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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Dec 26. 2023

쓸모없어 보여도 가치 있는 일들

     

“이번에 엄마가 김치 또 보내준다는데”

“응, 어머니가 전화 오셨어. 이번에 조금만 해달라고 했어.”

“허리도 안 좋은 사람이 매번 힘들게 김치를 담그고 그런지 몰라. 조금만 달라고 그래 저번에 김치 아직 남아 있잖아.”

“이제 그건 묵은지로 먹으면 돼. 그리고 많이 먹었어. 지난번 보다 적게 달라할게    "


 김치가 떨어질 때쯤이면 시어머니는 항상 김치를 보내주신다. 배추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겨울에는 동치미까지가 세트다. 평소 매운 음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경상도 여자라서 얼큰하고 매운 반찬에 익숙해서 사실 김치를 곁들이며 식사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시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김치는 꼬박꼬박 받으며, 밥상에는 놓고 같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남편은 김치 없이는 식사를 잘 안 하는 타입이기도 했고, 정성으로 만든 김치니까 매번 밥상에 올려져 있어야 된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습관이 된 건 아니고, 의식적으로 하다 보니 빠질 때도 많고 그리 익숙한 상태는 아니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억지로 굳이 안 받아도 된다고, 김치를 그렇게 많이 먹을 거 아니면 거절해도 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김치를 조금이라도 시어머니에게 받아야 마음이 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남편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서울 생활을 했다. 집 안 형편이 그리 형편이 좋았던 상황이 아니었기에, 타지에서도 편한 원룸을 얻어주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게 늘 마음에 걸렸다고 어머니는 얘기하셨다. 집안 도움 없이 자기가 회사 다니면서 돈 벌어서 모은 돈으로 동생 대학 등록금을 대주고, 스스로 결혼까지 한 큰 아들에게 어머니는 늘 마음 한 구석이 쓰였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받는 김치는 마치 그 마음 같았다. 떡하니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지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아마 김치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부릴 수 있는 최대의 사치는 김치에 담겨 있다. 평소에는 후식으로 먹으려고 절대 사지 않는 배지만, 우리 집에 보낼 동치미에는 항상 커다란 배가 4등분 되어서 들어가 있다. 양파와 마늘, 파를 믹서기에 갈아서 집에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시아버님께서 전화기 너머로 툴툴대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이번 해에는 배추가 달아서 더 맛이 있다고 하기도 하고, 겨울 무는 지금이 맛이 있을 때라서 깍두기로 담았다고 신이 나서 전화로 이야기하신다. 사실 도시에서 태어나서 결혼 전까지 회사 다니면서 살림 하나 안 한 며느리 입장에서는 무의 제철이 언제인지, 배추의 맛만 본 적은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이번 김치가 맛이 잘 들었겠구나 싶고, 무와 배추 탓을 하며 이 얘기 저 얘기 섞어서 하는 어머니의 말에서 이번 김치가 맛이 덜 들어서 보냈으니 걱정되시는 거구나 싶다. 그렇게 택배로 받은 김치를 보면 김치만 있지 않다. 김치 옆에 며느리가 좋아한다고 했던 양념 꽃게장과, 꽃게장을 만들면서 손질한 꽃게는 된장찌개에 넣으라고 또 한 곳에 곱게 손질해서 넣어주셨다. 그리고 손주들이 좋아하는 샤인머스캣도 넣고, 큰 아들이 좋아하는 김도 구워서 아예 보내주셨다. 김을 구우면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남편은 김치를 받는 일이 어머니가 힘드시고 하니,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또 나도 아들 둘의 엄마로서, 내가 힘든 것과 별개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다는 것이 좀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이제 더 나이가 들어서 부모가 되면 또 이 생각이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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