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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Jun 27. 2023

알잘딱깔센은 만국 공통

격동의 파리 인턴 모험기 2

이전 글에서 10일간의 짧은 아트페어 인턴십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데스크 부스에 배치됐던 나는 쉬는 시간마다 회장을 돌아다니면서 작품 구경을 했는데, 유독 한 갤러리의 작품들이 참 신기해서 매번 한참을 쳐다보곤 했다. 벽과 천정, 바닥 할 것 없이 온 데를 가득 메운 작품들 사이 그 부스의 작품들은 유독 독특했다. 그림은 한점도 없고, 언뜻 보기엔 복잡한 기계장치와 소리들로 가득했다. 알고 보니 디지털 아트만 취급하는 갤러리였다.

파리처럼 보수적인 도시에서 디지털 아트를 전문으로 다루는 갤러리라고? 흥미가 생긴 나는 부스에 앉아 있던 갤러리 직원과 오너와 말을 텄고, 그들이 조만간 인턴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 인턴을 찾고 있던 나는 곧장 그들에게 명함을 받고 다음날 이력서를 보냈다.


그렇게, 처음으로 갤러리에서의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갤러리 공간. 1층과 지하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선 갤러리의 구조부터 설명해보자면, 새하얗고 깔끔한 1층과 동굴을 연상시키는 지하로 이루어져 있었다. 프랑스의 오래된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지하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꼭 동굴 셀러같았다. 넓지는 않았지만 전시 공간으로서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1층에는 직원이 일할 수 있고 고객이 오면 앉아서 미팅을 할 수도 있는 책상이 있었고, 지하에는 작은 탕비실 겸 창고 겸 사무실이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라고 문이 아니라 벽 뒤에(?) 숨겨져 있는 것도 재밌었다.


직원은 딱 오너와 메인 어시스턴트, 그리고 인턴인 나 이렇게 3명이었다. 오너는 주로 미팅이나 외부 일정이 있어 갤러리에는 잘 없었고, 어시스턴트와 나는 번갈아가며 1층과 지하에서 일했다. 1층에서 일하면 꼼짝없이 손님 응대와 전화응대를 해야 했고, 지하에 있으면 전파가 안 터지는 바람에 일만 해야 했다. 덕분에 어시스턴트가 지하에서 일을 할 때면, 통화할 때마다 1층으로 올라오는 게 참 웃겼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에서 일해보신 분들은 다 아실 고충이다.

갤러리 리셉션 데스크는 손님 뷰와 직원 뷰가 매우 다르다.

인턴에게 주어진 업무는 다음과 같았다. 갤러리 방문객들 응대, 전화/이메일 응대, 어시스턴트 업무 보조, 전시회 설치와 해체 보조, 작품 관리 등등이 있었다. 여기에 추가로 한국인이라는 점을 백번 살려서, 갤러리와 협업할 만한 갤러리/미술관을 조사하고 연락을 돌리는 것도 포함되었다. 중소 갤러리인데다가 직원이 딱 둘이니, 업무량은 꽤 되었지만 과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때까지도 소심이였던 나는 이메일 응대나 기본적인 업무는 열심히 배웠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여전히 무서웠고 서툴렀다.


그러나 fake it till you make it, 될 때까지 된 척을 하라고 하지 않는가. 작은 갤러리인데다 골목에 위치해 있으니, 구경하러 들어오는 고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문을 열고 작품 구경을 하고 있으면, 그 전에 아트페어 인턴에서 본 직원들의 태도와 매너리즘 등을 조금씩 따라하는 식으로 응대했다. 손님이 들어오면 우선 인사, 작품을 구경하고 있으면 조금 지켜보다가 다가가서 작품을 간단하게 설명, 손님이 흥미를 보이면 작가와 전시회에 대해서 설명. 그리고 갤러리에 대한 부연 설명. 특히나 이 갤러리의 작품들은 설명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디지털 아트 작품이 많았고 기계와 전자 장치를 사용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작동법이나 원리 등을 설명하면 작품을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인턴 생활 중 갤러리에서 전시했던 작품들. 재밌는 작품이 참 많았다.

예를 들어 위 사진들 중, 화분과 식물 그림이 그려진 영상 작품은 내가 일하면서 가장 신기해했던 작품 중 하나였다. 아티스트 듀오 Christa Sommerer (크리스타 소머러), Laurent Mignonneau (로랑 미뇨노)의 작품이었는데, 화분의 잎사귀들을 건드리면 건드리는 대로 벽에 띄워진 영상에 식물 잎사귀가 나타지는 재밌는 작품이었다. 원리인즉슨, 화분의 흙 속에 센서가 있어서 사람이 건드릴 때마다 그림이 생성되는 프로그램을 고안해서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설명을 해주고 시연을 해주고 나면, 멀뚱히 서 있던 관람객들이 그제서야 안색이 환해지면서 잎사귀들을 건드리면서 아이들처럼 재밌어했다. 그게 뭐라고 참 뿌듯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사람 응대를 억지로라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트레이닝이 되어서 나중에는 이걸 즐기게 되었다. 뼛속까지 내향인이라 (MBTI 검사에서 I지수가 무려 95%이상 나옴) 사람이 들어오면 일단은 쫄지만, 스스로 열심히 최면을 걸면서 최대한 서비스직 미소를 끌어올렸다. 다 끝나고 기는 빨릴지언정, 일만큼은 재미있었고 보람있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인턴생활이 굉장히 꽃밭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시궁창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꽃밭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게, 갤러리 인턴은 상당히 체력을 많이 썼다. 아트페어 인턴이 맛보기였다면, 여기는 실습현장이었다. 전시회를 바꾸면서 벽에 걸린 작품들을 내리고 새 작품들을 벽에 걸 때, 내린 작품들을 다시 포장해서 아티스트에게 보낼 때면 노가다 현장이 따로 없었다. 그림이었다면 다행이지만, 위 사진들에서 봤다시피 여긴 평범한 작품이 별로 없었다. 기계, 케이블, 컴퓨터 본체, 등등 섬세한 장비가 많았고 작동법이며 해체법은 오직 아티스트가 남긴 문자에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대공사(?)가 벌어지는 날이면 야근은 당연했다. 어시스턴트는 내게 힘든 일은 잘 시키지 않았고 잔소리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오너가 들를 때면 꽤나 잔소리를 들었다. 이미 다 끝낸 청소를 또 한번 하라던가, 도록 쌓여 있는 게 제대로 안 쌓여 있다던가, 창고를 가리는 커튼이 끝까지 안 쳐져 있다, 어쩌고저쩌고...


그렇다. 알잘딱깔센은 만국 공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인턴 경험은 정말 귀중했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너와 어시스턴트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내 후임 인턴으로 친한 언니를 소개해주었고, 약 2년 정도는 그들이 참가하는 아트페어에 갈 때마다 인사하러 들렀다. 인사하러 갈 때는 항상 초콜릿이나 과자 등 간식거리를 사들고 갔다. '네 덕분에 항상 잘 먹어!' 라고 하셨을 땐 또 괜히 뿌듯했다.


이 첫 인턴으로 나는 갤러리 생태계와 그 세계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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