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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언니 수니 Dec 07. 2024

불가항력 만나 털리는 멘탈 (편관)

사주에 편관이 있으면 생기는 일

"너 나한테 하대했잖아!"

"갑지가 뭔 소리예요? 아니에요."

"너 몇 살이야,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려 보이는데 왜 반말이지?"

"무슨 소리예요? 아니에요."

"네가 나를 업신여겼잖아."

"아니 제가 왜 그래요? 아니에요."

"넌 기본 예의도 없고 수준 떨어지는 사람이라 나 같은 사람은 막 무시하고 그런가 보지."

"아니에요. 도대체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하다니 정말 억울하고 미칠 노릇이다. 남들이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나는 대역 죄인이고 상대방은 그런 나를 단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건넨 말은 단 한 마디 '안녕하세요.' 이것뿐이었다. 그 당시 내 기분은 한마디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우렛소리 이었다.



한 달 동안 나의 멘탈을 정말 와장창 부숴버렸던 사건의 시작은 이러했다. 이민 초창기 우리는 하우스 마스터룸 쉐어로 살고 있을 때였다. 작은 살림이지만 알뜰살뜰하게 꾸려가고 있었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고속 충전기와 케이블로 스마트폰을 충전하면 빨리 충전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내 거 하나 남편 거 하나 이렇게 두 개를 구입해서 충전할 생각이었다. 막상 구입해서 실제로 사용해 보니 고속 충전기 한 개로 두 개의 스마트폰을 번갈아 가면서 이용해도 별 불편함이 없었다. 그래서 잘 사용하지 않는 나머지 한 개는 교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벼룩시장에 중고로 10불에 팔기로 했다. 뭐 푼돈이나 다름없지만 알뜰한 나에게는 10불은 큰돈이다. 게다가 그 당시 남편 혼자 최저시급으로 일하고 있을 때라 절약은 최고의 미덕이었다.



네이버 카페 호주 벼룩시장에 고속 충전기를 판다는 광고를 올렸다. 몇 시간 지나서 중고물품 구입 의사 문자가 도착했다. 상대방은 저녁 8시에 픽업 가능하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중고물품 구입을 원하는 사람이 집 근처에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다. 물건을 전해주려 집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도로 길가에 주차를 했다. 운전석에서 문을 열고 나와 나에게 다가왔다. 저녁이라 어두웠지만 상대적으로 밝은 가로등 근처에서 우리는 접선했다. 



노란 전등 불빛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니 음, 낯이 익다. 어디서 봤지? 어디서 본 사람인데 기억이 안 난다. 그녀에게 고속 충전기와 케이블을 전해줬고 10불을 받았다. 돈을 받으면서 그녀가 누군지 그제야 생각이 떠올랐다. '아... 거기서 만난 사람이었구나.' 나는 반가운 마음과 순진한 성격 탓에 그냥 "안녕하세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약간 움찔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돌아서 차가 주차한 곳으로 걸어갔다. 나는 돈을 벌어 뿌듯한 기분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자기야 시드니 한인 사회가 좁긴 좁은 거 같아."

"왜, 갑자기."

"아까 고속 충전기 중고로 가져간 사람 알고 보니 아는 사람이더라고."

"누구?"

"전에 그 지인 집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사람, 기억 안 나?"

"나야 모르지."

"아 맞다, 자기는 본 적 없지. 내가 여기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여하튼 시드니는 좁아 좁아."

"그걸 이제 알았어? 그래서 내가 항상 말조심하라는 거야."

이런 대화를 나눌 때만 해도 느긋한 저녁시간이 그렇게 산산조각 날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중고 물건을 거래하기 1년 전 그녀를 아는 동생 집에서 처음 만났다. 아는 동생은 출산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힘들고 갓난아기도 돌봐야 하니 집안일을 거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청소도 해주고 반찬도 만들어주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했다. 몸이 회복하는 동안 잠깐 한두 달 정도 도움을 받을 요령이었다. 몸조리하는 동생 집에 방문했을 때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고 있는 가사도우미를 만났다. 우리는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동생은 나에게 그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상세하게 알려줬다. 그녀는 한국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강사였는데 아이들 조기유학을 위해서 시드니로 왔고 여기서 테입을 다니면서 공부까지 하는 열성적인 엄마라고, 그런데 여기 생활비가 워낙 비싸서 알바로 가사도우미를 잠깐 하고 있다고 소개해 줬다. 사람 말을 그대로 믿는 나는, 잘 나가는 사람이 아이들 때문에 돈을 벌려고 어쩔 수 없이 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내가 방문한 시간이 점심시간 때라 우리 아줌마들은 점심을 간단하게 먹으면서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그날이 그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이었다.



그 후로 그녀에 대한 존재를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는데... 

중고 물건 거래로 그녀가 갑자기 내 삶에 등장했다.

너무나도 강렬하게.

내 멘탈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갑자기 핸드폰에 전화벨이 울린다. 중고 물건을 거래한 지 한 5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혀있다. '누구지?' 일단 전화를 받았다. 방금 고속 충전기를 사간 사람 목소리이다. 전화기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화내는 목소리로 나를 호통을 치는 거 아닌가? 자기를 하대를 했다는 둥,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데 사람 무시했다는 둥, 예의가 없다는 둥, 그렇게 살지 말라는 둥, 막 그런 이야기를 쏟아내는 거 아닌가.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온다.



나도 참 멍청하긴 멍청하다. 그냥 뻥쪄서 그 독설을 다 듣고만 있었다니. 갑자기 무방비로 당하니 어쩌하지도 못하고 그냥 넋이 나가버렸다. 멍하니 그녀가 말하는 온갖 감정 쓰레기를 받아줘야 했다. 한 15분을 그렇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하나 없는데 봉변을 당한 것이다. 난 그냥 반가워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게 전부인데 그 사람에게 오히려 오해하지 마시라, 변명을 하고 있다니. 참 황당하고 억울하고 기가 찬다.



"네가 날 자꾸 깔봤잖아."

"아니 제가 언제 그랬어요?"

"나를 깔보고 하대하면서 무시했잖아. 그렇게 살지 마라.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 알았어?"

"네?"


"사람이 예의가 있어야지, 나이도 어린년이 어디 어른한테 함부로 무시를 하고 아주 미쳤어! 너 같이 사람이 함부로 하대할 그런 사람이 아냐. 너 사람 한참 잘못 봤어."

멍.... 뇌가 가출해 버렸다.


"내가 지금 시드니 사니까 무시하는데, 나 한국에서 잘 나가는 동네 강남에서 살았던 사람이야. 너 같은 것이 무시할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멍.... 가출한 뇌는 집을 헤매고 있다.


"남편도 사업하고 돈도 잘 버는데 왜 내가 너 같은 수준 떨어지는 년한테 하대를 당해야 하는 건데. 너 같은 것은 나랑 수준 비교조차 안 되는 데, 여기 시드니에 산다고 어디서 거만을 떨어."

멍.... 길거리를 헤매는 가출한 뇌.


"나한테 하대한 거 사과해."

"아니 저는 하대 안 했어요."

"와, 인정도 안 하네, 거짓말만 계속하네."

"아니 안 했으니깐 안 했다는 거죠."

"네가 아주 정신을 덜 차렸구나. 그래서 너 같은 년은 제대로 교육을 받아야 해."

멍.... 뇌기능 미작동으로 무응대.



그녀의 일방적인 화를 들어주면서 내 영혼은 가출해 버렸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를 훈계하는 흉측하고 괴상한 말들. 전화를 끊고 나니 정말 에너지가 싹 다 빠져버렸다.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버렸다. 그때 내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면 '젖은 낙엽'이 딱 정확하다. 사실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주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을 들어서 그런가 뇌가 강제로 머릿속 지우개로 그걸 지워버렸다. 내 정신이 그것을 버티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그때의 엄청난 충격이 뇌리에 심으로 박혀버렸다.




문제는 두 번째 화살을 맞았다는 거다.



"무슨 일이야? 누가 전화한 건데 그렇게 쩔쩔매는 거야?"

전화를 끊고 남편이 나한테 물어본다.

정신이 완전히 나간 상태에서 남편한테 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까 중고 물건 사간 사람이야."

"뭐라고 하는데?"

"내가 자기한테 하대했다고 막 화내고 난리를 치는데. 자기를 무시했다고. 막말을 마구 쏟아내는데, 난 아니라고 했는데 뭐 막무가내야. 그냥 내가 완전 당한 거지."

"그 사람이 왜 그러는 거야?"

"나도 모르지. 나는 그 사람한테 그냥 안녕하세요,라고 이야기한 거밖에 없어."

"아니, 네가 분명 무슨 오해할 말을 한 거 아니냐? 안 그러면 그 사람이 그렇게 화를 낼 이유가 없겠지."

"뭐. 라. 고?!"



난 억울하게 이상한 여자한테 봉변을 당했는데, 그 원인이 내가 오해할 만한 말을 해서 그런 거라고! 와, 남편이 나한테 이 말을 하는데 몸에 달구어져 있던 화가 순간 용솟음쳤다. 내 머리에 뚜껑이 와장창 부수고 터져 나왔다.

"아......... 아니라고 난 아무 잘못한 게 없어."

그 순간 내 눈빛은 살기로 변했고 목소리를 찢어졌고 손에서 주먹이 뻗어나갔다. 마스터룸에 있던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취미로 그렸던 그림이 담긴 액자였다. 물건을 부수어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옆에서 화난 나를 말리는 남편, 그가 더 밉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남편, 그는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다. 남편 목덜미를 쥐고 울부짖었다.

"난 억울하다고. 안녕하세요 그 말 밖에 안 했다고. 억울해. 나를 믿어줘야 할 자기가 나를 안 믿어주잖아. 결국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거잖아. 내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아무도 내 편이 없잖아. 너무 억울하다고."



전화 녹음을 하지도 않았으니 증거도 없고 설사 녹음을 했다 하더라도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그 미친년이 화를 낸 이유를 알 수가 없을 텐데. 나를 가장 이해해 줘야 할 남편조차 믿을 수 없는 그런 황당무계한 일인데 누가 믿어주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나는 너무나도 결백한데 그 결백을 증명할 길도 없고, 증명한다고 한들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달래줄 수도 없다. 더 억울함을 가중시킨 것은 이상한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는데, 나를 믿어줘야 할 남편이 내 말을 안 믿고 나를 의심했다는 거다. 거기서 내 분노가 터졌다. 평소에 남편이 내가 말을 조금 함부로 한다고 지적하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믿어주지 않고 의심을 많이 하긴 했다. 그래서 그동안 쌓인 서운함까지 모든 것이 한 번에 폭발한 것이다.



더 문제는 세 번째 화살을 맞았다는 거다. 



그 사건 이후로 한 달 동안 얼이 빠져버렸다. 그 사건이 자꾸 생각나고 너무 억울하고 남편이 싫었다. 무방비로 당한 게 너무 짜증 났다. 그 미친년한테 방어하나 제대로 못하고 그냥 당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이렇게 나만 당하는 건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똑같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 여자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런 잘못 없이 내가 당한 것은 너무나도 과하다. 어처구니없다는 정도로는 표현이 너무 약하다. 실상 복수할 배포도 하나 없으면서, 속으로 복수하고 싶다는 상상으로 가득 찼다. 하도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심지어 내가 정말 혹시 이상한 말을 했구나 싶은 망상까지 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사람이 아닌 시체처럼 살았다. 그 사건을 곱씹으면서 그 생각에 집착하면서 나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남편이랑 다시 이야기해 보니 남편의 의도는 그런 것은 아니었단다. 

"자기도 그때 나 의심했잖아. 내가 잘못했다고. 욕먹을 빌미를 준거라고."

"나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라, 그냥 확인 차원에서 혹시 네가 무슨 말 한 거 아니냐고 물어본 거야. 그런데 네가 혼자서 열폭했잖아."

남편은 내 말을 믿었지만 평소에 말조심을 잘하지 않는 아내가 혹시나 말실수를 했을까 염려돼서 물어봤다고 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내 안에 가득했던 억울한 마음을 폭발시켰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지금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마음이 풀어졌지만. 사주 편관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사주에선 편관은 무시무시한 존재로 그려진다. 편관은 예고되지 않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시련, 불편함, 난관, 천재지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사주에 편관이 있는 사람은 어느 순간 안 좋은 일이 생겨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관이 없는 사람은 겪지 않을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힘겨운 사건 사고가 계속 일어난다. 



정말 그렇다. 내 사주에 편관이 있다. 그것도 위치가 년월일시 중에 마지막 시에 있다. 시는 보통 미래로 해석하는데 미래에 이런 느닷없는 시련이 불쑥 찾아온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타고난 팔자소관으로 이런 억울한 일이 생긴 것이다. 남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믿지를 못할 거 같은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실제 경험한 나 조차도 믿기 어려운 그런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누구에게 이해받기가 쉽지가 않다.



편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안 일어나기 때문이다. 시련은 알고 당해도 힘든데 그냥 생뚱맞게 앞뒤 자르고 갑자기 생겨버리는 게 편관이다. 아주 황당무계한 일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벌어지는 속수무책 사건들이 편관이다.



살다 보면 이상하고 황당한 안 좋은 일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편관은 그것에 너무 의미부여를 하고 해석하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성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오히려 그걸 혼자 붙잡고 있는 것이 편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냥 잊어버리기엔 너무 강렬한 흔적을 남겨주는 게 편관 아닌가 싶다.



여하튼 나중에 몇 달이 지난 후 겨우 멘탈을 다시 붙잡았다. 그 사건에 대해 자체 결론도 내렸다. 그 가사도우미는 과대망상 환자인 걸로.



다음 편 예고


사주에 인성이 없으면 

무인성 사주이랍니다.

수니는 무인성 사주인데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한번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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