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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언니 수니 Oct 19. 2024

영어 울렁증, 호주에서 살아남기 (무식상)

무식상 사주가 호주로 이민가면 생기는 

남편은 'F'라는 낙제점을 받았다. 호주 이민생활에 가장 필요한 영어 의사소통 점수에서.



"Hi, How are you?"

우러스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다 보고 계산대 앞으로 갔다. 점원은 자동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어떻게 지내?"

고객들에게 항상 던지는 인사말이다. 보통은 나에게 말을 거는데 이날은 남편 얼굴을 보고 눈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질문을 했으니 뭔가 답이 돌아와야 하는데, 순간 몇 초간 정적이 흐른다. 남편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마냥 그냥 멀뚱멀뚱 눈을 껌뻑이고 있다. 그리고서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그의 표정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갓난아이 같다. 물어본 남자 직원도 약간 당황하고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직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상품의 바코드를 꼼꼼하게 찍어가며 계산을 잘 마쳤다. 카드로 지불을 하고 영수증을 받아 슈퍼마켓을 빠져나왔다.



"아까 그 직원이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남편이 나에게 물어본다.

"Hi, How are you? 라고 인사말 건넨 거잖아."

"그게 하이, 하와유 였어? 난 전혀 안 들리던데."

"자기가 당황해서 그런 거였겠지, 다음에 또 누가 하이, 하와유 물어보면 굿, 땡큐. 그냥 그렇게 대답하면 돼. 그냥 외워서 하면 돼. 자 따라 해 봐. 하이 하와유? 굿, 땡큐."

"하이 하와유? 굿, 땡큐."

"좋았어. 잘하네.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여러 번 연습을 한 후에 일주일이 지나고 식료품을 구입하러 쇼핑센터 외출 나왔다. 이번에는 남편이 영어로 인사말 대답하기 연습한 걸 테스트해 볼 차례이다. 나름 마음에 준비도 했고 입으로 연습도 여러 번 했다. 대답을 못할 이유가 없다. 구입할 물건을 다 쇼핑을 했으니 이제는 계산만 하면 된다.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남편이 내 앞에 서서 계산대 점원을 쳐다보며 앞사람이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직원은 반가운 표정으로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하이, 하즈고잉?"

띵!

정적이 흐른다.

분명히 '하아, 하와유'를 연습했는데 왜 다른 말을 하고 있지?

또다시 그는 멀뚱멀뚱 길 잃은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영어 한마디 못해보고 또 쇼핑센터를 나선다.



아니, 이렇게 간단한 영어도 못 알아듣고 대답을 못한다고? 

믿어지지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양념이 1도 들어가지 않은 사실이다.



아니 호주로 이민 오자고 한 장본인이 영어 단어 한마디 입도 뻥긋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한국에서 영어 울렁증이 있다는 건 조금 알았지만 호주로 건너와서 조금씩 적응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영어 때문에 그와 싸우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그의 영어실력은 나아질 기미는 전혀 없었고 서로 감정싸움에 상처만 더 깊어졌다. 그런데 사주 공부를 하고 나니 왜 남편이 그토록 영어를 어려워했는지 그 수수께끼가 풀려버렸다. 바로 그는 무식상 사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호주로 기술 이민 신청할 때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기술 경력 증명을 해야 한다. 내 경우는 IT 개발자 경력이 있었기에 무난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IELTS 영어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 그 당시 주신청자는 4과목 리스닝, 리딩, 스피킹, 라이팅 각 6점을 모두 넘어야 하고, 배우자는 4과목 평균 4.5점을 넘으면 된다.  4.5점이라는 점수는 공부를 조금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는 점수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남편이 조금 관심을 가지고 시험 준비를 한다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시험 치는 것을 결사반대했다. 영어 시험공부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의 요지는 영어를 사용하는 호주 현지에 가서 제대로 배우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싫어하는데 억지로 하게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직접 IELTS 점수 통과할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 보니, 남편은 일상 영어 회화 중심으로 대충 해도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시험 결과 점수를 제출하는 대신에 호주에서 영어교육을 받기로 결정했다. 영어교육비 500만 원을 미리 지불하는 조건으로 영주권을 받았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물 건너 호주로 이민 왔다. 그의 바람대로 영어 학원을 등록해서 영어 회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배우면 제대로 된 현지 언어를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힘차게 시작했다. 영어 학교에서 공부를 하려면 먼저 레벨테스트를 하는데 레벨 1. 반에 낙점되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레벨 1. 딱 어울린다. 차근차근 레벨을 올리면 되니까.



부푼 마음으로 영어 공부에 도전했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그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강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못 알아들으니 무슨 대답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그리고 막 뭘 하라고 시키는데, 뭘 알아야 대답을 하지. 너무 답답해."

남편 생각은 자기 수준에 비해서 이 반은 레벨이 너무 높은 거 같다고 하소연한다. 그래서 상담 신청을 해서 혹시 더 낮은 레벨이 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레벨 0. 반이 개설되어 있다고 다음 달에는 그쪽 반으로 수업을 옮기라고 알려주었다. 레벨 0. 부터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면 되겠지 싶었다. 그렇게 레벨 1. 에서 한 달 레벨 0. 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한 달간 레벨 0에서 수업을 들었으니 이제는 레벨 1로 승급해야 한다. 그런데 남편은 레벨 1로 갈 수 없다고 한다. 자기한테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벨 0. 에서 한 달간 수업을 더 듣기로 했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넉 달째 레벨 1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언제 레벨 1. 을 탈출할 수 있을까? 1년 치 영어 수업료를 지불했으니 최종적으로 레벨 3. 까지 공부해야 하는 게 좋을 거 같긴 하다. 그런데 과연 달성 가능한 목표일까?



그의 최종 목표는 영어를 습득한 후에 호주 회사에 취업을 해서 호주 달라를 버는 것이다. 이것이 호주로 오기 전에 마음속에 품었던 계획이었다. 난 애초에 그의 계획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예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해낼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희망은 망상에 가깝다는 걸 현실이 똑똑히 알려주고 있다. 호주에 정착하기 위해 1년간 영어 공부에만 매진하겠다는 우리의 계획은 불과 4개월 만에 부서져버렸다.



거주할 집에 렌트비도 내야 하고, 그 집에 살림살이도 채워야 하고, 먹고살려면 쇼핑을 해야 하고, 장을 보러 가려고 해도 자동차가 필요하고, 운전을 하려면 면허도 따야 하고, 면허를 따려니 연수도 받고 시험도 쳐야 하고 이 모든 것을 하는데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 당시는 환율은 1200원대, 생활비 물가가 비싼 시드니는 이민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통장 잔고는 금방 바닥을 드러내주었다.



남편에게 쌓인 불만들이 한순간 폭발했고 크게 부부 싸움을 했다.

"호주 현지에 와서 영어 공부해 보니까 어때? 자기가 상상한 대로 영어실력이 쭉쭉 올라가지는 않지?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미리 공부를 하라고 했잖아. 미리 한국에서 영어 공부하고 점수를 만들었으면 500만 원도 굳고 여기서 영어 공부하는 시간도 아낄 수 있었잖아. 자기는 영어 실력을 쌓은 다음에 호주 회사에 취업하려고 계획을 세웠잖아. 그런데 그게 지금 가능할 거 같아 보여? 만약 1년을 영어 학원에서 계속 공부해서 레벨 3. 까지 올라갔다고 해서 호주 사람들이랑 영어로 의사소통하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 같아? 지금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 통장 잔고가 말라가고 있어. 지금 공부할 때가 아니라 일을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늘지도 않는 영어를 배우겠다는 핑계로 만약 여기 시드니에서 한국처럼 계속 백수 생활을 한다면 난 당신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결국 그는 영어 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기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일단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다. 작은 가게에 주방보조로 일하다가 나중에 운 좋게 연어 니기리 기술을 배우며 일하는 곳에 취업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영어 때문에 부부갈등 상황이 빚어졌다. 쌍방이기보다는 나의 일방적인 분노에 가까웠다. 



원래 손발이 느린 편인 그가 사시미 칼을 처음 사용하다 보니 많이 서투르고 느렸다. 그런데 기술을 알려주고 관리하는 팀장이 상당히 권위적이고 사람을 압박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알려준다는 미명 아래 강압적인 분위기에 일일이 간섭을 받다 보니 부담감이 상당했다. 스트레스 한계 상황에 다다르자 도저히 한국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없는 호주 회사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적어도 영어로 일하는 곳에 가면 이런 한국 군대 분위기 같은 근무환경은 아니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는 영어 울렁증이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참을 인 세 개를 세기면서 꾹 참고 열심히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솔깃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것은 바로 같이 일하던 젊은 워홀 직원들의 경험담. 자신의 유창한 스피킹 실력 비법은 필리핀 영어연수 때문이라는 썰을 풀어놓는다. 

"다른 건 몰라도 리스닝 스피킹 늘리는 데는 필리핀에서 배우는 게 최고야."

"그곳은 일대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배울 수 있어."

"게다가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잖아."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기회에 영어를 정복해서 호주 회사에 취업하게 된다면 지금 여기보다는 돈도 더 받고 마음도 편하게 일하지 않을까 상상의 날개를 펼쳐진다.



"수니야, 필리핀에 가면 스피킹 실력이 올라간데 나도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 영어가 되면 호주 회사에 취업할 수도 있고 그러면 지금보다 더 대우받는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거야."

"야, 또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예전에 한국에 백수 시절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토익 공부해서 좋은 회사로 취직할 거야. 그러니까 좀 기다려줘."

그 당시 그는 영어 공부하려고 책만 사고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중학교 1학년 이후 줄곧 영어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했는데 30대 중반에 다시 공부를 하겠다니 어처구니없다. 그의 속마음은 영어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실을 모면하고 싶은 것이다. 필리핀 가서 영어 공부하고 싶어, 이 소리는 나 지금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 그의 말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 앗, 정말 지긋지긋하다. 



처음에 호주로 이민 와서 영어 왕초보반을 들어가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실력이 늘지 않았는데 과연 필리핀으로 가면 실력이 늘 수 있을까? 그곳에 가려면 왕복 비행기 티켓에 숙박비와 생활비에 게다가 수업료까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지금 우리 형편에 이게 가당찮은가? 남편이 그렇게 원하니 그래 100번 양보해서 그렇게 하라고 하고 싶다. 가서 정말 영어를 배워오면 조금이라도 자신감이 생겨서 호주에 앞으로 더 잘 적응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남편과 방법을 한번 찾아보자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핵심은 나와 같이 3개월이든 6개월이든 같이 가서 공부를 하자는 거 아닌가? 아니 뭐야, 혼자 간다고 해도 보내줄까 말까 하는데 나랑 같이 가자고? 그는 절대 낯선 곳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성격이기에 나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으악 미치겠다.' 도대체가 이게 무슨 짓인지. 정말 돌아버리겠다. 그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주판을 튕겨봐도 이건 아닌다 싶다. 그래도 남편이 원하니 필리핀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 당시 우연히 호주에서 알게 된 중국인 친구와 만나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본다. 나도 모르게 하소연을 하고 말았다. 

"있잖아, 남편이 말이야, 영어 때문에 필리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데, 속상해."

이러쿵저러쿵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아니 남편이 너무 하는 거 아니나며 나 대신 화를 내준다.

"지금 여기 호주가 영어를 쓰는 나라인데 어디 다른 나라에 가서 배우겠다고? 호주가 더 영어 교육 질이 좋고 일상에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데, 왜 굳이 그런 낭비를 하려고 하지? 남편이 문제가 많은 거 같은데. 남편이 너무 하는 거 아냐? 호주에 정착해서 잘 살려는 자세가 아닌 거 같은데."

어쩌고저쩌고. 



내 편을 들어준다고, 나를 걱정해 준다고 하는 말인 거 같은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약간 비난성 이야기처럼 들린다. 알고 보면 그 친구는 잘못이 별로 없다. 이 모든 상황은 내가 만들었다.  괜한 하소연을 해서 그녀는 나를 걱정한다고 위로해 준다며 남편을 안 좋게 말한 것이다. 여하튼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오니 속이 영 불편했다. 불편한 심정으로 집에 왔는데 마침 퇴근한 그의 얼굴을 보는데 울화통이 치민다.



"너 때문에 이런 무시를 당해야 하는 거야? 영어를 배우려면 언제든지 이곳에서도 할 수 있잖아. 왜 굳이 필리핀까지 가야 하는 거야? 돈도 없는데. 너무 하는 거 아냐?"

내 목소리가 커지고 찢어진다.

"아니 진정해, 난 그냥 한번 생각이 나서 한번 논의를 해보자는 거지, 필리핀을 꼭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너무 오버해서 생각한 거야. 네가 원하지 않으면 안 갈 거야. 걱정하지 마."

이렇게 부부 싸움 끝에 남편의 상상 속 필리핀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 후로 회사에 참을 인 여섯 개를 새기고 다니게 되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가니 기술이 손에 익숙해졌고 팀장의 잔소리도 조금씩 줄어들어 회사 생활도 안정모드로 들어갔다.




남편은 과연 '하이, 하와유' 영어 단어를 몰라서 대답을 못하는 것일까?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는데. 남편의 영어 울렁증은 무식상 사주를 조준하고 있다. 



만세력을 펼쳤을 때 식신 상관이라는 글자가 없다면 남편과 같은 무식상 사주이다. 그러나 식신이나 상관이라는 글자가 있다면 식상이 있는 사주이다. 사주에 식신이나 상관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식상이란 정신세계 즉, 무의식을 몸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 즉, 의식화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몸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한다. 



식상은 활동의 시작이다. 활동하려면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나를 표현해야 한다. 의식주가 식상에 해당하는데 그것이 준비되어야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어서이다. 식상은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손과 발을 움직이는 활동력이라 소화력이 좋고 낙천적이며 건강하다.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을 보면 머리만 쓰지 않는다. 입으로 읽고 또 읽고 잘 못해도 직접 부딪치면서 몸으로 체득한다. 언어 감각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말하기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언어의 달인이 되는 거다.



언어를 잘하는 사람에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식신과 상관이 있다면 언어를 구사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상관은 언어 재능이 탁월하다. 반면 무식상 사주이라면 이런 언어를 배우는 재능이 많이 부족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몸으로 익히는 것들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식상이 10번 연습하여 몸으로 체득했다면 식상 있는 사람 1번만 연습해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어린 시절부터 무식상 사주의 일관성을 이어왔다. 

"17번 학생 일어나서 오늘 수업 나갈 부분 읽어봐."

"예?, 음, 콜록, 아, 저어녁 상을 물리고, 에, 마당에 높은 펴어상에 누우면, 콜록, 하아늘에는 별이이 초총, 음, 평상에 누우면, 아니 별이 초오총총 하하였다."

웅성웅성.

"자, 조용히. 거기까지, 그만 읽고. 너는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알았지? 다음은 27번이 일어나서 읽어봐."



초등학교 5학년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된 3월 초 국어 수업 시간, 그는 담임에 지적에 어쩔 수 없이 일어서서 책을 읽는데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지만 겨우 책을 부여잡고 옆에 친구만 겨우 들릴 정도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더듬더듬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간다. 하지만 정신이 없는 나머지 읽은 부분을 다시 읽고 만다. 친구들은 글도 못 읽는다면서 웅성웅성 시끄럽다. 그나마 선생이 중간에 끊어주어 다행이다. 



그는 휴 한숨을 쉬고 의자에 앉아 진땀을 닦으며 빨라진 심장소리가 안정되기를, 어서 빨리 수업 시간 종이 울리기를 기도하며, 고개를 숙여 책상만 쳐다보고 있다. 혼날까 봐 겁이 나지만 선생이 시키는 대로 수업 후 교무실에 찾아갔다. 창피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선생 앞에 얌전히 서있다. 



17번 학생 책 읽는 모양을 보니 오후에 남겨 나머지 수업이라도 시켜야 하나 고민이 되는 담임이다. 4학년 시험 성적표를 확인해 보니 의외로 모든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맞은 거 아닌가. 국어, 도덕, 사회 과목 모두에서 100점을 맞았다.



"옳거니 이 녀석 오늘 잘 걸렸다. 너 여태 커닝한 거지? 정직하게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 어서 불어."

"아, 아, 아니에요 선생님 저, 저는 커닝 안 했어요. 아니에요."

"조그만 게 어디서 거짓말까지 배웠어? 빨리 제대로 말해."

"진짜예요. 선생님. 저, 저는 거짓말 안 해요."

"음, 그래? 어디 보자." 

잠시 그의 생활기록부를 보고서는 말을 잇는다.

"그 공부 잘하는 공주가 너희 누나가 맞아?"

"예. 맞아요."

"음, 그래, 알았어. 이제 집에 가봐. 누나는 책도 또박또박 잘 읽던데 집에서 누나랑 책 읽는 연습 좀 하고 알았지?"

"아, 예.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꾸벅 절을 하고 교무실을 나온다.



남편은 학교 수업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그의 언어 표현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어릴 때 남들보다도 말이 늦게 터졌고 한글 맞춤법도 많이 틀려서 받아쓰기 성적은 형편없었다. 또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어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특히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웬만하면 피하기만 했다. 특히 음악 시간에는 노래를 친구들 앞에서 시키는 일이 있으면 너무 어색하고 창피해서 아예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서있다가 결국 손바닥을 맞는 체벌을 받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영어수업 시간, 그는 한글도 제대로 읽지를 못하는데 영어는 도대체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따라 읽고 말하라니, 그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나름 공부를 하려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너무나도 어렵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는 영어에 관심이 멀어졌고 영어에 손을 놓으면서 저절로 포기를 선택했다. 영어는 긴 문장이 정답이라는 이상한 말을 한 동네 형을 따라, 긴 문장만 골라서 시험지를 답안을 제출했다. 영어는 점수는 아예 포기했다.



그래도 그는 비상한 머리가 있었다. 사람 이름이나 역사의 연도를 줄줄 정확하게 잘 외웠다. 그래서 포기한 영어를 제외하고는 다른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맞아서 국립대학교에 비인기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 적성에 맞지도 않는 영업일을 시작했다. 뭔가 자신에 단점을 극복해 보고자 선택한 건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너무 몰라서 아무거나 골랐는지 몰라도 1년 넘게 해 보니 영 맞지를 않는다. 



그래서 일을 관두고 생각한 것은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기억력 좋은 머리 하나로 승부를 걸어보기로 한다. 노량진 고시촌으로 올라와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2년 가까이 공부를 했는데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 바로 영어에 발목이 잡혀서 합격하지 못했다아무리 다른 과목에서 점수를 높게 뽑아도 영어가 과락을 면하지 못하니 합격은 이미 물 건너 간 셈이었다. 그도 이번 기회에 영어를 정복하려고 맨투맨을 붙잡고 꾸역꾸역 공부해 보지만 1장 동사의 종류 부분을 넘어가지 못한다. 그는 성격상 완벽하게 이해를 못 하면 그다음 장을 넘어가지 못했다. 뭔가 이해를 했을 때 암기가 되는 기억법을 소유한 그에게 맞지 않는 게 과목이 영어인 셈이다. 영어는 이해를 요구하는 과목이 아니고 무조건 여러 번 반복해서 몸으로 습득하는 것인데 그걸 알 턱이 없으니 결국 영어를 또 포기했다.



어찌어찌 대기업에 사원으로 늦게 입사를 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 그의 발목을 잡는 것 역시 영어.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피해 가기란 여간 쉽지 않다. 학창 시절 발목을 잡은 것도, 사회생활 발목을 잡는 것도 영어다. 직장에서도 승진을 하려면 토익점수를 제출해야 하는데 아예 시험에 응시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승진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다. 그래서 이제는 안 되는 영어를 포기하고 남들이 쉽다는 일본어에 야심 차게 도전해 본다. 하지만 영어보다 더 어려운 게 일본어라는 말을 남기고 바로 포기했다.



극도로 심한 영어 알레르기가 있고, 남들 앞에서 말하기 어려워하고, 내성적이라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 그는 왜 호주로 이민을 가고 싶어 했나?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희한하게 그는 갈구했다. 그만큼 한국에서 탈출하고픈 욕구가 더 강했다고 밖에 설명되지 않지만. 여하튼 그렇게 시드니로 이민 왔고 그는 새로운 곳에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겠는가? 당연히 영어 울렁증은 호주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도저히 그를 이해하지 못하니 정말 심하게 말다툼을 했고 이민 초기에 갈등이 너무 격했다.




그러다가 사주 공부를 하니 왜 그가 영어에 그다지도 취약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낸 것이다. 바로 식상이 없는 무식상 사주이기에. 그렇게 그를 이해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연민까지 생겨났다. 



남편에 말로 표현하는 능력, 몸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 즉 식상의 기운이 부족한 것이다. 그 부족한 것을 극복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남편 같은 경우는 매우 부족한 편인 셈이었다. 그러니 식상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면 그들이 하는 노력에 10배 아니 100배를 해야 하는데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게 아주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같이 배워도 익히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니 본인은 얼마나 더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어려운 것을 붙잡고 끙끙 노력을 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식상이 있는 나에게는 쉽게 느껴져서 남편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가 뒷산을 올라가는 느낌이라면 그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는데 그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내 방식을 강요하고 그렇게 따라오지 못한 그를 나무라고 소리 지르고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사주 공부를 하게 되니 그의 부족함을 내가 따져 묻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배려해 주고 이해해 주어야 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에 그에게 성깔을 부렸던 과거가 떠오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영어 울렁증 남편을 이해하게 되니 예전처럼 영어에 대한 강요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웬만하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도맡아서 하고 있다.



"수니야,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가 능력이 있으니까 남편에게 힘을 준다고 생각해."

영어로 남편 조금 도와주고 온갖 생색에 구박을 했던 나에게 남편이 해준 충고가 새삼 생각나다. 남편이 영어를 포기했듯이, 나도 남편 영어를 포기했다. 그렇게 남편이 영어를 해야 한다는 고집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요새는 남편이 살짝 변하고 있다. 어느 날은 차집에 가서 우롱차를 시켜서 마시는데 물이 떨어졌다. 그래서 뜨거운 물을 리필하고 싶은데 내가 가만히 있으니 남편이 나서서 종업원에게 말한다. 찻주전자를 가리키며 "리필 플리즈."




남편 회사 사장은 한국 사람이고 주로 일하는 사람들도 호주 교민들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시아 출신 호주 직원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한국어와 영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듣고 말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저절로 노출되었다. 특히 매니저가 베트남 사람이다 보니 영어로 보고를 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왕초보 회화책을 펼쳐놓고 여태 하지 않았던 영어 회화 연습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서 이제는 매니저에게 언제 휴가를 간다 정도는 이제 외워서 짧게는 몇 단어 길게는 몇 문장이라도 말할 수 있게 발전되었다. 영어울렁증에서 이젠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남편이 문득 이런 말을 던진다.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인생이 뭘까?"

"무슨 생각?"

"무식상 사주로 타고난 영어 울렁증인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영어를 만약 잘했으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안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거 말고, 어설프게 잘했으면, 아마도 깜냥에 아무 곳이나 가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러면 지금처럼 여기를 오래 못 다닐 수가 있었을 거야. 오히려 영어를 못 했던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10년이나 한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만들어 준거야. 결국 돈을 버는 지점에서는 더 이익이었다는 거지. 어디를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버티면서 여기를 오래 다닌 거잖아. 배수진을 친 거지. 내가 여기를 오래 다닌 것은 영어를 못해서 그런 거야."




"와, 그러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영어 조금 한다고 여기 아니면 갈 때 없을까 봐 하고 스트레스받으면 잘 관두는 편이잖아."

"심정적으로 영어가 되면 여기를 안 다녔을 거라는 거야. 아마 관뒀을 거야. 그러면 주에 천불 받다가 관두고 또 다른 데 가서 주에 천불 받고 그렇게 계속 옮겨 다니면, 지금도 아마 비슷한 주급을 받고 있을 거 같아. 경력이 안 쌓이니까. 그런데 여기는 외국이고 영어에 대한 압박감이 있으니깐 웬만한 스트레스는 견디고, 그냥 다니자, 했던 거지. 한국에서 생산직으로 20년 30년 다닌 사람도 많겠지만 외국에서 생산직으로 10년을 다녔다는 건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는 부분이지."



"맞아. 자기가 한 회사를 이렇게 오래 다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대단해."

"그 원인은 나의 단점이 나의 장점이 되었기 때문이야. 영어 울렁증 덕분이지."




다음 편 예고


결혼 후 처음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위기.

담배를 안 피우던 남편이 다시 담배를 피우는데.

침묵과 표정 만으로도 아픔이 전해지는 사랑 이야기.

신혼 때 이혼 위기를 잘 넘기게 된 배경 역시 사주 때문에?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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