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환 Sep 30. 2021

[바다] 3. 신과 함께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소설



작가 | 얀 마텔

출간연도 | 2001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이사야 41장 10절


바다 위를 항해할 적과, 바다 위에 난파될 적은, 유영하는 겉모습은 같다가도 처한 상황에서만큼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전자는 우리의 인생이 펼쳐지는 정돈된 시야를 비유할 만큼 굳세고 직선적인 느낌인 반면, 후자는 갈 길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낙오자의 모습을 비춘다. 후자의 경우 더욱이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문제를 수반하기까지 한다. 항해와 난파, 애초에 이 둘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새 출발을 위해, 경건한 휴식을 위해 많은 이들이 바다 항로를 선택해 유영을 즐기지만 나를 지탱하는 배가 기울어지는 순간 모든 것은 반전이 되어 버린다. 즐거움은 한순간 공포심으로 바뀐다.


그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는가. 삶은 변덕을 멈추지 않는다. 그 혼란마저 인생인 것이리라, 편안히 반추할 수 있는 누군가는 그런 상심 가득한 상황을 이겨냈던 이유를 한 글자로 압축한다. ‘신.’ 다른 말로 ‘종교’가 그 해답이라고 한다. 삶을 축복해야 할 때, 반대로 구원을 받아야 할 때, 종교인들은 신께 그 매일을 나누고자 한다. 삶의 무엇이든, 신에 고하고 신을 위하며, 결국 신의 곁으로 가고자 한다. 왜 그들은, 아니 우리 사람 모두는 신께 기대려 할까. (불가지론자는 허용하지 않는 소설 화자의 입장에 입각해서 보면 말이다.) 우리는 작은 존재로, 조금이라도 통제를 가할 수 없는 세상의 큰 것들에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는 어떤 큰 것들보다 더 큰 경지가 신이길 기대하는 경건한 소망을,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 인도 소년은 그 두려움을, 호랑이와 함께 신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인생의 변덕스러운 파랑 위에서 함께.


비슈누가 자고 있을 때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가 우주 전체를 본 현자 마칸데야 같은 기분이었다. 거기 있는 모든 걸 본 그가 두려움으로 죽어버리기 전에 비슈누 신은 잠에서 깨어 그를 다시 입에 넣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서, 내 고난이 커다란 구도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내가 겪는 고통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였다. 유한하고 미미했다. 그리고 난 아직 존재했다.




바다 위, 이보다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일본 화물선 침춤 호는 가라앉았다.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실은 채로. 배가 침몰하는 날, 피신 몰리토 파텔, 줄여서 ‘파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가까스로 30인승의 구명보트에 올라타 익사를 면하게 된다. 장장 7개월 간 그는 태평양 한가운데 위를 표류하게 된다. 사람 고이 잡아먹을 줄 아는 뱅골 호랑이와 함께 말이다. 리처드 파커는 그 호랑이의 실제 이름이다. 리처드 파커는 파이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동물원에서 자라난 놈이지만, 맹수 본능은 야생 호랑이의 것과는 차이가 없다. 표류를 시작하는 조난자 파이는 구명보트 위에서 생존적 두려움을 강하게 느낀다. 가족을 잃은 처량함, 광활한 바다의 위압감이 아니다. 그것들은 잠시 제쳐두고, 저 짐승에게 결국 먹이가 될지도 모르는 운명에 대한 공포심이 우선이다. 그런 운명은 맹수와 겨뤄 본 적 없는 주인공에게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파이의 표류기는 리처드 파커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한다. 비상식량과 노를 묶어 뗏목을 만든 다음, 리처드 파커가 올라탄 구명보트와 줄로 이어 그곳에서 방어진을 친다. 조난자를 위한 매뉴얼에 호랑이 공격에 대비하는 방법이 없음을 알고 불필요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곧이어 구명보트 안에서 영역 싸움을 하게 되며, 영역 침범을 경고하기 위한 호각 소리로 리처드 파커의 조건 반사 신경을 길들이기까지 한다. 소설의 중반부가 지나서도 이 둘의 경계는 그칠 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일차적 두려움으로 조난 상황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된다.


아무래도 신은 동물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대립에 조금씩 개입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곧 심한 폭우를 데리고 와 잠잠하던 바다를 미쳐 날뛰게 만들어 버린다. 쌓아둔 식량과 구호 물품들이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신은 그들의 생존력에 강한 충격을 들이밀어 서로에게 향한 경계심과 체력을 서서히 낮추어 버린다. 리처드 파커의 털엔 생기가 떨어지고, 파이의 마른 몸엔 지친 근육들이 율동을 잃어 간다. 이제 그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서로가 아님을 깨닫는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강한 두려움이 스며들기 시작하며, 오히려 그들이 살아남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된다. 마음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된 지점은 둘 모두가 살아남았다는 행운이라는 것. 폭풍우 속에서 신은 그렇게 설파한다.


여러분에게 비밀을 털어놓겠다. 마음 한편으로 리처드 파커가 있어 다행스러웠다. 마음 한편에서는 리처드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가족과 비극적인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 있게 해 줬다. 그런 그가 밉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다. 이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리처드 파커가 없다면 난 오늘날 이렇게 살아 여러분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 얀 마텔은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우정이나 의리 따위의 군말로 점치지 않는다.

그저 살아갈 방도를 찾아갈 궁리의 끝에서 서로가 해답이 되었음을 알게 된 과정을 눈여겨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나친 풍파를 끊임없이 던져 준 신적 존재에 대해 갈망해 보기를 독자들에게도 넌지시 귀띔한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어린 주인공 파이는 지구촌의 가장 우람한 종교들의 형태를 읽어 내릴 때가 있다. 힌두교인으로서 평생 접해온 거룩한 의례를 설명하며, 기독교의 마틴 신부를 만나 세례를 받으려는 이야기와 이슬람교인으로서 코란을 외웠던 에피소드를 잠시 들려준다. 그가 이야기의 시발점을 종교로 끌고 온 이유가 무엇일까. 소설은 ‘두려움’을 파고든다. 파이가 움직이지 않으면 곧바로 닥칠 위험들이 구명보트 주위를 감싸고 있으며, 리처드 파커와의 공생 관계마저 소설의 긴 부분을 차지하면서까지 긴장감을 자아내는 소재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신은 그제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이들에게 적막한 혜안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무조건 그들이 함께 있어야 함을, 동물과 인간이라는 이질적 관계에서조차 노련한 연대감을 찾을 수 있음을. 종파와 관계없이, 파이와 리처드 파커에게 나타났던 신은 주인공들의 험난한 여정을 지탱해 주는 지침서가 된다. 맨 처음, 파이가 찾아 나선 종교의 의미는 종교가 가장 절실해지는 높은 파고 위에서 풍요로워진다.


신의 가르침이 함께한 표류기의 끝은, 의아하지만 조촐하기 그지없다. 구명보트가 멕시코 연안에 도착하자마자 리처드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림지대로 곧장 들어가 버린다.


내가 흐느낀 것은 리처드 파커가 아무 인사도 없이 날 버리고 떠나기 때문이었다. 서투른 작별을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왜 그랬을까 싶은 대목이다. 호랑이 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물적 본능을 감춘 행위일까. 안전한 육지 위로 착지한 순간 리처드 파커에게는 다시금 사람을 압도할 공간적 지대가 마련된다. 조난 상황에서 필요로 한 인간의 이성적 판단마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 그에게 손쉽게 먹잇감을 얻을 잔인한 명분마저 생겨 버린 터. 그러나 리처드 파커는 기회를 거부하고 여정을 함께 한 파이를 그대로 남기고 떠난다. 본능적 감각에 조용히 반항을 일으키면서, 두려움을 같이 이겨낸 동행자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안전한 뒷모습만을 보여 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동물을 대하는 상호관계적 시선이 주인공 파이에게서 중요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분에 숱한 종류의 동물들과 알고 지낸 파이는 동물을 접하는 흔한 시선들보다 더욱 애절하고 친근하다. 아주 작은 변화에도 쉽게 놀라는 동물들이 오히려 위협으로 간주되는 세상을 꼬집으며, 상어 떼가 나타나더라도 그들의 움직임을 세세히 관찰하여 되려 오랜 친구가 되어가는 느낌을 공유할 줄 안다. 소설 속 적지 않은 부분을 할애해서 동물에 대한 파이의 흥미를 묘사해 놓는데, 이는 책을 즐길 수 있는 장점 중 하나가 된다. 신이 정말 있다면, 침몰하는 배에서 단연 파이만큼은 구해 줄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리처드 파커를 살려 두기로 결정을 할 것도 미리 알았을 테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 2. 천국에 가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