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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규섭 Jan 06. 2021

비; 단상들

201222


‘참 성실하다.’ 생각이 들었다.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에 쫓기지 않는 하루를 보냈던 비 내리는 날, 문득 든 생각이다. 비는 내리는 양에 맞는 소리를 낸다. 소심하게 자신에게 걸맞은 소리를 못 내지도, 위상을 드러내려는 듯한 과장을 하지도 않는다. 제 분수를 지키며, 자기의 소리를 내는 것들은 성실한 것들이다. 창을 열고 그 소리를 직접 들으며 내리는 양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창밖에서부터 들리는 그 소리를 듣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며 든 여러 단상들이다.


1. 비와의 대조


우리는 보통 앞으로 나아간다. ‘나 갈게!’라 말하며 굳이 방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앞으로’를 전제한다. 혹 뒤로 가게 되면, 그런 예외 상황이 생겼을 때가 되어야, 방향을 이야기한다. 잠시 생각해봄직한 부분은 우리가 쉬이 전제하게 되는 이런 보편의 표현들에 의해 우리 스스로가 내몰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앞이 아니면 잘못하고 있는 듯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은 내일로 이어진다. 시간은 예외적인 방향도 없다. 단방향으로 흘러간다.


두 가지의 대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수평의 개념에 가깝다는 것이다. 앞이나 뒤로나, 시간의 흐름이나, 우리의 일상은 수평의 구조로 엮여 있다. 언듯, 고층빌딩을 반례로 떠올릴 수 있겠다. 수직적 공간인 고층의 건물 또한 수평을 확장하기 위한 시도일 뿐이다. 우뚝 솟아있는 건물일지언정 우리는 수직으로 걸어 다니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등의 도구를 통한 수직 이동은 또 다른 수평으로의 이동을 위함일 뿐이다. 우리는 평행한 또 다른 수평을 만들어 수평 공간의 물리적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는 여전히 앞을 보며 살아간다.


이에 반해, 비는 수직성의 전형이다. 비의 태생은 중력의 부름으로 이루어진다. 높은 하늘에서 분무처럼 떠다니던 미세 물방울들이 한 데 모여, 제법 방울이라 부를 만큼의 크기가 되면 중력은 그들을 땅으로 불러낸다. 비는 그 속성 자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다. 비가 수평이 되는 경우는, 그 축적이 우리의 터전을 뒤덮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상황뿐이다. 우리도 중력이라는 같은 힘을 받지만 그로 인해 발이 붙어 수평을 살고, 비는 그런 우리에게 떨어지는 수직을 살아낸다.



2. 비와 관성 - 충돌에 대한 저항; 우산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에 머물며, 이렇게 단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멈춰서는 나의 모습은, 낯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수평을 살아가는 일상에 군더더기 없는 수직성을 가진 비는 낯익어도 낯설 수밖에 없겠다. 비의 수직성과 일상을 살아가던 우리의 수평적 관성은 매 순간 충돌하며 긴장을 만든다. 더불어 비는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더디 걷게 한다.


함께 우산을 쓴 이와 왠지 모를 유대감이 깊어지는 이유는 나아가고자 하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우산을 쓰던 이의 부재는 2가지의 부재를 동시에 의미한다. 수평적인 일상을 함께할 이와 수직적인 비를 함께 피할 이의 부재. 나의 첫 앨범의 두 번째 트랙이자, 내가 처음 만든 곡인 ‘봄비’에서 이를 노래하고 싶었다. 우산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 부재가 주는 빈자리의 크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조금 더 나가자면 곡의 배경에 깔려있는 빗소리는, 비의 수직성으로 상징하는 장애물을 함께 극복하던 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여정에서 만나는 장애물들은 넓고 낮게 깔려있기보다 높이 솟아 있다. 함께 하는데 장애가 되었던 요소들을 수직적 장애물인 비로 표현하고 싶었다.



3. 유비(類比)


수많은 영화의 장면에서, 주인공은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거대한 빗소리에 나의 작은 울음소리를 뒤섞기도 하고, 김연우의 [이별택시] 중 한 장면처럼 비속에 들어가 눈물을 숨기기도 한다. 그리고 정승환의 [비가 온다] 가사처럼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비가 와서’ 그렇다는 핑계로 나는 지금 울고 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눈물은 우리가 가진 것 중 유독 비로 자주 표현되는 대상이다. 우리는 비가 와서 울고, 비속에서 울고, 비처럼 운다.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된 가사는 정인의 [장마]이다. 다이내믹 듀오의 최자가 작사한 이 곡에서 내가 상실한 ‘넌’ 나의 태양이며, 태양이 떠난 지금, 끝없는 장마가 시작되었다. 나의 장마는 나의 눈물이며, 네가 없이는 이 비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 노래한다.


[2. 비와 관성]과 이어 생각해 보면, 눈물은 그 발현(수직)으로 우리의 나아감(수평)을 막아선다. 눈물은 우리를 멈춰 서게 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비는 우리의 일상과 대비되어 낯선 대상이면서도 우리가 가진 것을 닮아 있기도 하다. 비를 보는 일은 그 낯섦에 멈춰 섰다가도 울고 있는 나 혹은, 너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다.


신변잡기적이기 한없는 단상들을 맞이하며 들리는 빗소리는 여전히 성실하다.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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