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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언니 수니 Nov 16. 2024

반항적인데 잘 풀리는 이유? (상관)

패션 테러리스트 1위가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수니씨 옷 좀 신경 써서 입고 다니면 좋겠어."

"선배 뜬금없이 왜 패션 이야기가 나오죠?"

"그거 알아? 자기가 패션 테러리스트 1위로 뽑혔데."

"엥? 패션 테러리스트 1위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 회사에서 내가 2위이고, 자기가 1위래."

아니 회사가 일하러 다니는 곳이지 패션쇼하는 데는 아니지 않은가? 아니 내가 옷을 잘 입고 다니든 말든 신경 쓸 일도 아닌데 게다가 친절하게 랭킹까지 매기고 소문까지.



모두가 알다시피 아무나 1위를 하는 게 아니다. 20대 중반 프로그래머로 직장 생활을 할 때 1위에 등극했다.

패션 테러리스트 불명예 1위. 뭐 내가 패션이 별로 인건 인정한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데 일단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미완성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옷이라도 잘 입어줘야 하는데 영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뭐 체형이라도 받쳐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나한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남자들이 안 좋아할 스타일이다.



솔직히 나도 내가 외적으로는 맘에 안 든다. DNA 입장에서 변명을 해보자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잘생겼지만 패션 감각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못생겼지만 패션 감각은 있으셨다. 나는 두 분의 조합으로 25% 확률로 탄생했다. 못생기고 패션 감각 없는 여자로.



어릴 때에는 외모 콤플렉스도 심했다. 굳이 사주로 따지자면 지지에 겁재가 많아서? 아니면 임자년주, 임자일주라서? 여하튼 패션이 엉망인 거 인정하는데 고칠 생각도 그다지 없다. 패션이 엉망이면 사회성도 떨어진다는데 그 말도 맞다. 그래서 연애를 잘 못하긴 했다. 용케 남편 만난 게 신기하다.



한창 꽃 같은 나이인 20대 최악의 패션 테러리스트 타이틀을 쥐었으니 오히려 나이 들수록 유리하다. 지금 중년이 되어 패션에 신경 안 쓰고 가만히 있어도 그때보단 무조건 상위권이다. 나이가 커버를 해주니까.



외모 타령하면 끝도 없으니 여기서 끊어보자. 문제는 패션 지적을 받아서 어떻게 반응했느냐가 포인트이다. 그때를 생각하니 돌아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는 자신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다. 나의 초점은 내가 아닌 그 소문을 퍼트린 사람이었다. 왜 회사에서 뒷담화를 까는지? 일을 못해서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일과 상관없는 외모나 패션 가지고 그러는지? 왜 이런 황당한 것으로 구설수에 올라야 하는지 그것이 괘씸했다.

소문 진원지를 밝혀서 그 사람과 한판 뜰 생각을 했다. 아무 생각이 없는 무인성 사주도 한몫하긴 했다.



"제가 패션 테러리스트 1위라는데 들어보셨어요?"

"음, 처음 듣는 소리인데?"

"그 소문 퍼트린 사람 누군지 아시죠?"

"글쎄, 잘 모르겠는데..."

씩씩거리며 직원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추궁을 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도 몇 명 되지도 않아 며칠 만에 다 물어보았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까지 일일이 캐물었다. 나의 이런 행동이 오히려 공개적으로 패션 테러리스트 1위 자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오히려 직장동료들에게 괜한 불쾌감을 안겨준 면도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그런 소문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지나갔을 텐데. 한마디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셈이었다. 결국 범인이 누군지 밝히지는 못했다. 허탕이었다. 열은 받았지만 그냥저냥 시간이 흘러갔다. 망각과 함께 정신적 충격도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그때에는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상관 짓을 하면서도 그것이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전혀 몰랐다. 대놓고 물어보면 범인을 순순히 알려줄 사람도 없을 텐데. 나의 분노가 범인 색출에만 신경을 쓰니 너무나도 놓쳤던 부분이 많았다. 그냥 누가 그런 소리를 했나 보다, 앞으로 옷을 잘 신경 써서 입고 다녀야겠구나, 하고 끝나면 될 일을 혼자 발광하며 들쑤신 셈이다. 




인성이 있는 상관이라면 분명 생각을 해보고 요령껏 말을 했을 텐데, 무인성 사주이다 보니 별생각 없이 그냥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던 것 같다. 내 감정 상한 것만 생각했지, 내가 주변인들에게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상관 사주 특성이 시선이 내부가 아닌 항상 외부에 쏠려있다. 그래서 타인의 잘못은 잘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잘못은 잘 보지 못한다. 혹여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준다 하더라도 못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만약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스파크를 튀기며 격하게 거부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보통 상관 있는 사람에게는 상관하지 말하고 한다. 정작 자신은 남에게 상관하면서 남이 상관하는 것을 못 참는 게 또 상관이다.



한 달 후 의심스러운 용의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총무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미스코리아 미스 대구 선 출신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키도 170cm에 얼굴도 하얗고 옷도 잘 입고 다니는 여성이었다. 소위 말해 패션니스트이자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에 절로 수긍이 되는 인물이었다. 개발자인 나와는 업무가 겹치는 부분이 없어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야근을 할 때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그녀와 밥을 한번 같이 먹을 일이 생겼다. 그녀가 용의자인 만큼 유심히 무슨 말을 하는지 살펴보았지만 별 특이점은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칭찬을 해주는 거 아닌가?

"수니씨 이렇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 보기랑 달리 성격이 좋으시네요."

그녀의 칭찬에 그간 열받았던 내 마음은 너무나도 쉽게 수그러들었다. 칭찬을 받고 그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좀 이해가 되는 구석이 생겼다.



미스코리아 출신 패션니스트 입장에서는 내 패션 감각 점수가 꼴등이라고 할만하겠구나 싶었다. 자칭 전문가의 소견인데 내 귀에는 지적질로 들렸던 거였다. 미녀가 성격이 좋다고 인정해 줬으니 패션 따위는 꼴등이어도 괜찮다. 어차피 별로 신경 쓰고 싶지도 않으니까. 긍정적인 삶을 살기 위한 나의 무기를 꺼냈다. 그렇게 나는 정신승리를 했다. 그녀는 아마도 내가 사람들한테 캐묻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었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에게 불똥이 튀길까 봐 바로 처세 전환을 한 거 아닐까. 외모에서 성격으로 주제 방향을 옮긴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성격 좋다는 한마디에 그녀 앞에서 헤벌쭉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격이라도 좋아 보이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는 거니까.




"이 음식에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갔어. 느글거려."

"게다가 재료가 신선하지가 않아. 이 가게 너무 별로야."

"아니 공깃밥이 차가워. 여긴 장사를 할 생각이 있는 거야?"

"너무 맛이 없잖아. 완전 땡이야. 땡!"



시드니 시티에 남편이랑 나들이 갔었다. 점식을 먹을 때라 근처에 가게를 둘러보니 한식당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다른 곳을 추천했지만 깔끔한 인테리어가 맘에 들어서 이곳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철판 LA 갈비를 남편은 찌개를 시켰다. 맛이 이렇게 없을 수가. 식사를 하면서 계속 남편에게 불평을 털어놓으면서 밥을 먹었다. 겉모습 보고 이 가게를 선택한 내가 눈을 파고 싶다는 둥, 도대체 여기 가게 사장이나 매니저는 제대로 장사할 생각이 있냐는 둥 온갖 지적질과 잡소리를 해댔다. 남편은 안 그래도 맛없는 음식을 그냥저냥 억지로 먹고 있는데, 아내가 옆에서 입으로 떠들어대니 안 그래도 맛이 없는데 더 맛이 없다.



"그냥 조용히 먹어. 어차피 시켰잖아."

"아니 맛이 없으니까 맛없다고 하는 거잖아."

"맛없다고 불만을 터트려봤자 맛없는 게 맛있게 변하지 않잖아. 이번엔 그냥 먹고 다음에 여긴 안 오면 되지."

"다음에 당연히 안 오지만 난 여기 매니저한테 내 불만을 꼭 이야기해야겠어."

"네가 말한다고 과연 개선이 될까?"

"여하튼 난 메모 남겨놓을 거야."



식당 매니저한테 펜과 메모지를 달라고 해서 한소리 적었다. '사장님 음식이 너무 맛없습니다. 야채도 시들시들하고, 밥은 차갑게 나오고, 찌개는 조미료 때문에 너무 니글거려요. 가격도 비쌉니다.' 제대로 그 메모가 사장에게 주방장에게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냥 내 더러운 성질을 쏟아낸 것밖에 되지 않았을 거 같다.



1년 후에 시티에 외출할 일이 그 가게 지나가보니 역시나 문을 닫았다. 남편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그냥 먹자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옆에서 하도 투털거리며 맛이 없다고 하니 더 먹기 불편했다고. 그 집 음식 맛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더 음식 맛을 버리게 만드는 재주는 바로 상관 짓 덕분이다. 남에 대한 배려가 없는 상관의 어리석은 모습을 남편에게 수시로 보여준 셈이다. 




내 경우는 상관이 월간에 있다. 보통 월간에 상관이 있으면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관심과 불만이 많은 편이다.

조직과 사회 현상에 대해 부조리 한 점들이 너무 잘 보이고 그것을 개선하고 싶어 안달이다. 



20대 회사를 다닐 때 매주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이 정해져 있었다. 화요일은 PD수첩, 수요일은 시사매거진 2580, 토요일은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거의 매일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안 그래도 사회나 국가에 불만이 많은데, 이런 프로그램은 온갖 비리와 문제점들을 샅샅이 알려주니 더 불만이 폭발했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부조리를 발견하면 마구 흥분이 된다. 



이걸 그냥 나 혼자만 간직하면 되는데, 편재가 있어서 그런가 공유하고 싶고, 상관이 있어서 입을 가만히 두지를 못한다. 출근해서 회사에서 일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 먹고 휴식하는 시간에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어제 PD 수첩 봤어?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였는데."

"무슨 일인데요?"

한마디 거들어주는 개발자가 있으면 주둥이 로켓이 발사된다. 어제 봤던 시사 프로그램의 내용을 요약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알려준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썩었고, 이런 문제가 심각하고, 그런데 이런 걸 방치하고 있다고. 정치랑 사회가 다 문제야, 문제!



혼자서 핏대 세우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쉬는 시간 동안 나 혼자만 이야기를 떠들었다.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을 너무 싫어하는데, 그 꼰대가 바로 나였다. 짧지만 달콤한 쉬는 시간이 나의 일방적인 불만 토로로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때 정말 미안했다. 동료들아. 지금 하나하나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참자 참어.



내 딴에는 모두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우리가 발전한다,라는 뭔가 진보적인 의미에서 말했다. 하지만 나조차 말만 했지 딱히 생활에서 진보적인 것을 실천한 것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괜한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만 심어준 꼴이다. 너무 사회 부정적인 면만 부각한 것이다. 이면에는 좋은 점도 많을 텐데. 내가 흥분해서 말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어느 정도껏 사회에 관심 가지고 살아갈 텐데. 괜한 오지랖에 상관 짓 했다.




어찌 보면 내 팔자를 내가 꼰 면이 있다. 나의 10대 20대는 성추행과 성폭행으로 꽤나 도배된 인생이었다. 나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춘기 소녀나 성인 여성이라면 최소 한 번 이상 경험을 했을 것이다. 성폭행보다 더 심한 일들도 무수하게 일어났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지금도 어딘가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네 모르는 오빠가, 5학년 때는 초등학교 담임선생이 내 가슴을 덮치는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딱히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내가 좋아서 그런 거라는 둥 얼렁뚱땅 넘어가버렸다. 분명 그것은 잘못된 일이었지만 보호받거나 위로받지 못했다.



그 후로 성인이 되고 나서도 수많은 성추행 사건을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반항하지도 못하고 그저 방치하기만 했다. 그러자 내 안에 수치심과 분노가 쌓여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변 친구들에게 위로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 고충을 털어놓으면 그들이 나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토닥토닥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걸 기대했다. 어쩌면 이것도 상관의 기운이 작용한 거 같다.



'너의 잘못이 아니고 성추행 한 놈들이 나쁜 놈들이야, 이 사회가 남성 중심 문화라 그래. 여성들이 소외받아서 그런 거지. 또 성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그래. 너랑은 아무 상관없는 거야. 걱정하지 마! 넌 괜찮아.'

이런 말을 듣고 싶었다. 물론 이렇게 말해준 친구도 있었지만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성추행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고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이니까 무조건 위로만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성추행이나 성폭행당한 이야기를 애써 외면하려 하거나 불편하다는 기색을 드러낸 사람들이 좀 있었다. '아니 이건 뭐지?' 마치 자기들은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는 듯이 나만 이상하다는 듯이 몰아가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럴수록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겠다는 이상한 정의감에 더 목소리 높여서 나의 경험담과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쏟아내면서 하소연을 했다.



내 입장에서는 성추행이 이 사회에 너무 만연하게 퍼져있고 그걸 공론화하고 싶고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친구들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왜 가까운 사람들, 부모나 친구들에게 내 아픔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는가 억울함이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서 이렇게 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무말 없이 내가 너무 더럽고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끙끙 혼자 앓고 있는데, 눈치가 빠르고 마음이 따스한 친구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느냐 물어보는 것이다. 그때 난 이런저런 과거 성폭행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었다면? 만약 그랬더라면 대부분 날 이해해 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먼저 나서서 남자들이 문제라는 둥, 이 사회가 문제라는 둥, 나쁜 남자들은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는 둥, 너무 세게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으니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면이 컸던 거였다. 상관이라는 것이 내 주장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에게 반발심을 일으키는 부분이 생긴다.



주변 사람들도 알고 보면 자기들도 더 심한 성추행이나 성폭행 경험도 있었을 텐데, 나만 괴롭고 아프다는 식으로 입으로 나불거렸으니 그걸 큰마음으로 받아주기는 아마도 어려웠을 것 같다. 불쾌한 과거 일은 조용히 기억 너머로 지워야 하는데, 내가 자꾸 확성기처럼 옆에서 떠들어대니,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50살이 넘어가니 어렴풋이 그들에게 공감받지 못할 짓을, 내가 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내 고통에만 집중했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어두운 이야기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남의 아픔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던 모습이 바로 과거의 나였다.




상관이 긍정적으로 발휘되면 타인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런데 내 경우는 타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감정만 챙겨달라고 타인의 잘못만을 지적했으니 나의 어리석음으로 공감을 못 받았던 셈이었다. 위로받지 못하는 무덤을 스스로 팠다.



나는 왜 상관을 떠올리면 대부분 부정적인 에피소드만 나올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상관의 장점을 너무 못 살린 거 같다. 상관은 총명하고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논리와 이론으로 상대방을 잘 설득하는 언변의 황제이다.



상관 기질을 잘 활용하여 성공하고 유명하게 된 사람들은 너무 많다. 특히 연예인,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변호사, 작가, 예술가 등등. 그런데 상관 기질을 잘 살려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마도 일상생활은 상관의 부정적인 모습이 스며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은 잘 감추어져 있지 않을까 한번 의심해 본다. 상관의 의심병 도졌네. 이제 그만하고.



분명 나의 직장 생활을 들여다보면 상관 기질이 발동되어 주변인들 불편하게 만들었다. 상관은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기에 주변인들과 이미 불화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조직생활을 해왔고 거기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돈도 잘 벌면서.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상관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인 관료 조직이나, 상하 계층이 확실한 조직은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상관은 정관을 공격한다. 정관은 사회적 규범, 안정적인 제도, 보수적인 체제 이런 것에 순응하거나 복종하는 걸 의미한다. 상관은 이런 것을 거부해버린다. 조직에서 누군가 간섭하거나 구속하거나 억압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맞는 조직을 찾아가야 한다. 규율이 느슨한 소규모 조직,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조직, 중앙 권력과 동떨어진 조직 같은 곳에서 일을 해야 개인도 조직도 모두 편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내가 가진 재능으로 일을 하지만 조직의 터치를 덜 받는 분야였다. 조직 안에서 일을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칙 같은 것이 강하지 않았다. 프로그램 개발 일은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게 되고 성과 위주로 평가받는 곳이었다. 다행히 상관 기질의 부정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는 직업군이 바로 IT 개발자인 거였다.



난 대학교 원서를 넣기 전까지만 해도 어느 학과를 가야 할지 몰랐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과학자였다. 하늘의 별을 보고 자연의 비밀을 밝히는 천체 물리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과학자의 꿈을 이야기했다가 핀잔을 먹었다. 아마도 현실적으로 과학자를 할 정도의 명석한 머리는 아니었나 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원서를 넣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은 이곳을 졸업하면 취업이 잘 된다고, 요즘 인기있는 학과라고 전자계산학과를 추천해 주셨다. 전자계산학과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고 컴퓨터가 뭔지도 몰랐다. 안정적으로 합격할 만한 학교에 그냥 원서 써주는 대로 지원했다. 다행히 합격을 했고 처음으로 MS-DOS 운영체제가 설치된 개인용 컴퓨터 PC를 만져보았다. 그렇게 미래의 프로그래머 직업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식상에는 식신과 상관으로 나눠진다. 둘 다 자신을 표현하는 거지만 상관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상관의 적성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을 추구하는 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시대의 유행에 따라서 자신의 재능을 계발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주에 식신이 있다면 화가로 진로를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상관이 있다면 그래픽 디자인을 배워서 웹 디자이너, 영상 디자이너, 게임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브랜드 디자이너 같은 분야로 빠질 수 있다. 나 역시 상관이 있기에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IT 기술을 배워서 사회 진출하는 쪽으로 풀린 거 같다. 월간에 상관이 시간에 식신보다는 영향력이 더 강하다. 그래서 상관의 길로 20대 진로가 설정된 걸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상관 기질이 있다는 걸 선생님은 귀신같이 알았던 것인가? 너무 신기하다. 그냥 선생님 추천으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IT 개발자가 되어버렸다. 이건 뭐 운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담임 선생님은 나의 천을귀인이었다. 



타고난 사주에 상관이라는 부정적인 특성을 설사 가지고 있지만, 운은 상관에게 유리한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마 상관이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들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상관 기질로 성공한 사람 역시 운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타고난 성향이 잘 풀리도록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고 있다.



이 말 밖에는 따로 이유를 못 찾겠다. 타고난 사주팔자 기운대로 살아가도록 우주는 알아서 운을 보내주고 있으니 설사 부정적인 특성이 담겨있더라도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큰 줄기에서는 그것을 피해 가도록 우주가 인도하니까. 



뭐 사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우주가 나오고 운이 나오고 그래서 이상하긴 한데 알고 보면 전혀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 사주를 나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애를 쓰지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사주의 수수께끼가 풀리기 때문이다.




다음 편 예고


타인에 대한 시기심이 너무 많은 수니.

그 시기심으로 인해 타인들은 부자가 되었다고?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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