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 무인성이 있으면 생기는 일
무인성을 처음 알았을 때
내가 무인성 사주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말해 충격이었다. "무인성"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넣는 순간, 마치 내 삶이 실패할 운명인 것처럼 들리는 설명들이 쏟아졌다.
"공부를 못한다."
"인간관계에 눈치가 없다."
"자기 권리를 못 챙긴다."
"자기주장을 하지 못한다."
"머리 쓰는 걸 싫어한다."
"엄마 사랑을 못 받는다."
"복잡한 걸 싫어한다."
"인덕이 없다."
"생각이 짧다."
리스트는 끝날 줄 몰랐다. 읽으면 읽을수록, 무인성이 마치 인생의 실패를 예언하는 낙인이 된 것 같았다. "진짜 이게 다 나라고?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지?" 하고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주에서 무인성은 말 그대로 '인성이 없다'는 뜻이다. 인성이라는 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능력, 정신적인 교감과 이해를 뜻한다. 그런데 '없다'라는 말은, 마치 누군가 내 관계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처럼 들렸다. 처음엔 정말 절망적이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눈치가 없다는 평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책 읽는 건 싫어하고,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타인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은 정말 바닥이다.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는 가끔 이렇게 농담을 던진다.
"너는 뇌에 주름이 없어."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있으면, 그가 웃으며 첨언한다. "그냥, 너무 단순하다는 뜻이야."
웃어넘기긴 하지만, 정말이지 그 말은 나를 무인성이라는 단어로 다시 끌어들이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다.
농담을 오해하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이다. 그는 15년 된 낡은 중고차를 몰고 다녔다. 어느 날,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벤츠 새 차 뽑아줄 거지?"
다림질로 뇌주름이 잘 다려진 나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사람이 진심으로 내가 벤츠를 사줄 줄 아는 건가? 아니면 돈 보고 나를 만나는 건가?"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남자친구의 허세인가? 아니면 은근히 여자에게 의지하려는 건가?
웃긴 건, 그때의 나는 통장에 몇 푼 없는 처지였다. 빈 주머니로 벤츠를 걱정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진실은 간단했다.
그는 그저 낡은 차가 민망해서 농담을 한 것뿐이었다. 그는 한 번도 새 차를 뽑아본 적이 없었고, 지금도 13년 된 중고차를 몰고 다닌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비현실적인 걱정에 빠져 있었다.
이 일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왜 이렇게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까? 왜 속마음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을까?
무인성은 상대방의 의도를 읽지 못하는 능력 부족에서 출발한다는 사실. 남편의 농담 하나가 내 무인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었다.
직장에서 무시를 당하다
회사 사원 시절, 출근길 지하철 입구에서 우리 팀 대리를 만나 회사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다른 팀 대리가 우리를 보고 합류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 그는 "뭐 이런 일도 몰라요?"라며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말을 툭 던졌다. 하지만 그의 속셈을 알아챌 리 없는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응답했다. 그러고는 그는 우리를 앞질러 걸어갔다.
그런데 옆에 걷던 팀 대리가 갑자기 한마디 했다.
"수니 씨, 방금 들은 말 기분 안 나빠요? 대놓고 무시한 건데 왜 그냥 웃고 넘기세요?"
그의 말이 내 머릿속에 망치처럼 내려쳤다.
"아, 그 사람이 날 무시한 거였구나."
이제야 그 비아냥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뒤늦게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왜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을까?'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정작 화를 내야 할 순간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억울함과 분노가 밀려왔다. 늦게 억울함을 곱씹으며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무인성은 이렇게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다.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 담긴 의도는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 뒤늦게야 '왜 그 순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까?'라는 자책감이 뼈저리게 밀려오는 것이다.
한국 현실에 대한 대화
남편은 가끔 한국 사회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다. 경제 문제, 교육 문제, 정치인들의 무책임까지 그의 이야기는 날카롭고 비판적이다. 어느 날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국은 정말 답이 없는 것 같아. 이렇게 가다간 진짜 큰일 날 거야."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바로 반문했다.
"그럼 당신은 한국을 위해서 뭘 한 게 있는데? 당신이 뭘 행동으로 바꾸기라도 했어?"
그 순간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뭘 꼭 내가 해야 돼? 그냥 말도 못하냐?"
나는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렇게 화를 내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남편은 단지 자신의 답답함을 나누고 싶었던 거였다. 그의 한숨과 높은 목소리엔 무력감이 배어 있었다. 그는 공감을 원했는데,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엉뚱하게 지적질한 것이다.
무인성은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단순하게 해석한다. 상대방의 말 뒤에 숨겨진 감정이나 의도를 읽어내지 못한다. 남편은 내게 "이해와 위로"를 원했지만, 나는 그의 고민을 "논리적 반문"으로 돌려줬다. 그러니 남편이 답답해할 수밖에 없었다.
무인성이란, 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위한 가능성이다
무인성 사주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말과 행동 뒤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는 데 서툴다. 보이지 않는 면을 간과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다가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무인성의 '없음'은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초대장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처럼, 개념으로 고정된 '나'는 없을지 몰라도, 나는 우주와 연결된 존재다. 이 연결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내 한계를 넘어 무한한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무인성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주는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그 이름 아래, 나를 더 이해하고 탐구하여,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넓은 세상과 연결될 것이다.
다음 편 예고
책하고 인연 없었던
무인성 사주 수니의
학창 시절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다음 연재 글에서 만나요.
독자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특히 편집자 여러분 눈길 좀 주세요.
편집자님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까지 고고씽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