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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언니 수니 Oct 05. 2024

이탈리안 오피스 허즈번드 (편재)

편재 아내 남자 취향은?

존 로페즈, 존은 나의 오피스 허즈번드였다. 앗,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남들이 상상하는 선 넘은 그런 관계가 아니다. 음, 아니 속마음은 그런 사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존은 기가 막히게도 남편과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고 성격까지도 많이 닮았다. 남편이 만약 호주에서 태어났다면 존처럼 살았을 텐데. 여하튼 그 당시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존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시드니 짝사랑은 시작을 알렸다.



첫눈에 반했다.



어찌어찌 운 좋게 호주 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직원이 대략 25명 정도 규모로 작은 곳이지만 기술력은 탄탄한 사물인터넷 연구 개발 업체였다. 

"나이스 투 밋 투. 마이 네임 이즈 수니." 

출근한 첫날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내 소개를 하며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존이 내 앞에 짜잔- 하며 등장했다.

"여기 온 것을 환영해, 난 존이야,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해 줘."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온화한 눈빛을 보내면서 대답한다. 와, 대박, 첫인상이 딱 내 스타일이다. 



그는 작고 아담한 체격이었다. 남편처럼 작은 키였다. 170센티가 되려면 숫자를 몇 개 빌려와야 할 것 같은 그런 사이즈. 평균 180센티미터가 넘는 덩치 큰 백인 남자 직원들에 비해 작은 체구인 그가 오히려 부담 없고 편했다. 나 역시 키 작은 사람이고 주류가 아닌 호주로 이민 온 소수자 아닌가. 그는 남성스럽게 생긴 외모가 아니고 선이 굵은 미남형도 아니다. 상남자와 꽃미남 라인에 있다면 꽃미남에 가깝지만 전형적인 꽃미남 스타일도 아니다. 좋은 인상을 풍기는 귀여운 얼굴이다. 둥근 얼굴에 눈은 좀 큰 편이고 눈가에 잔주름 많고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선하고 친절한 이미지를 가졌다. 그렇다고 어리숙한 분위기가 아닌 어떤 선을 넘지 않고 신중한 스타일 같았다. 존은 한마디로 내 눈에 잘생겨 보였다.



"굿모닝 존"

"굿모닝 수니"

아침에 출근해서 그와 나누는 짧은 모닝 수다가 참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다. 나는 한국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고 IT 개발자로 일하다가 호주로 이민 왔다고 알려줬다. 그에게 전공이 뭐야 물어보니 전자공학이라고 대답해 준다.

"그럼 대학교는 어디를 나왔어?"

"시드니 대학교."

아니, 이럴 수가, 그는 호주에서 제일 유명한 시드니 대학교를 졸업한 거 아닌가. 한국으로 치면 얼추 서울대 같은 느낌. 존은 잘 생긴 것만 아니라 스펙도 좋다. 



그의 부모님은 이탈리아에서 호주로 이민 온 세대로 그는 호주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계 호주인이라니, 어쩐지 그에게서 이탈리아 남자의 로맨틱한 면모가 묻어나는 듯했다. 존은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는 취미 생활을 즐겼다. 1년에 한 번씩 자전거 경주 대회에도 참석했단다. 와, 운동까지 잘하다니 더 맘에 든다. 그의 단단한 허벅지에 눈길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정되었다.



이렇게 회사로 출근하는 아침, 그의 따스한 미소를 받으면서 스몰토크를 나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나를 계속 출근하게 만들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의 선한 아우라 기운이 출근하면 원터치 턴트를 치듯이 보호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근무 시간 내내 나를 든든하게 감싸주었다. 그렇게 건너편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그의 모습을 그냥 쳐다보기만 하는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찾았다.



그를 볼 때마다 속으로 설렘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남편과 너무 비슷해서였다. 작은 키에 잘생긴 외모, 친절한 말투, 배려 있는 행동, 온화한 미소, 왠지 모를 나를 이해해 주는 느낌, 나를 신경 써서 챙겨주는 작은 행동 등등. 정말 그는 성격도 그렇고 외모까지 남편이랑 너무 닮았다.



그때 내 나이는 42살 존은 32살이었다. 나보다 무려 10살 연하였다. 마치 10년 전 남편을 다시 만난 거 같다. 그래서 그런가 처음 소개팅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처럼 설렌다. 다만 외모 버전이 한국 남자가 아니고 이탈리아계 호주인으로 변한 것뿐이다. 



만약 내가 호주에 혼자 살고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그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었을 텐데. 그러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 같은데. 지금처럼 영어를 못해서 고생하지도 않고 술술 영어가 터지지 않을까. 또 그는 이미 새 아파트를 구입해서 살고 있으니 렌트 때문에 이사를 하는 주거 걱정 같은 건 하지도 않아도 되고. 아주 자연스럽게 호주 문화와 생활에 적응하면서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냐하면 그는 외모나 성격이 지금 남편이랑 너무 비슷하니, 분명 나랑 궁합이 잘 맞을 테니까. 이런저런 상상으로 나는 이미 존과 결혼을 했고 이제 신혼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존과 결혼을 했고 손님들을 초대해서 피로연 파티를 열고 있었다직장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매년 연말 파티를 연다. 한 해 동안 회사원 모두 일하느라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팀원들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파티를 주최한다. 이때는 마음껏 즐기고 서로 축하하는 자리이다. 보통은 아내나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서 커플로 참석한다. 하지만 남편은 영어도 안되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야기하는 것도 영 부담스러워해서 연말 파티를 혼자서 참석했다. 평소에 거의 입어 본 적 없는 드레스도 하나 장만했다.



이번 연말 파티는 토요일 저녁에 시드니 하버 서큘러 키에서 크루즈를 탑승하여 선상 파티를 하는 것이다. 크루즈 안에 특별한 방이 마련되어 있어 우리 회사 사람들만의 파티 공간이 펼쳐졌다. 음식은 코스 요리로 나왔다. 처음에는 핑거푸드가 나오고 다음에는 메인 요리가 나오고 마지막에는 디저트가 나왔다. 와인과 샴페인 그리고 맥주는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었다. 음식도 너무 맛있고 게다가 알코올이 들어가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크루즈는 시드니 서큘러 키 항구에서 출발해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시드니 하버브리지를 사이를 왔다 갔다 운행했다. 호주로 이민 와서 처음으로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 야경을 보는데, 와우! 감탄사가 쏟아진다. 옅은 어둠 속에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서로를 감싸듯 빛을 나누며 사랑을 속삭인다. 물결 위로 반짝이는 불빛들은 마치 나와 존을 응원한다는 박수를 치며 아름답게 일렁인다.



성공한 이민 생활이 이런 것인가 황홀감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잘생긴 존이 내 옆에 앉아있다. 그리고 나와 와인잔을 부딪치며, 하하하 웃으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그의 미소를 바로 옆에서 지긋이 쳐다보는데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내 눈빛을 봤다면 꿀이 떨어진다고 표현했을지도.



회사에서 주체한 공식 연말 파티이었지만 내 상상 속에서는 내가 주체한 결혼식 피로연 파티였다. 노을이 질 때 그와 하버브리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찰깍 같이 찍어본다. 우리 손에는 샴페인 잔이 들려있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나와 존의 미래를 위해서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맛난 음식과 술 그리고 멋진 시드니 풍경까지 선사해 주고 있는 셈이다. 호주로 이민 와서 능력 있고 잘생긴 남자와 결혼도 하고 이런 환상적인 파티까지 열다니 너무 뿌듯하다.



그런데 오피스 허즈번드가 있어도 현실의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상은 호주 회사에 적응을 잘 못하고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영어로 말하기가 잘 안 되니 더 말을 안 하게 되었다. 악순환이다. 그렇다고 따로 집에서 영어 훈련을 하지도 않으니 실력은 퇴보되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업무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어를 잘 못해도 어느 정도 배려해 주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으니 이제는 사장이 대놓고 영어 소통도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직원들 앞에서 화를 내면서 나무랐다.



안 그래도 주눅 들어서 지내고 있었는데 지적질까지 받으니 더 주눅이 들어서 아예 입을 닫아버리게 되었다. 게다가 업무 환경도 한국과 다르다 보니 적응이 더 힘든 면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만 빡세게 하면 되었는데 여기는 주도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작업을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같은 IT 업무이지만 기술 분야가 조금 달라서 그것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안 그래도 자신감이 별로였는데 나중에는 자신감을 바닥을 찍어버렸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근무시간 내내 묵언수행을 하다가 퇴근하게 되는 시간이 늘어났다. 동료들은 왕따를 하지는 않았는데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그런 직장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존은 이번 달까지 근무하고 퇴사합니다.' 회사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너무 충격이었다. 묵언수행으로 왕따 생활을 하는 나에게 그나마 희망의 에너지를 주는 존이 회사를 관둔다고! 그가 있어서 그나마 여기를 버티고 있었는데. 그가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는데. 그에게 심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는데. 안식의 기둥이 쑥-하고 뽑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가 있어서 지금까지 견디고 있었기에 고마운 마음이 올라온다.



존에게 회사를 관두기 전에 같이 점심 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나의 오피스 허즈번드를 그냥 넋 놓고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쇼핑센터에 가서 감사 카드를 하나 구입해서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말을 간단하게 적었다.



나는 존에게 사랑고백을 하는 심정으로 일식당에 앉아있었다. 스시와 사시미를 하나 시켜서 같이 나눠먹고 우동을 하나씩 시켜서 먹고 있었다. 그에게 내 마음을 담은 카드를 건넸다.

"땡큐. 수니"

카드를 열어본 그는 고맙다고 답한다. 새로 가는 회사는 어떤 곳이냐, 가서 무슨 일을 하느냐 이런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곧바로 이야기 소재가 급격하게 떨어져 나갔다. 아차차, 스몰토크는 해봤어도 롱토크는 해보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그동안 지내면서 고마웠던 심정을 표현해 보고 싶어서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오히려 그의 얼굴에서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눈빛을 발견했다. 마치 자기는 나를 평범한 회사 동료로 다른 사람한테 대하듯이 대했는데, 마치 네가 좀 오해하는 거 같다는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존, 회사 나가서 가끔 연락하고 지내면 좋을 거 같은데, 연락처 좀 알려줘."

난 그래도 그와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에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음, 그건 좀 곤란해. 수니."

당연히 연락처를 알려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순간 나는 정신이 확 돌아왔다.

'나의 친절과 매너 있는 행동은 너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었어, 네가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은 좋은데 난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워.'

그의 생각을 확 눈치챘다. 그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혼자 상상 속에서 그와 신혼여행까지 갔다 오는 호들갑을 떨었던 아줌마로. 김칫국을 혼자 벌컥벌컥 들이켠 여자로. 젊은 남자에게 치근대는 중년 아낙네로 전락했다.




내 사주 월지에 편재가 있다. 월지에 있기 때문에 편재 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여자 사주에 편재가 강한 경우 남자들을 밝히지는 않지만 남자 외모에는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경제적으로 조금 떨어지더라도 남들 보기에 멋진 남자를 선택하는 편이다. 잘생긴 남자에게 좀 관심이 있는 편은 맞다. 



여행을 갔을 때 내가 선호하는 꽃미남 스타일 남자를 우연히 보게 되면 계속 쳐다보게 된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티가 심하게 날 정도다. 그냥 잘 생긴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고 힐링이 된다. 알고 보면 잘생긴 남자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냥 바라만 봐도 좋은 거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정우성 배우, 그가 출연하는 영상들을 시청하게 되면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간다. 봤던걸 또 봐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마냥 좋다.



내가 존을 좋아한 이유는 단 하나 잘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게 된 이유도 그의 외모가 맘에 들었기에 가능했다. 또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 배경에도 얼굴 생김새가 큰 몫을 했다. 오피스 허즈번드를 좋아한 이유나 남편을 좋아한 이유나 동일하다. 그것은 잘생겨서.



남편과 결혼할 당시 그의 외모는 일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경제적인 조건은 별로 좋지 않았다. 30대 중반인데 회사에서 직급은 사원이었고 모아둔 돈도 500만 원밖에 없었다. 결혼하면 전셋집을 장만한 해줄 만한 여유 있는 시댁도 없었다. 분명 성실하고 사람은 좋았지만 현실적인 기반은 열악했다. 아마 이런 이유로 그는 결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거 같다.



나는 운 좋게 남편과 소개팅했을 당시 작지만 새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남자가 모아둔 돈이 없어도 괜찮아, 나중에 서로 같이 벌면 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내 결혼에 큰 영향을 끼친 변수는 그의 따스한 성격, 당당한 유머, 잘생긴 외모이었지 경제적인 조건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남편은 영화배우 지성을 닮았다. 


하얀 얼굴에 인상이 참 좋았다. 살짝 미소를 지으면 눈꼬리는 내려가고 눈은 반달모양으로 변했다. 그리고 눈가에 있는 잔주름이 은은한 파도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면 나는 그의 눈빛 블랙혹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연애기간 내내 그의 얼굴을 보면서 연예인을 만나 사귀는 기분으로 뽕에 취해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혼을 해서 몇 년을 살아보니 어느 순간 지성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친숙하지만 반갑지만은 않은 남자 얼굴이 들어왔다.

"헤헤 헤헤헤헤헤헤헤! 얼굴도 못 생긴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적어도 내 얼굴 정도는 돼야지!"

바로 개그맨 정. 종. 철. 



같은 연예인은 맞는데 너무 차이가 난다. 분명 남편은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같은 사람인데. 왜 얼굴이 달라 보이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 시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 맞다, 노안이다. 심각한 노안.




다음 편 예고


배신자 팔자가 궁금하시나요?

아내가 를남편이 배신자 관상이라고 놀리면?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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