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월지에 겁재가 있으면 생기는 일
"자기 너무하는 거 아냐?"
"조금만 참어. 금방 끝나."
"허니문 왔는데 와이프는 신경 안 쓰고, 왜 남한테 신경 쓰는 거야?"
"내가 너한테 신경을 안 쓰긴 뭘 안 쓴다고 그래? 좀만 기다려봐."
"나 지금 너무 피곤해. 자기야, 적당히 좀 하자. 제발."
나와 남편은 시드니 슈퍼마켓 우러스에서 쇼핑 중이다. 100% 호주에서 생산된 꿀이 가득 담긴 꿀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코너 앞에 서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시드니로 일주일간 신혼여행을 왔다. 달달하고 러블리한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여행 중 성격차이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음, 아니다. 나의 일방적인 짜증 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즐거웠던 허니문 추억을 간직하고 내일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 날 일정은 아무래도 쇼핑을 할 수밖에 없다. 양가 부모님, 친척들, 친구들,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선물을 줘야 하니 당연하다. 그런데 선물 줄 대상을 선정하는 지점에서 나와 남편의 의견이 갈렸다. 결국 내 목소리는 짜증으로 63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시드니 허니문 마지막 밤은 열정을 불태우며 사랑으로 승화해야 하는데 이건 물 건너갔다.
빠듯한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마지막 날 오후부터 쇼핑을 시작했다. 먼저 각종 건강보조식품을 케미스트웨어하우스에 방문해서 구입했다. 양가 부모님들 선물로. 그리고 호주 기념품을 파는 곳에 가서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골랐다. 제일 마지막으로 회사 사람들에 줄 선물만 이제 고르면 된다.
그때가 벌써 저녁 8시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때까지도 남편은 무슨 선물을 회사 사람들에 나눠줘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는 거다. 뭘 골라야 할지 고민하느라 우리는 계속 슈퍼마켓 안을 돌아다녔다. 그는 표시된 가격표를 보고 계산기를 일일이 두들겨보고 있다.
"호주에서 유명한 초콜릿 과자 팀탐은 어때?"
"음, 과자는 좀 그래."
"단체로 주는 건데 초콜릿 같은 그냥 싼 거 아무거나 나눠주면 되지 않나?"
"너무 저렴한 선물을 주는 건, 안 주는 것과 같아. 너무 저렴한 걸 사면 안돼."
"대충 아무거나 사면되지. 뭘 그렇게 고민해?"
"받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야지."
"어차피 답례 선물이 뻔한 거 아냐?"
"예전에 우리 회사 한 직원이 시드니로 신혼여행 다녀왔거든. 근데 약간 허접해 보이는 아주 작은 코알라 인형을 기념품으로 사 왔어. 사무실에 쭉 뿌렸는데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이더라고. 이왕 줄 거면 좀 괜찮은 걸 줘야 할 거 같아."
"그럼 도대체 뭘 살 거야?"
"그래서 나도 고민인 거야."
"도대체 몇 명한테 줄 건데?"
"대략 25명 정도."
"엥, 그렇게나 많이?"
"팀장급 4명이랑, 지금 근무하는 팀원들, 이전 팀원들, 업무 협조로 가끔 만나는 다른 두 팀까지 합해서 숫자를 세어보니 대충 그럴 거 같아."
"너무 많은데, 그 사람들 모두 축의금 준거야?"
"대부분은 다들 축의금을 냈을 거야. 하지만 아마 몇몇은 축의금 안 냈을 거 같긴 해."
"아니 자기한테 축의금 낸 사람만 챙겨주면 되는 거 아냐? 굳이 다른 팀원까지 다 주려고 하는 거야?"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데 축의금 낸 사람만 따로 선물을 주면, 그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뭐가 되겠어. 겉으로 티는 안내도 속으로 기분 안 좋잖아."
"아니 돈 안 냈으니까 선물 못 받는 거야 당연하지."
"그렇게 차별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기브 앤 테이크 몰라? 챙겨준 사람은 챙겨주는 거고 아닌 사람은 안 챙겨주는 게 맞는 거지. 자기한테 돈도 안 줬는데 왜 그런 사람한테까지 신경 써주는 거야."
"개별적으로 축의금 안 줬어도 팀 전체에서 걷었을 수도 있고 내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잖아. 그리고 선물값이 얼마 되지 않는데 그걸로 사람 사이 차등을 두고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수니야 마음을 좀 넓게 가져봐."
그 당시 내 소신은 서로 깔끔하게 안 받고 안 주기에 꽂혀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지만 내 직장 사람한테는 결혼 답례 선물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그 당시 어느 은행 전산팀에 개발 및 운영자로 파견 근무 중이었다. 은행 정직원 사람들과 나는 엄연히 다른 계층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별 소통 없이 지냈다. 그냥 내가 맡은 업무에만 충실하면서 출퇴근하는 중이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니 그 사람들에게 결혼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신경 쓸 일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팀장님, 저 결혼하게 되어 1주일 신혼여행 휴가 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팀장한테만 간단하게 보고를 했다.
그런데 휴가 전날 팀장이 불러서 결혼 축하한다고 흰 봉투를 하나 건네주신다. 열어보니 십오만이 들어있었다. 내 의도는 그냥 조용히 결혼하고 신혼여행 몰래 다녀오는 거였는데 조금 미안하면서 내심 고마웠다. 그런데 그냥 고맙다고만 생각했지 선물을 사 와서 챙겨줄 생각도 안 했다. 간단하게 음료수를 돌리거나 밥 살 생각도 전혀 안 했다. 그냥 나는 이상한 내 소신대로 안 주고 안 받기를 실천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이상하게 행동한 거 같은데 그땐 진짜 그랬다. 남들이 봤을 때 축의금은 받았지만 그냥 입을 싹 씻어버린 그런 싸가지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들의 선물을 챙기지 않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나름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한다고 티를 낸 것은 아니었기에. 결정적으로 그들은 은행 정직원이고, 난 월급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파견 근로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보다 덜 혜택을 받고 있으니 축의금을 받아 챙기는 것은 오히려 부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괴팍한 정의 마인드를 소유한 내 입장에서 남편의 평등주의 사상은 너무 납득이 안된다. 아니 왜 똑같이 대접해 주려고 하지? 자기가 무슨 성군인가?
어쨌든 긴 시간 고민 끝에 그는 350g짜리 꿀 25개를 사기로 결정했다. 어떤 선물을 몇몇에게 줄 것인가, 이걸 고민하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린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상품 선반에 원하는 숫자만큼의 꿀 재고가 없다는 거다. 25개를 사야 하는데 10개밖에 구할 수 없었다.
"직원한테 물어보니 재고가 더 없다는데. 그냥 10명만 주면 안 될까?"
"그러면 곤란하지. 좀 귀찮겠지만 다른 슈퍼마켓을 가보자."
"지금 밤 9시가 넘었어. 그리고 다른 곳을 간다 해도 재고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잖아. 만약 또 없으면 또 다른 데까지 가야 하는 거야?"
"그래도 한번 가보자. 한번 근처에 다른 슈퍼마켓은 있는지 한번 알아봐."
"너무 피곤한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미안한데 한번 다른데 같이 가보자."
"어우, 정말 못 말려."
어찌어찌 다른 슈퍼마켓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이곳에는 꿀 재고가 넉넉하게 있었다. 결국 남편이 원하는 만큼 총 25개 꿀을 구입할 수 있었다. 잔소리를 참아가며 아내를 설득하여 그가 추구하는 평등을 현실에 구현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골고루 회사 직원들에게 호주산 꿀 선물을 나눠주었다.
"비행기 타고 물 건너온 청정 호주 자연산 꿀을 선물로 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선물 받은 사람들은 다들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편에게 전했단다.
남편은 내가 보기엔 좀 피곤할 정도로 평등주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거 같다. 아마도 이건 월지 겁재 특성 같다. 반면 나처럼 일지 겁재는 내 것과 남의 것을 똑같이 나눠서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즉, 내가 기준이 된다. 내가 0개 있는데 옆에 사람이 10개 있다면 5개를 뺏어서 나도 5개 상대방도 5개로 만든다. 너와 내가 골고루 가지는 것에 집착한다.
반면 월지 겁재는 남들의 것을 똑같이 나눠서 밸런스를 맞추려고 한다. 누가 10이 있으면 뺏어서 5가 있는 사람에게 준다. 약간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느낌적인 느낌. 그래서 겁재는 뺏을 수도 뺏길 수도 있다. 본인이 추구하는 마인드는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 같은. 그러니 내 것을 주는 것도 당연하다. 월지 겁재는 타인들 간에 물질적 밸런스를 추구하고 일지 겁재는 나와 타인 간의 물질적 밸런스를 추구한다.
남편의 평등주의 사상 실천은 신혼여행 때 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상이 그러하다. 에뉴얼리브 휴가를 받아서 1주일간 둘이 그레이트 오션 로드 자동차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회사 사람들에게 여행 다녀온 기념으로 간단하게 빵과 음료수를 돌리기로 했다.
내 생각에는 남편이 소속된 팀만 나눠줘도 충분한 거 같은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같이 직접적으로 일하지는 않지만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는 다른 세 군데 팀에도 나눠주려 했다. 빵과 음료수 가격도 너무 저렴하지 않은 품질이 적당한 선에서 나름 심사숙고하여 결정했다.
이때에도 총 20개 같은 빵과 음료수를 사야 하는데 처음 간 슈퍼마켓에서 재고가 부족해서 다른 슈퍼마켓으로 가서 더 구입해야 했다. 그의 평등주의 사상 덕분에 내 시간과 노동력이 뺏겼다. 또 미래의 내 재산이 될지 모를 소중한 돈도 뺏겼다.
선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때에만 그의 평등주의 사상이 발동되는 게 아니다. 어느 날 남편 팀원 중 한 명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일이 늘어나서 추가 근무를 하게 되었다. 주 5일 근무를 하다가 주 6일 근무를 두 달 정도 계속했다. 그러자 팀장이 고생한다고 50불짜리 기프트카드를 주었다. 나 같으면 공짜로 50불 선물을 받았으니 좋아할 일인데 남편 표정은 심드렁하다.
"자기가 성실하게 일한다고 보너스 받았는데 기분 안 좋아?"
"뭐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야."
"왜 좋은 게 아닌 거지?"
"보너스를 나랑 A 팀원만 받으니 불편하지. 다른 B 직원도 있는데."
"B 직원은 자기는 추가 근무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주 5일만 일했다면서"
"그건 그래. 그래도 차별하는 거잖아."
"성과가 다르니까 받는 사람과 안 받는 사람이 나뉘는 거지. 그게 당연한 거 아냐?"
"그건 아니지. 보너스 받은 사람은 추가 근무 수당 받잖아. B 직원이 일 열심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차별하는 건 별로 좋지 않아. 그냥 내가 받으면서도 내심 계속 불편하더라고."
"그럼 만약 자기한테만 보너스 50불 안 주고 다른 사람들한테만 줬다면?"
"그것도 마음 안 편하지."
"그럼 어떻게 하면 자기 마음 편할 수 있는데?"
"다 같이 보너스 주던가, 아니면 다 안 주던가. 그러면 괜찮을 거 같은데."
"이거 뭐 사회주의 마인드 같은데."
"다 같이 똑같이 보너스 받으면 좋잖아."
"와, 신기하다. 나는 나만 챙기면 더 기분 좋을 거 같은데, 역시 자기랑 나랑은 마인드가 달라. 너무 달라."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를 보면 아침 6시부터 나와 일한 일꾼, 아침 9시부터 일한 일꾼, 오후 12시부터 일한 일꾼, 오후 3시에 나와 일한 일꾼 이렇게 있었다. 심지어 일이 거의 끝날 즈음에 와서 일한 일꾼도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똑같이 임금을 주었다.
주인은 왜 임금을 똑같이 주었을까?
월지 겁재와 같은 평등 사회주의 마인드를 가진 주인은 아니었을까?
다음 편 예고
혹시 알고 있나요?
사주에 이 글자가 있으면
전혀 예고하지 못했던 시련이나
불편하고 성가신 일들이 불쑥 생긴다는 거.
수니의 멘탈이 털린 사건을 통해
그 글자가 뭔지 알아볼게요.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