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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itup May 11. 2023

소비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

퇴사하기 전 나의 소비 습관 돌아보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퇴사를 한 후 제일 걱정되는 것은 '돈'일 것이다.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혹자는 마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퇴사를 고민하며 매달 말일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무시하기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통장에 늘어나는 숫자를 보며 느끼는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웠다기보다는 나의 소비 습관 때문이었다. 사회생활 6년간 나는 소비를 통한 쾌락을 업무 스트레스와 맞바꿔왔다. 그리고 그건 결국 잘못된 소비 습관으로 굳어져버렸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병적으로 '살 것'을 찾았다. 인스타그램으로는 매 시즌 신제품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우하며 유행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유튜브로는 온갖 유튜버들의 쇼핑 하울 영상을 보는 것이 취미였다. 심심할 때마다 W컨셉이며, 29cm며 편집샵 플랫폼의 신상품을 매번 체크하기도 했다. 그때 이것저것 사봤던 것이 나의 취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재산 증식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파리 여행에서 쇼핑해온 것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한 때...

그렇게 나의 옷장은 넘쳐났지만, 통장은 비어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돈이 모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4년 차 때부터였다. 원하는 만큼의 물건을 사고도 여윳돈이 남는 연봉을 받게 되자 마침내 통장의 잔고가 쌓인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때마침 '내일채움공제'라는 중소기업 재직 청년 목돈 마련 제도의 만기가 되어 목돈이 생기는 경사도 겹치게 되었다.


전에 없던 통잔 잔고를 보게 되자, 왠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든든한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서 목돈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공부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쇼핑 하울 영상뿐만 아니라(대리 만족까지 끊을수는 없었다.) 투자 관련 영상도 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영상이 돈을 불리기 위해서는 목돈을 모으는 게 먼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목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있었다. '나의 고정지출과 변동지출 내역 파악하기'.


부끄럽게도 그전까지는 매월 내가 얼마를 쓰는지, 무엇에 돈이 나가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외면하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잊으려고 돈을 쓰는 건데, 돈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는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돈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앉아 저번달에 지출한 내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비 습관을 고치는데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나의 돈이 어디로 나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적나라한 소비 내역을 마주해야만 비로소 불필요한 소비와 필요한 소비를 구분하여 매월 지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소비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다. 나는 월급을 고정 비용과 변동 비용, 투자, 저축 등으로 나누어 지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대충 이런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쇼핑으로 사용할 금액의 한도를 정하게 되자 소비를 결정하기까지의 사고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네' -> '가격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 '사자'로 이어지던 단순한 사고가 이제는, '마음에 드네' -> '정말 나에게 필요한 건가' -> '금방 질려버릴 물건은 아닌가' -> '합리적인 가격인가' -> '이번 달 쓸 수 있는 금액은 얼마나 남았지' -> '사자'의 복잡한 단계의 사고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매월이 끝나면 이번 달 늘어난 자산과 지출 내역을 정리하며 한달을 정리했다. 물론 매번 한도를 지키지 못하고 초과 지출을 하는 것이 부지기수였지만, 이러한 루틴을 지속적으로 행함으로써 나의 소비 습관이 정제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자연스레 쓰는 기쁨보다 모이는 기쁨을, 새 것을 갖는 재미보다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잘 쓰는 재미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퇴사 이전 2년여간은 자연스럽게 돈도 더 잘 모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퇴사를 하기 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주고 싶다. 매달, 매년 지출하는 금액을 정리해서 내가 갖고 있는 여유 자금이 언제쯤 고갈되는지 파악하기, 퇴사 후 나의 새로운 취미, 교육, 창업 준비 등에 투자할 금액을 계산하고 계획 세우기, 그리고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소비 통제 연습'.


퇴사를 하기에 충분한 돈을 모았어도 나의 소비 습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이번 두번째 퇴사를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첫번째 퇴사 후 커리어 전환을 준비했던 공백기 기간동안 스트레스를 소비로 푸는 습관이 나를 괴롭힌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여유 자금은 동났는데, 새로운 것을 공부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쌓이고, 사고 싶은 건 많은데 살 수는 없고, 그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혹시 회사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출 내역에 대해 파악하고, 자신의 소비 습관에 대해 생각해본 후 충분한 여유 자금을 준비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소비 통제가 어려운 사람이라면 꼭 그 습관을 고치고 퇴사를 결정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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