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환장하게 만드는 아내의 말버릇
아니 이게 뭐가 대수라고 상관이야?
왜 대체 사람 마음 불편하게 만드는 거야?
사람 앞에서 민망하게 왜 그래?
고객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배치해 놨는데...
화를 거의 내지 않는 남편인데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쏟아낸다.
마침 집에 마시던 와인이 떨어졌다. 주류 판매점(liquor store) 댄 머피(Dan Murphy's) 가게로 와인 쇼핑을 나왔다. 평소에 먹는 와인 한 박스를 골라서 계산대 앞으로 갔다. 직원에게 신용카드를 내밀어 계산을 요청했다. 그때 남편이 계산대에 비치된 노란 종이봉투를 대략 5장 집어 챙기는 것이 포착됐다. 얇은 일회용 종이봉투는 손님들이 구입한 와인병을 감싸는 용도로 사용한다. 순간 내 시선은 남편 손에 들린 노란 봉투에 쏠렸다. 직원이 계산한 영수증을 건네주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인상을 쓰면서 손가락으로 남편 손에 들린 봉투를 가리켰다.
"아니 왜 봉투를 쓸데없이 많이 챙겨가는 거야?"
"바비큐 불 붙일 때 사용하려고 그래."
"저번에 와인 살 때 자기가 많이 챙겨났잖아. 집에 많아. 근데 또 가져가려고 하는 거야? 하지 마."
"아니 고객을 위해서 무료로 배치해 놓은 건데, 네가 왜 그래?"
"아니 공짜라고 너무 욕심내는 거 아냐? 도대체 불필요한 걸 왜 가져가려고 그러는 거야?"
그는 더 이상 말대꾸도 안 하고 얼굴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렇게 점원이 보는 바로 앞에서 대략 1분 정도 서로 실랑이를 벌였다. 직원은 한국말로 말다툼을 하는 우리 모습을 어리둥절 쳐다본다. 여하튼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받고 가게를 후다닥 빠져나왔다.
말싸움 상황은 벗어났지만 남편 얼굴에는 분노의 물결이 강타했다. 눈동자는 치열하게 번뜩이며 눈썹 사이로 미간 주름이 짙어졌다. 불안한 근육이 얼굴에 생겼고 코 끝에서 입술까지 흐르는 긴장이 느껴졌다. 나한테 할 말 있는데 쇼핑하는 주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애써 참고 있는 모양새다. 그는 입을 꽉 다물고 가게 주차장으로 빨리 걸어갔다.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분노가 느껴졌다.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 순간 그의 언성이 높아진다.
"아니 남 앞에서 그렇게 남편한테 무안을 줘야겠어? 그 종이봉투가 뭐라고?"
"이미 집에 그 봉투가 엄청 많다고, 10개 이상 있다고, 그런데 굳이 더 챙기는 건 낭비 아냐?"
나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내 생각은 불필요하게 일회용 봉투를 사용하려는 남편을 제지한 거뿐이다.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길 바라는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그게 너의 본심이 아냐, 그건 변명이야."
남편은 나의 무의식을 꿰뚫어버렸다. 실상은 일회용 와인 봉투를 챙기는 남편을 바라보는 점원의 이상한 눈빛에 내가 쫄았던 거였다.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남 눈치를 보다 보니, 약간 당황해하는 점원 표정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제일 만만한 남편에게 하지 말라고 핀잔을 준거였다. 내 안에 껄끄러운 심정을 오히려 남편에게 투사해서 잔소리와 지적질을 한 셈이다.
남편은 단지 고객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구비된 일회용 누런 봉투를 몇 개 챙겨 온 죄밖에 없는데. 아내에게 무시당해서, 사소한 자유마저도 빼앗긴 것이 너무 부당해서 화가 날 수밖에. 아주 사소한 것마저 간섭하고, 너무 작은 행위마저도 제지를 하다니. 전혀 상관없는 일에 잔소리하는 아내 때문에 분노가 터져버렸다.
무식상 사주인 남편에게는 상관이야말로 쥐약과 같다. 극도로 싫어하는 게 바로 상관이다. 소중한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다니. 남편 감정을 살피면서 잘 챙겨줘야 할 아내는 없다. 오히려 남 눈치 때문에 사소한 행동마저 이러지 마라 태클을 걸고 있으니.
"그깟 종이 몇 장 아끼는 것이 소중한 남편 기분 상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야?"
진짜 상관해야 할 사람들, 소위 권력 있는 사람, 나를 억압하는 사람에게는 깨갱하면서, 남편처럼 아내 말 잘 듣고 순한 사람에게는 상관하고 억지로 시키기까지 종용한다. 주류점에서 불쑥 상관 기질이 올라왔고 내 탓이 아닌 남편 탓을 했다. 남편이 편하다는 이유로 지적질을 해버렸다.
"내기할래?"
"뭐?"
"집에 와인 봉투가 10개 이상 없으면 100불 줘. 너는 소중한 돈을 잃어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어. 그리고 지금 화난 마음을 돈으로나마 달래야 조금 누그러질 수 있을 거 같아."
"집에 봉투가 무조건 10개 이상 있을 테니, 내가 100불 줄 일은 없을걸."
"결과는 집에 가서 확인해 보면 되니까. 여하튼 내기하는 거지?"
"자기가 지면 나한테 100불이야."
"콜!"
집으로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기가 막히게 봉투가 딱 10개가 있는 거 아닌가?
"자기 귀신이다. 100불 여기 있어. 이제 기분 좀 풀린 거지?"
"아니 아직. 진심으로 우러나는 사과를 받고 싶어."
"죄송합니다. 상관해서 죄송합니다. 무릎도 끓어야 해?"
"당연하지. 그래야 어리석음을 깨우치지."
부부 싸움 중심에는 항상 상관이 있었다. 식신과 상관은 둘 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상관은 외부에 자극이 들어온 것에 대해서 반응하면서 자신에 생각과 감정, 행동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 식신은 외부에 자극과는 무관하게 내가 관심 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표현한다. 상관있는 나는 1개를 알면 10개를 아는 것처럼 입으로 떠들어댄다. 반면 무식상 사주인 남편은 10개를 알아도 1개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남편은 인성이 많고 식상이 없으니 머릿속에 정보들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이나 행동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과묵한 사람, 신중한 사람, 믿을만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관이 있는 아내는 남편에게 지적질, 참견, 잔소리 같은 걸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의 약점, 역린을 꼭 집어서 말하기 일쑤이다. 게다가 무인성 사주라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능력도 떨어지는데, 상관으로 과하게 말로 표현하다 보니 결국 타인에게 오해받을 짓도 많이 했다. 그래서 오지랖이 넓고 주책바가지이다. 사실을 과장하거나 부풀려서 말을 하는 경향도 있다.
나의 상관짓 히스토리는 꽤나 예전부터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호랑이 영어 선생이 있었다. 요즘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 무서운 스타일에 권위의식에 절은 선생이었다. 그런 호랑이 선생에게 찍혀서 자퇴 위기에 내몰렸다. 아주 사소한 한 줄 상관짓 때문에.
상관은 관의 흠을 찾아내려고 한다. 부조리를 타파하려 노력하고 잘못된 것을 그냥 보고 있지를 못한다. 뭔가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상관은 지적, 투서, 고발하는 등 다소 저항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상관은 강압적이라 돌이키기 힘든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그래서 상관은 불이익을 자처한다. 관이라는 나의 권리를 반납해서 그렇다. 왜냐하면 관은 많은 사람들이 세운 규칙이나 권위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영어수업은 상당히 고전적인 스파르타 방식이었다. 수업 시작 전에 항상 쪽지시험을 봤다. 그 전날 수업 시간에 진도 나갔던 영어 문단을 외워서 5분 안에 적어야 한다. 5분 후에 짝꿍이랑 영어 문장이 적힌 쪽지를 교환하여 채점을 매긴다. 다 외우지 못한 몇몇 친구들은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손바닥 10대씩 맞아야만 했다. 아주 두꺼운 몽둥이로 세게.
요즘 시대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40년 전에는 가능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아이들은 죽기 살기로 영어 문장을 달달 외웠다. 매를 맞지 않으려고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학급 인원이 총 70명이 조금 넘었는데 그중에 10% 한 7명 정도만 주기적으로 손바닥을 맞았다. 아마도 그는 학생들 영어 성적이 잘 나오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을 거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명예가 부서지는 날이 찾아왔다. 다가오는 중간고사 시험이 2주 후로 예정되었을 때였다. 중간고사 준비를 한다고 다른 과목 선생들도 쪽지시험을 치기 시작했다. 영어 쪽지시험 준비에 타 과목 쪽지시험 준비까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학급 친구들은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영어 수업 시간 들어가기 전에 전날 배운 것을 확인하는 쪽지시험을 쳤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무려 17명이 암기를 못해 시험에 탈락해 버렸다.
더 큰 문제는 한 학생이 커닝으로 적발되었다. 영어책을 몰래 보면서 쪽지에 옮겨 적다가 호랑이 눈에 딱 걸렸다. 그녀는 나의 친구였다. 도저히 몽둥이로 맞을 엄두가 나지 않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부정행위를 해버렸다. 호랑이 선생 공포에 너무 겁먹은 나머지 선을 넘어버렸다.
그날 영어 선생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자기를 무시하고 영어 공부를 소홀하게 했다는 점. 또 자기 앞에서 감히 커닝을 했다는 사실에. 결국 분노가 폭력으로 치달아버렸다. 키는 175센티가 훨씬 넘었고 다부진 근육질 체형이었다. 그런 그가 온 힘을 실어서 구둣발을 공중에 날렸다. 내 친구는 교실 벽으로 철퍼덕 나가떨어졌다. 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극도로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우리 반 친구 모두는 망연자실했다. 그녀는 키가 제일 작아 맨 앞에 앉아 수업을 듣는 여린 여중생인데. 그 작은 체구가 구둣발 한 방에 몸이 공중에 붕~ 떠서 교실 한구석에 떨어지다니.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건 눈앞에 펼쳐진 실시간 공포 영화 그 자체였다. 그리고 곧바로 쪽지시험에 탈락한 17명은 차례로 교탁 앞으로 불려 갔다. 10대씩 몽둥이로 손바닥을 세차게 맞았다. 교실 분위기가 정말 엉망 그 자체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면 되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호랑이 선생은 우리 반이 자기를 무시했다고 그 후로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수업 거부를 해버렸다. 참, 기가 막히는 일이다. 나 포함 우리 반 친구들이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잘못을 있다면 그건 폭력적인 선생이지 우리가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한 일주일 동안 수업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반장이 이렇게 수업을 못하면 우리만 손해라 설득하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다 같이 반성문을 작성해서 선생에게 제출하자고. 그러면 아마도 우리를 용서해 주고 다시 수업에 돌아올 거라고.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고 오히려 선생이 잘못했는데 왜 반성문을 쓰는가. 하지만 단체행동을 하는데 빠질 수도 없고 해서 쓰고 싶지도 않은 반성문을 적어 내려갔다.
반성문을 쓰다 보니 잘못된 것을 지적질하려는 상관 기질이 욱하고 올라왔다. 솔직히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폭력의 현장을 지켜본 것뿐인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반성하려니 너무 짜증이다. 그래서 형식적인 문장으로 반성문 종이 한 바닥을 채웠다. 이렇게만 적자니 약간 억울한 마음이 남아있다. 그래서 마지막 한 문장에 약간의 진심을 살짝 포함시켰다.
'설마 이 많은 반성문을 일일이 다 읽어보겠어? 그냥 대충 훑어보고 말겠지.'
반성문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남겼다.
'우리들도 잘못했지만 선생님도 잘한 것은 없다. 그러니 앞으로 서로 잘해보자.'
이보다 더한 문장도 적고 싶었지만 분노를 최대한 자제해서 우회해서 적은 한 줄이었다.
반성문을 제출한 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가방을 챙기는 데 갑자기 반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교무실에서 선생이 나를 찾는다고. 허걱,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여때껏 한 번도 교무실에 가 본 적이 없었는데. 느낌이 싸늘하다. 무슨 큰일인가 싶어 겁이 털컥 났다. 가슴 조마조마하며 교무실로 들어가 호랑이 선생 자리를 물어 찾아갔다.
"반성문 쓰라고 했더니 뭐 나한테 잘해보자고? 이거 아주 문제아였어. 문제아야."
그때 스치는 생각이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면 동정심을 유발하면 좋을 텐데 싶었다. 눈물을 쥐어 짜내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으니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반성하는 척, 고개 푹 숙이고 화난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밖에.
"이런 싹수없는 녀석, 내가 너 꼭 퇴학시킬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제 집에 가."
교무실을 나오니 지금 어디, 이거 무슨 상황이지 싶다.
'아... 나는 조만간 여기 학교에서 퇴학당하겠구나. 어쩌지?'
여러 잡생각을 하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걸어갔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하교해 버린 시간. 혼자 텅 빈 운동장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입에서 막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야, 미친 개XX야."
처음으로 욕을 입 밖으로 토해낸 날이었다. 혼자 중얼중얼 욕 방언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잠자고 있던 거센 상관 기질이 바로 봉인 해제되어 버렸다.
마지막 한 줄을 적지 않고 형식적인 반성문을 냈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 이상한 정의감에 사로잡혀 나의 권리를 반납해 버린 거였다. 치기 어린 마음에 선생을 지적질하여 스스로 불이익을 자처한 셈이다.
내가 내 발목을 잡고 넘어져 버린 날. 그 한 줄로 호랑이가 토끼로 변할 수도 없을 텐데.
남편에게 뱉은 지적질 몇 마디와 선생에게 제출할 반성문에 적은 반항적인 한 문장은 결국 그들의 화를 돋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게 바로 상관이 가진 파괴적인 힘이다. 그런데 남편도 선생도 나의 상관짓 때문에 속으로 조금은 뜨끔 하지 않았을까? 불의를 참지 못하는 나만의 못난 정의감이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팔자에 상관 있는 자로서 혼자 당당하게 속으로 외쳐본다.
다음 편 예고
매번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입으로 시키기만 하는 남편.
그런 남편한테 화가 많이 난 아내.
이제 남편의 모든 잘못을 낱낱이 까발려 버리겠다.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