다.


폴세잔을 찾아가서 물을 수 없으니 영화라도 보자며 뒤늦게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을 보았다. 그림 그리는 장면을 쫓아가며 궁금증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지만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꽤 광범위했다. 일단 폴세잔이 어떤 사람인가에 먼저 주목해 보았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뒤늦게 인정받은 폴세잔의 인생은 지독한 자기와의 싸움, 주변 사람들과의 마찰, 예술에 대한 광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처럼 감각, 감정을 표현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엄마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의 광기 어린 표현욕구, 예술가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공기의 유연함과 태양의 뜨거움과 바위의 난폭함을 그려내고 싶습니다.


매일 물감을 배낭에 넣고, 언덕을 올라 이젤을 펴고, 캔버스에 생빅투아르산을 담는 몇몇 장면에는 그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을 흉내 내며 잘 안된다고 투덜댄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마치 노력 없이 남의 것을 탐하고 도둑질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인생을 다 바쳐 이뤄낸 예술적 성과를 감히 어느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욱 굳혀졌다.


이 영화는 한 화가의 전기를 담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가 에밀졸라와 폴세잔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둘은 예술가의 삶 속에 누구보다 서로를 지지하고, 비판한다. 에밀졸라의 폴세잔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은 보는 사람의 가슴에도 비수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 둘은 인연을 이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독한 비판이 아프고 쓰리지만 약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들의 우정으로 말하고 있다.


결국은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임을 영화는 상기시킨다. 자기에 대한 부정, 비난, 혐오, 의심이 가득한 폴 세잔의 세상은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 차있다. 타인의 인정이 곧 나인 것만은 아닐진대 그 자극에 매우 취약한 세잔은 자신을 극으로 몰고 간다. 주변상황에 자극을 받으며 괴팍한 모습으로 격분하고, 주변의 도움을 빈정거리며 물리친다. 가장 내 눈에 거슬렸던 장면은 캔버스를 찢어 부서뜨리고, 붓을 내던지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곧 나를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에밀졸라는 ‘작품’이란 소설의 주인공을 세잔으로 모든 독자들이 알아차릴 만큼 그대로 그려냈다. 이를 알게 된 세잔은 에밀졸라를 찾아온다. 자신도 알고 있는 하지만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을 소설에서 직면하게 된 세잔은 격분하여 에밀졸라를 거칠게 몰아세운다. 에밀졸라는 참고한 다른 화가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작품 이면의 자신의 슬픔을 왜 몰라주는지.. 더 이상 글을 못쓸 거 같다는 두려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지.. 너를 왜 좋아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매정한 성정으론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못할 거라며 쇄기를 박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도 함께 거론되며 끈끈한 우정을 나눈 예술가로 소개되고 있다. 보는내내 저 정도면 절교한거나 다름없지 않나 하는 물음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 친구가 생각났다. 우린 잘 맞는 친구가 아니다.유치원 때부터 만나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지만 취향이 참 달랐다. 그러나 ‘오빠 둘에 막내딸’이란 유일한 공통점은 집에서 받는 구박과 핍박(?)에 대해 투덜거릴 수 있게 한다. 사실 사랑많이 받고 자란 욕심쟁이 막내딸들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있지 않나.. 우린 그걸 주변 눈치보지 않고 떠들어댄다. 단, 정치얘기는 금물이고 취향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고 비판하면 안된다. 서로 빠직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인데 가끔 배알이 뒤틀릴 때는 서로 빈정거린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연락하지 않는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인사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나도 에밀 졸라가 했던 말처럼 이 친구가 왜 좋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린 특별한 우정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전적인 지지와 격려 이런 단어와는 우린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어쩌다 만나 온갖 서러움을 마구 토로할 수 있는 사이이다. 그럼 된거 아닌가?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나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이다. 장면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엑상프로방스의 생빅투아르 산과 자연 속의 폴세잔, 당대 예술가들이 풍류를 즐겼던 장면은 덤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기억나는 장면, 가슴에 와닿는 장면이 달라 풍성하게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렇게 내 두서없는 글에 대한 변명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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