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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율립 Mar 06. 2019

<로마> 한국과 멕시코의 평행이론

 

OECD에는 비밀 소모임이 있다. 선진국인 듯 선진국 아닌 국가들의 소모임. 그 소모임을 이끄는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이다. 우리는 신문에서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노동시간 최고치를 기록했다.”와 같은 슬픈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두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실을 공유한다.


영화 <로마>를 통해 영혼의 라이벌, 한국과 멕시코의 평행이론을 살펴보자.     



정말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1. 군사 독재와 이념의 개들   


멕시코의 <박하사탕>


영화는 일관되게 뿌리의 시선에서 꽃을 바라본다. 시민의 눈에 의해 정치 현상들이 관찰된다. 하지만 친절하게 그 시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배경 설명의 역할을 했던 TV는 코미디 쇼만 주야장천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적절한 배경지식을 지니고 있어, 언뜻언뜻 보이는 시위대와 과격파 청년들을 보고 그것이 시민과 군부독재 세력과의 대립임을 한눈에 알아챈다.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내밀하게 볼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뿐이랴 감독은 한국인을 위한 특별한 애정을 담아서, 과격 청년대를 가르치는 한국인 태권도 사범을 출연시킨다. 관객들은 조건반사적으로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곧 무예를 수출한 게 아니라 폭력을 수출한 것임을 목격하게 되고 뿌듯함은 기분나쁜 한기로 변화한다.





2. 무책임한 남성   


여자의 직감은 실재하는 것인가?


소피아 가족은 남편 때문에 풍파를 만난다. 영화 속에서 이룰 것 다 이룬 상류층의 남자가 하는 것은? 불륜이다. 너무 뻔한 클리셰인가 아니면 지긋지긋한 인류의 난제인가? 아슬아슬한 곡예 주차 따위나 선보이며 가장의 위엄을 과시하던 그는 감독에 의해 뻥 차이며 영화 밖으로 사라진다.     


또한, 클레오가 그렸던 가족은 남자 친구에 의해 산산조각 난다. 연애할 때에는 세상 모든 책임감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처럼 성실성을 어필하더니, 클레오가 임신하자 자신의 길을 떠난다. 사실 등장부터 조금씩 낌새가 보였는데 그렇게 못나게 떠날 것 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이후로 이 정도의 '못남'은 오랜만이다.


계층은 다르지만 두 여성의 가족은 무책임한 남성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 그럼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영화 <똥파리>의 명대사 “왜 한국 아버지들은 집만 오면 죄다 김일성이야!”에 공감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닐 터.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운 좋게 동시에 불행하게 압축 성장한 두 국가의 암연일 것이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사회에선 성공한 남자는 나빠지고, 실패한 남자는 괴팍해진다.   





3. 강인한 어머니   


많은 이들이 남편이 떠난 자리를 누린다.


그럼에도 둘은 연대해서 위기를 극복한다. 소피아는 이판사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클레오의 깊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아이들이 있다. 두 여성이 키운 아이들은 그들을 다시 먹여 살린다. 먹여주고 재워준 건 두 어머니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그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윤택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특권이자 보상이다.      


우리들의 어머니들 역시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유교적 가치관과 돈을 벌어야 살아남는 자본주의의 압력 틈바구니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동시에 일을 하여 가계를 보태며 자신을 헌신했다. 멕시코와 한국에는 전에 없던 두 가지 요구를 자신들의 뼈를 깎아가며 응답했던 세대가 있다. 자신을 가족에게 내던져 희생하는 것은 자랑할 게 아닌 것은 자명하나, 우리 사회가 그들을 치하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도 자명하다. 그들은 하늘에 '현대의 꽃'인 비행기가 날아다녀도, 전혀 아랑곳 않고 삶의 터전에서 '뿌리'인 가정을 지킨다.


멕시코와 한국은 급격한 근대화의 부작용을 공유한다. 그로 인해 어머니라는 영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영웅이 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바라본다.






한국인이라면 쉽게 공감할, 인생의 대들보에 대한 영화.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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