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지유 Mar 29. 2023

물 만난 고기, 파리에 가다

드디어 내게 맞는 옷을 찾았을 때의 그 기분이란!

이전 글에서 필자가 굉장히 촉박한 시간 내에 다닐 학교, 살 집을 전부 구할 수 있었다고 쓴 바 있다.


당시에는 실연당한 사람마냥 졸전 실패에 정신 못차리면서 떠밀리는 대로 꾸역꾸역 다녀서 어떻게든 일처리를 했다.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난 탓에 그 당시의 기억도 다소 가물가물하다. 실제 브런치를 하면서 나이 앞자리수가 바뀌었다. 얼마나 열심히 안 했으면 (퍽)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신의 개입이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종교가 없지만, 이 때만큼은 몇년어치의 운을 부어다 쓴 것처럼 모든 것이 타이밍 좋게 잘 맞아떨어져줬다. 물론 거기에는 수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해서 힘겹게 상경한 파리. 여름방학 기간에 놀러온 가족들의 도움으로 이사를 마친 뒤, 새로이 편입한 학교를 슬쩍 들렀다. 여러 군데 지원했지만 결국 플랜 C까지 넘어온 사립 학교. 미술사도 아닌, 미술시장/경영학교였다. 파리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던 학교는 캠퍼스는커녕 건물 한채도 아닌, 건물 1층과 지하에만 임대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립대도 그렇고, 프랑스의 학교들은 시내/시외에 여러 건물 (캠퍼스라고 일단 부르기는 한다)의 형태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게 보통이라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20분 내외라는 사실이 마냥 기뻤다.


대망의 개강일. 신기하게도 내가 둘러본 건물이 아닌 다른 동네에 위치한 건물로 호출을 받았다. 알고 보니 외국인 편입생 (학사, 석사 불문)들을 위해 특별 강의가 2주간 있어서 이걸 먼저 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 특별 강의에는 미술사, 영어, 불어 강의가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느낀 건 상당히 익숙한 검은 머리 군단. 이 특별 강의에 등록된 학생 약 40명 중 30명이 중국인이었으며, 5명 정도 한국인이 있었고 나머지는 일본인, 남미 등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아무래도 당시 학교가 중국의 어느 대학과 파트너십을 맺어 프랑스로 편입시켜준 학생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개중에서도 딱 봐도 한국인인 몇명이 보여서, 한국인들끼리는 바로 그 날 점심을 같이 먹었었다. 기억하기로는 나와 동갑내기가 한명, 그리고 대부분이 언니들이었다. 참, 이 학생들의 성비율은 따질 것도 없이 전원 여학생이었다.


학교 측에 문의해서 영어와 불어 강의에서 제외된 나는 미술사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진짜' 강의 전에 티저 느낌으로 듣는 벼락치기 식 강의였지만 미술사의 기본도 잘 몰랐던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어가 유창하지 못한 외국인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강의이다 보니, 언어 문제가 없는 입장으로서는 그냥 최고의 워밍업이었다. 무엇보다 그 때 교수님께서 너무 훌륭하신 분이라 재미있게 수강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프랑스 왕실의 역사와 겹치는 부분이 나오면 눈이 반짝였다. 어렸을 때 역사 만화책을 읽으면서 재밌어하던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본격적으로 메인 캠퍼스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나보다 2-3살 어린 프랑스인 학생들이었고, 다같이 손 잡고 졸업한 고등학생들 같았달까? (편입생으로 들어갔으니 당연할 수도) 백인 투성이인 무리에 몇 안 되는 동양인으로서 섞이는 건 늘 어색하고 조금은 불편하다. 그래서일까, 가장 먼저 친해진 건 같은 학년에 다니는 한국인 언니와, 중국인 동기들 둘이었다. 사실 친구 사귀는 것보다, 당장 나인 투 식스까지 이어지는 줄강의가 더 급했다.

미술사1, 미술사2, 미술사3, 전공강의(회화/오브제로 전공이 나뉘었다), 판화, 사진, 미술보험/운송, 현장강의 (일명 "TD"), 등등...그림만 그리던 시절 상상도 못했던 미술업계의 또 다른 시점이 열렸다. 또 하나 재밌는 거라면, 동기들 중 아무도 미대 출신이 없었기 때문에 회화와 판화 등의 설명을 들을 때 다들 멀뚱멀뚱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림 하나가 마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판화 한장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도가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 내가 갖고 있던 갈증을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내게 맞는 옷을 드디어 찾았다.


나는 그렇게 새 도시에서 완전히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없는 생활력도 깨워주는 유학생활 적응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