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소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재판 장면이 기억납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가 해변가에서 마주친 아랍인을 살해할 때 아무 동정심과 연민을 느끼지 못했을 거란 배심원들의 착오에 엉뚱한 힘이 실리고 말죠.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정성 어린 슬픔으로 모시지 못한 아들의 모습은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다른 범죄에 작용할 만큼 까다로운 기준이 되어야 마땅한 것일까요? 아랍인을 죽인 이유를 묻고자 할 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느꼈던 감정이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는 증언만으로 인과가 성립해야 할까요?
뫼르소는 사회가 ‘규정’한 솔직함에 맞닿지 못한 죄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사회가 그어놓은 선들과 점들 안에 갇히지 못한 죄로 뫼르소는 그의 철학을 접어야만 합니다. 다른 느낌과 사고방식을 가진 ‘이방인’으로서의 뫼르소를 보면서 내가 속한 사회는 어떤가를 되짚게 됩니다. 나를 규정하고 심판하는 사회의 시선을 앞두고 괜히 눈치를 봅니다. 그 사회와 더불어 지내지 못한 ‘이방인’에겐 어떨까요. 더욱 난해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내가 속한 세상에도 자신을 완벽히 맞추어 가지 못하는데, 심지어 낯선 사회, 낯선 세상의 규정이란?
삶은 다양한 기준과 잣대의 늪으로 가득 찹니다. 규율과 규칙에 익숙해지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도 도처에 많습니다. 나의 공간을 벗어나 다른 곳에 안착하려는 순간, 나를 향한 숱한 기준들은 거리낌 없이 내게 덤벼듭니다. 이방인들은 새로운 생활권에 몸을 맡기면서, 새로운 사상과 영역을 조심히 배워보려 합니다. 고지식한 모습은 숨기고, 낯선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합니다. 여기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는 건 낯선 장소에 발을 빠르고 안전하게 디딜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그들의 말이 정확히 들리지 않아도 괜히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그들이 하는 말에 주의 깊게 경청을 해 보아도, 다시 내뱉어야 할 내 답변에는 괜히 거짓이 덧붙여집니다. 그들의 입맛과, 기준과, 문화를 어색한 말투와 제스처만으로 거스르게 된다면 더욱 내 행동만 굼뜨게 될 것 같습니다.
차가움이 다시금 번지는 2월, 계절의 모호한 변덕이 몸을 가렵게 만드는 이때를 빌려 답답한 응어리를 떼어내고 싶은 이방인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차가운 한적함이 깃드는 감정, 어쩔 줄 모르겠는 방황과 그래도 무언가 새롭게 이어가고픈 방랑벽이 연초 환절기를 닮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좀 더 몸을 아프게 쑤시는 감정에 집중을 해보는 글로써 나름 이 계절감에 맞춰 풀어가는 것이 브런치 피드 구성을 다채롭게 시도하는 점이라 생각됩니다. 겉도는 중압감을 심히 표현한 작품들을 몇 차례 훑으며 진중하게 읽어 보고 감상문을 남깁니다.
[이방인] 감상문 리스트
# <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소설
# <겟 아웃 GET OUT> - 조던 필 영화
알아들은 단어와 구문들을 꿰맞추는 리스닝을 이번에는 한쪽 귀로 해야 했다.
앨런은 말이 빨랐지만 두 번씩 되풀이하는 버릇이 있어서 알아듣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치 얘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끼리만 일행이고 자신은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현주가 이 도시 사람이 아니어서도, 아이와 직장 등이 현주와 거리가 먼 화제여서도 아니었다. 그건 한국에 있을 때도 종종 느끼던 감정이었다. 조명이 비치는 무대에서 자신만이 일행에게서 떨어져 나와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잊히거나 제외된 존재 같았다.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
노을이 사라진 하늘과 강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강 건너편 고층건물들은 마지막 빛에 의지하여 검은색 조형물처럼 변하더니 어둠이 더 깊어지자 점점 화려한 불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빛의 그림자가 강물에 반사돼 마치 어둠을 밀어내듯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다.
“근데 저기 건너편은 어디니?” 승아가 물었다.
“맨해튼, 여기에서 보아야 한눈에 볼 수 있어. 가까이 가면 너무 크니까.”
승아는 머릿속으로 이 도시에서 남은 시간을 헤아렸다. 이틀은 더 맨해튼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