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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언니 수니 Oct 12. 2024

배신자 팔자라서 좋다고? (편재)

편재 아내랑 결혼하면?

"만나지 마!"

"왜?"

"한국 가서 그 사람들 만나지 마라."

"아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겠다는데, 왜 말려?"

"다 너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엥? 뭐 나를 위해서라고?"

남편이 뜯어말리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7년 만에 한국을 들어가기로. 시어머니 생신을 맞이하여 시댁 식구들 다 같이 모일 예정이다. 또 시아주버님 환갑도 축하해 줄 겸.



한국 가면 뭘 할까 상상하다가 법상 스님과 선운쌤도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시드니에서 유튜브로 법상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혼자 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 영상 속 흘러나오는 스님의 법문은 밥 친구였다.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 중간중간 마음에 와닿는 구절 덕분에 나도 모르게 소소한 괴로움들이 사라지곤 했다. 또한 지금껏 내가 쥐고 있었던 다양한 분별심에 대해 눈치채는 중이다.



그리고 사주 공부를 하면서 발견하게 된 선운쌤 강의. 미처 몰랐던 사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어주시니 내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특히 선운쌤은 나와 비슷한 무인성 + 비겁 + 편재 사주 조합을 가지고 있어서 더 반가웠다. 두 분 모두 균형 잡힌 중도의 세상으로 나를 인도하고 있다.



법상 스님도 선운 선생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두 사람 덕분에 요즘 삶이 가볍고 감사한 마음도 일어난다. 이왕 한국 가는 김에 직접 만나서 법상 스님 법문도 들고 선운 선생한테 사주 상담도 받아보고 싶다. TV에서만 보던 유튜브 연예인들을 직접 만날 걸 생각하니 설렌다. 실제로 보면 더 좋겠지 왠지 흐뭇하다.



"수니야 잘 생각해 봐, 법상 스님 전에는 법륜 스님 좋아했잖아. 그리고 선운 선생 전에는 석우당 선생 좋아했잖아."

"아... 그러네."

"근데 지금 다 갈아탔잖아. 법륜 스님 즉문즉설에서 법상 스님 목탁소리로 갈아탔고, 석우당 사주 강의에서 선운의 명리터 사주 강의로 갈아탔잖아."

"오... 맞네, 맞아."

"너의 과거를 한번 돌이켜봐. 네가 좋다고 쫓아다녔던 사람들 생각 안 나? 나중에는 그 사람들한테 실망했다고 나한테 불평불만 토로했잖아. "




사주 편재 성향은 스승이나 조직 또는 사람을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 편재 입장에서는 배신을 했다기보다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거나 의미가 없어서 떠난 것이지만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은혜를 모르는 놈이거나 배신자 타이틀이 생길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나는 배신자가 맞다. 한때 죽염이 건강에 좋다고 거기에 심취하여 죽염 카페에 가입했었다. 그곳 카페 방장은 시골에서 직접 죽염을 제조하였다. 그 죽염으로 죽염 된장과 죽염 간장을 직접 담갔다. 

그것을 카페 회원들에게 예약 주문을 받고 팔았다. 그는 죽염에 대해서 박식하고 대체의학에 조예가 깊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카페 방장을 칭송했었다.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버전으로 말하면 추앙했다. 남편과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 카페 활동을 이어나갔다. 내가 방장을 과도하게 칭찬하거나 추켜세워주는 행동을 하자 남편은 썩 내켜하지 않았다.



"너랑 비슷한 사람이지 그 사람은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너무 과하게 기대를 하지 마라."

"백수인 주제에 왜 대체의학에 열심히 사는 사람을 폄하하는 거야."

여러 번 나한테 에둘러서 이야기했지만 귀가 막혀있었던지라 들을 생각조차 안 했고 오히려 화만 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니 그 방장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나중에는 실망을 했고 그 카페에서 탈퇴하면서 죽염 세상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는 죽염 굽는 것을 배우라는 명목하에 남편에게 시골로 내려와서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를 신봉하던 터라 그 당시 무직이었던 남편에게 죽염을 배우라고 강요했다. 그래도 정신이 멀쩡한 남편은 죽염 만드는 것을 배울 생각이 없었고, 돈도 받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 그 방장은 남편을 설득하려고 직접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좋게좋게 안 한다고 에둘러 거절했는데 두 번째 설득 전화가 또 걸려왔다. 남편은 앞으로 그런 거 할 생각도 없으니 앞으로 이런 전화도 하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남편이 무직이라고 얼마나 그 사람 앞에서 무시를 했길래,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이런 이상한 전화까지 받아야 하는 거냐고?"

화도 잘 내지 않는 사람이 소리를 치면서 나를 어찌나 혼구녕을 내던지.

"네가 그렇게 굽신거리니까 그 사람도 나를 똑같이 무시해서 무노동으로 일을 시켜 먹을 궁리나 하는 거 아니겠냐고?"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불같이 화를 낸 남편 덕분에 정신을 차려보니 스스로 노예를 자처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남편과 싸운 계기로 이제는 콩깍지가 벗겨졌다. 방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예전과 달리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실망을 이어나갈 수밖에. 그는 여느 사람처럼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서양 의학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대체의학으로 어떤 발전을 일구어 가는 선구자로 생각했는데, 사회와 우리들 건강을 위해 이바지하는 사람으로 착각했는데, 그건 순진한 나만의 생각이었다. 그 사람은 그대로였는데 내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혼자 실망한 셈이다.



그렇게 조용히 카페를 떠났다. 아주 열성적으로 활동을 했고 250만 원짜리 죽염간장도 사 먹었고 100만 원짜리 죽염된장도 사 먹었던 나름 큰손 고객이었는데 어느 순간 배신자 회원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떤 것에 호기심이 생기면 처음에는 뜨겁게 관심을 갖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식어버리는 패턴을 보인다. 처음에는 열렬한 팬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망을 느끼고 탈퇴하거나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우연히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너무 좋으니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진다. 적극적으로 그와 관계를 맺게 된다. 자주 만남을 갖고 소통을 하면 할수록 그전에는 못 보던 세상을 만나게 된다. 내가 가졌던 좋은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내가 몰랐던 단점들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이제는 이별을 고할 수순을 밟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십 년 이상이 걸려서 이루어졌다.



모임이나 조직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흥미가 생겨서 시작하니 적극적으로 참여를 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느꼈던 재미는 사라지고 조직과 조직원들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또 실망감을 느끼고 조용히 모임에서 빠져나온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지 못하니 괜한 시간을 낭비한 느낌도 들었다.



편재 성향을 가진 내 입장에서는 더 이상 그 사람이나 모임에 의미나 흥미를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실망을 하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를 정리하거나 탈퇴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모르고 당하는 사람이거나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또라이 내지는 배신자라는 말도 나올 수 있고 예의도 모르는 놈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




사주에 정재를 가진 남편 같은 경우는 편재 성향인 나와는 반대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어느 정도 참고 어느 면에서는 한발 양보하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기분 나쁜 일을 당했더라 하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잘 살기 위해 약간은 참아가면서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어서 대하려고 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려 한다.



반면에 편재는 그때 그 순간 자기 감정 상한 것에만 초점을 두고 고민한다. 그동안 쌓인 신뢰의 시간을 모조리 무시해 버린다. 그렇게 성급함으로 나오는 문제가 있다. 편재는 불편함을 대단히 힘들어한다. 상대의 표정과 감정에 천당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고 감정적 절제가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이성적 판단이 잘되지 않는다. 



편재는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할 때, 모임을 좋아서 시작할 때나 사람과 인연을 끝낼 때나 모임을 나올 때에도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측면이 크다. 편재는 유아적이고 가장 본능적이다. 1차원적이고 감정에 충실한 스타일이다.




내가 왜 배신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만났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미지, 즉 어떤 상을 가지고 접근했기에. 그 결과, 칭찬을 하던 입이 불평하는 입으로 변해버린다.



"네가 좋은 사람을 계속 간직하고 싶다면 그들을 만나지 마."

나의 배신자 패턴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심지어 간접적으로 피해까지 입은 남편, 이제는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조언해 준다.

"만나는 순간, 너는 또다시 좋은 사람을 잃게 될 거야."

남편이 띵언을 창조했다.

법상 스님과 선운 선생님이 내 곁에 좋은 사람으로 계속 남을 수 있으려면, 내가 그들을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피천득 선생님 수필 알지? 거기에 인연을 다시 한번 읽어봐."

"아, 그 아사코?"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 인연



번득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차라리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어떨까? 법륜, 법상 스님처럼 살아있지는 않지만 '법' 글자로 시작되는 스님. 무소유 법정 스님. 그의 책을 통해 쭉- 좋아하는 걸로.




남편은 삼국지에 배신자 이야기가 많은 나온다고 운을 뗀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이유가 바로 배신자들 때문이라고. 그래서 고서에 배신자 사주나 관상을 꼭 확인하라는 조언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나와 비슷한 편재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배신을 해서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내가 봐도 아마 배신자 중에 편재 성향이 많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는 예전에 공부한 관상 책에 배신자 얼굴을 봤는데 나처럼 턱이 뽀쪽했다며 내 턱을 가리킨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주와 함께 관상까지도 배신자 성향으로 낙인찍히는 순간이다.



그런데 남편은 배신자가 나쁘다는 프레임이 씌우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지키려는 자, 전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자 편에서는 배신자는 나쁜 놈이지만 그 반대 세력 입장에서는 배신자는 큰 공을 세우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여하튼 편재 성향인 내가 봐도 정재 성향을 가진 남편처럼 처신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배신자는 안 좋다는 프레임에서 편재를 바라보면 정재가 좋고 편재는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남편은 자기 사주에 있는 정재처럼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나에게 강조했다.



"편재는 물고기로 따지면 볼락이고 정재는 니모야."

그런데 볼락한테 너는 니모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인가?

"나는 볼락이야. 어제도 볼락, 오늘도 볼락, 내일도 볼락으로 살아갈 거야."

볼락은 볼락의 인생이 있다.

"못생겨도 맛은 좋은 볼락이라고, 하지만 자기는 이쁘지만 먹을 수 없는 니모라고."

니모 남편은 볼락 아내를 니모 아내로 변화시킬 수 없어.

"잘 알아들었지? 니모 남편아!"



배신자 아내라고 타박을 하면서 실상 남편은 배신자 아내 덕을 보고 있다. 



정재는 가족단위, 사람의 냄새,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기에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옆에 누가 있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있고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루를 살아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재는 단체로부터 출발점을 가진다. 반면에 편재 하루를 살아도 즐겁게 재미있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한 명에서부터 출발한다. 정재는 결혼을 한 후에도 본가나 친정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편재는 결혼을 한 후에 기존 가족과는 단절이 되어버린다.



편재 성향이라 그런지 나는 결혼한 후로 친정과 교류를 많이 하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전주 시댁에는 내려갔지만 부산 친정에는 가지 않았다. 친정식구들이 불편한 것도 좀 있고 굳이 먼 거리 운전해 가면서 갈 이유가 딱히 없었다. 나 혼자 몸 편하고 즐거운 것이 더 중요하니 친정에 대해 별로 정이 없었다. 친정 입장에서 보면 나는 배신자이다.



결혼 전에는 명절이면 친정에서 전을 부치고 상 차리고 설거지하면서 여러 집안일을 도와줬는데 결혼 후는 그런 것이 싹 사라졌다. 시댁에서 명절을 쇠다 보니 여기는 막내며느리이기도 하여 조금만 일을 도와줘도 칭찬을 듣는다. 친정에는 맏딸이라 열심히 일해도 너무 당연하게 여겼는데. 게다가 시댁은 시어머니가 명절 음식도 소박하게 장만하셔서 일거리도 별로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하니 명절이 더 편해졌다.



결론적으로 정재 성향 남편은 본가와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운 좋게도 아내가 배신자 편재 성향이라 친정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시댁과는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된 셈이다. 남편이 원하는 본가 중심으로 가정을 이끌어 가는데 배신자 성향이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남편은 나와 결혼할 때 장녀라서 맘에 들었다고 했다. 이유인즉, 장인 장모를 제외하고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없으니 아무래도 처가댁 아랫사람 일로 끌려갈 일이 없어서 좋을 거라고 예상했다며. 나 역시 남편이 막내라서 좋았다. 이유는 장녀라는 책임감 무게를 가지고 있었는데, 남편이 만약 장남이라면 그 무게가 두 배가 되어 너무 큰 부담감으로 다가와서 결혼을 주저했을 텐데, 다행히 그는 막내라서 그 책임감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 결혼을 결심했다.



실제로 결혼해서 보니 나는 시댁 스트레스가 없고, 남편은 처가댁 스트레스가 없다. 왜냐하면 배신자 아내가 친정하고 사이좋게 지내지를 않으니 처가에 뭔가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확 줄어버렸다. 게다가 남편 입장에서 아무래도 아내가 시댁에 적응 못할까 고민했는데 그런 걱정이 싹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결혼 전에는 친정처럼 시댁에서도 명절에 스트레스 받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결혼 후 명절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도시만 살아서 그런가 시골인 시댁에 가서 지내는 시간이 즐겁다. 게다가 이젠 호주로 이민까지 와버렸으니 그마저도 시댁에 가지 않는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시댁이나 처가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결혼 잘했다고 웃고 있다.

"그래서 자기는 나랑 결혼해서 개이득이네?"

"아니야."

"그럼 뭐야?"

"개삼득이야!"









다음 편 예고


영어 울렁증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남편.

그 이유는 운명의 사주 바코드에 숨겨진 비밀 때문에.

하지만 그가 어떻게 호주 이민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신가요?

그 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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