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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믹스커피 Dec 26. 2023

쓸모 없어 보여도 가치 있는 일들(2)


“아빠,거기 콘센트는 안 바꿔도 된다니까”

 “이걸 이렇게 콘센트 줄이 나와있는게 지저분하잖아. 보기에도 안좋아.”

“아니, 이거 우리가 쓰는건데 우리가 괜찮은건데 왜 ”

“이렇게 지나가는데 줄에 턱턱 걸려 넘어지면 어쩌려고, 이거 바꿔야된다니까”  

   

병원 검진을 오면 엄마 아빠는 늘 우리 집에서 머문다. 우리 집이 병원에 가깝기도 해서, 지방에 살고 있어서 금식과 피검사 등 검진에 지친 아빠는 바로 내려가기 힘들기에 우리 집에서 몇 일 머물다가 시골로 내려간다. 그러다보니 전기쟁이인 아빠의 눈에 우리집에서 거슬리는 전선과 조명들을 올 때마다 고치려고 한다. 우리 눈에는 별로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인데도 말이다. 검진하러 왔고 아픈 사람이 자꾸 집에서 안쉬고 뭘 또 하려고 하는게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버럭 화를 낸다. “맨날 나한테 가만히 있으라고만 해!”라고 말이다. 그러면 나도 “그럼 나중에 아프다는 소리 하지마 그러면!”이라고 빽 질러버린다. 그러고는 아빠는 조용히 전선을 잡고 수리를 하고 있고, 나는 소리 질러서 미안한 마음에 천정에 전기선을 당기고 있는 아빠 밑으로 식탁의자를 슥 들이밀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그냥 아무말 없이 지나간다.      

 아빠는 5년 전 신장암을 진단받았다. 다행히 1기여서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항암이나 약물 복용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5년 간 재발 이력이 없으면 암환자 딱지를 뗄 수 있다고 한다. 5년간 아빠는 그 검진을 기다렸다. 5년 뒤인 올해 신장암 프리 선언을 해도 되는 걸 기대 하고 갔던 아빠는 다른 걱정을 업어왔다. 신장은 깨끗해서 다행히도 전이된 것은 아니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방광과 폐를 추가 검진해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아빠는 올해 신장암 프리를 받으며 다시 방광암 1기 와 폐암 1기 딱지를 다시 받았다. 아빠는 그 뒤로는 “왜 자꾸 나는 암이 걸리는 거지”라는 말을 되물었고, 우리 가족은 “아빠, 그래도 1기라는 게 다행이잖아. 아빠 성격이 뭐 조그만한 뾰루지 난 것도 못참는 성격이니까, 내장에도 쪼그만한 암 덩어리가 있는 꼴을 못보는거야. 그러니까 나온거지. 조그만한 하나라도 떼버려야 되는게 아빠 성격이라서 그런거야.”라며 우리 가족만의 블랙코미디로 걱정을 떼웠다. 

 아빠가 병원에 있는 모습을 기억하는 처음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그 때 아빠는 쓸개를 떼냈었고, 늘 나의 입학식과 졸업식에는 가족이 없었다. 유독 겨울이면 아빠는 어딘가 아팠고 병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아빠의 아픔과 부재는 화목한 우리 가족을 만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심어져 있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나 다행히 나도 동생도 결혼을 했고,  또 나는 아들 둘이나 낳는 걸 보면서 매번 아빠는‘이건 못 볼 줄 알았는데’를 달고 살았다.

 늘 아팠던 아빠였지만, 암은 또 달랐다. 암이라는 단어가 오는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5년 전 신장암도 다행히 1기였기에 수술이 가능했다. 수술을 한 뒤에도 아빠는 다시 또 열심히 사과나무를 심으며 귀농에 집중했다. 우리는 제발 그냥 좀 쉬라고 하지만, 아빠는 사과나무라도 남겨줘야 된다며 우리 말을 뒷전으로 들었다. 아이들 방학이면 내려가 있는 외갓집에서 묵묵히 사과나무를 가지를 줍고, 약을 치고, 벌레 먹은 사과를 골라 내며, 사과 밭에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씩 웃는 아빠의 모습이 기억난다. “내가 이러려고 사과밭을 하는 거야” 

 남는게 하나도 없고 몸은 몸대로 힘들고 돈은 돈대로 들어가는 애증의 사과 밭이다. 아빠가 귀농으로 사과밭을 하면서 그 쓸데없는 일을 왜 하느냐 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어찌 보면 아빠가 평생 가족들에게 주고 싶은 부분이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마치 우리 집에 전선 콘센트를 더 편하게 바꿔주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처럼 말이다. 40년간 전기쟁이로 살아왔기에, 그 누구보다 제일 잘 해줄 수 있는 일을 딸한테 해주고 싶은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필요 있느냐 없느냐 보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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