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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Oct 20. 2021

조금 낭만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일 년 동안 해가 떠 있는 시각에 출퇴근을 한 날이 손에 꼽았다. 출판사 중에 나름 크고 이름 있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누굴 만나 회사를 자랑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입사 첫날부터 야근을 한 탓에 본의 아니게 회사에서 주목을 받았다. 포지션은 내부 업무 담당. 이전에 다니던 출판사와 조금 다른 분야여서 배정받은 업무의 대부분은 처음 해 보는 것투성이였다. 그래도 일은 적성에 맞아서 다니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원고를 교정하는 속도나 정확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터라 이번에도 자신 있었다. 다루는 콘텐츠 자체도 지식을 요하는 어려운 내용은 아니어서 이전보다도 더 속도를 내기 수월했다. 문제는 이벤트였다. 자체 사이트 이벤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벤트가 운영되는 원리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설명을 듣고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해도 자꾸 생각지도 못한 예외가 있었다. 취업한 이래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나 일머리가 없는 사람인지 심각하게 고민됐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유명한 회사를 다닌 경력을 놓치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버벅거리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한 사람들이 조금씩 도와주기도 했다. 부서 내 다른 팀이었던 K 대리님과는 아침마다 출근 1, 2등을 다투며 친해졌다.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한참 먼저 입사해서 업무 전반을 줄줄이 꿰고 있던 대리님은 내가 저지르는 자잘한 실수부터 대형 사고까지 남몰래 뒤에서 도와주었다. 어쩌다 실수를 금방 수습하지 못해서 팀장에게 실컷 깨진 날은 은근슬쩍 위로를 해 주시기도 했다. 대리님은 우리 부서에서, 아니 회사 전체에서 제일 일찍 출근해서 제일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다음 타자였다.

 회사에 도착하면 7시 반 정도였는데 대리님이 항상 자리에 앉아 눈을 꿈뻑이며 일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딘지 도도해 보이는 데다 그렇게 일찍 출근하면서도 늘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끔하게 하고 다니는 대리님에게 자꾸 눈이 가고 친해지고 싶어졌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웠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리님에게 치근덕댔다. 어느 날은 간식과 함께 힘내시라는 쪽지를 내밀고, 어느 날은 시간이 남았다는 핑계로 커피를 사다 내밀었다. 게다가 대리님은 받은 만큼 되갚아 주는 사람이었다. 출근하면 종종 내 자리에 대리님이 두고 간 선물과 쪽지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시간이 빨리 갔다. 매일, 매주, 매달의 업무 루틴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원래도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이 회사에서는 실수는 곧 ‘죄’였다. 업무에 오류가 있으면 최초의 원인 제공자를 색출해서 책임을 물어야만 끝이 났다. 대부분의 큰 실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 혹은 내부 이벤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놓치곤 하는 ‘나’였다. 그리고 팀장을 비롯한 다른 윗선과 친하지 않아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하지 못해서 놓친 ‘나’였다.

 그래도 너무 힘든 날은 일찍 퇴근했다. 밤 10시에. 그리고 보통은 정상적인 시간에 퇴근했다. 그게 밤 11시였다. 가끔 일이 많은 날은 하루를 넘기고 새벽 1시에 퇴근했다. 입사한 지 9개월차쯤 됐을 무렵, 업무 부담이 점점 커졌다. 작가들은 원고를 늦게 주고, 원고가 늦으면 이벤트가 밀리고, 미룰 수 없는 이벤트일 땐 늦게 받은 원고를 내부에서 일정에 맞게 빨리 확인해야 했다. 원고 교정과 내부 이벤트 21개를 담당하고 있던 내가 이 모든 일을 떠맡았다.

 업무분장을 다시 해 달라고 팀장과 면담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우리 팀의 업무분장 방식이 있고, 이제 와서 프로세스를 바꿀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포지션이라도 바꾸겠다고 했다. 이것도 당장은 팀장이 어찌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긴 면담을 하고서도 결국 바뀌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마냥 면담만 하고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원래도 연차를 잘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여기서는 하루 연차를 내면 연차 전날, 연차 당일, 복귀일 사흘 동안 일이 꼬였다. 나는 실수하는 게 두려워서 연차를 쓸 수도 없었다. 다들 힘들더라도 딱 죽겠다 싶을 때는 한 번씩 연차를 썼다. 그러면서 절대 연차를 쓰지 않는 나에게 독하다고 했다.


 화장실을 하루에 단 한 번도 가지 않는 날이 늘었다. 집에 와서 눈을 감을 때까지도 오늘 처리한 업무와 내일 처리할 업무를 생각했다.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꿈에서도 일을 했다. 내가 잠을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구분되지 않았다.

 타 팀의 입사 동기 몇 명이 내 안색이 안 좋다는 걸 눈치챘다.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는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출근해서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난 적 없다는 걸 모르고 있다가 옆 팀 사원 J가 ‘주임님 괜찮아요?’ 하는 말에 놀라서 잠깐 정신이 돌아왔다. J는 내 얼굴이 회색이라며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저 괜찮다는 말만 하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몇 명의 사람들이 돌아가며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유일하게 내 상태를 묻지 않은 건 우리 팀 팀장과 사수뿐이었다.

 전에 다른 팀에서 근무했던 K 씨가 재입사를 하고 우리 팀에 들어왔다. K 씨는 나를 다시 만난 첫날 대뜸 ‘괜찮으신 거 맞아요?’라고 물었다. 마침 두 달이 넘게 하루도 안 쉬고 밤 12시가 넘어 퇴근을 하던 때였다. ‘어…. 네. 괜찮아요.’ 아마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정신이 몽롱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네 시간에 한 번씩 하루 종일 두통약을 먹었고, 잠깐 쉬는 것도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제대로 귀에 꽂히지도 않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뒤돌아서면 방금 나눈 대화가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히 메모를 하고 있었는데도 내가 무슨 말을 쓴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팀장은 나에게 요즘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멀미가 심했다. 출근 루트는 지하철과 버스 두 종류였는데 나는 조금이라도 앉아서 쉬면서 가고 싶어서 일찍 나와서 버스를 탔다. 여느 때와 같이 버스 앞자리에 앉아 창문 밖을 보며 출근하던 중이었다. 언젠가부터 버스에 타면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옆 차선에서 끼어드는 차를 보며 ‘내가 앉은 쪽으로 와서 안 박아 주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버스를 타면 늘 멀미를 했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달랐다. 머리가 어지럽고 당장 토할 것 같았다. 다섯 정거장만 더 가면 갈아타는 지점에 내리는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간에 내려 다시 버스를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 바람을 쐬면서 눈을 꼭 감았다. ‘참자, 참자….’ 그래도 머리가 계속 빙빙 돌고 속이 너무 메스꺼웠다. 그냥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가까스로 벨을 눌렀다. 손이 미끄러져 벨이 눌리지 않았고, 버스는 그대로 달렸다.

 결국 사람들 틈에 끼어 꼼짝없이 더 버텨야 했다. 단전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려 훅 하고 숨을 참았다. ‘여기선 안 돼. 버스에서 토할 순 없어.’ 다행히 별 탈 없이 버스를 갈아타는 지점까지 왔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건물 화장실로 달려갔다. 토를 하진 않았지만 그대로 화장실 문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그나마 일찍 나온 덕에 지각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멀미를 하는 와중에도 일을 걱정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두 번째 버스를 갈아타고 회사 앞에 내렸다. 계단을 내려가다 또 눈앞이 핑 돌아서 휘청거렸다. 회사를 코앞에 두고 다른 건물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화장실 칸에 들어가 잠깐 앉아서 눈을 감고 속을 가라앉혔다. 이상하게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속을 게워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 정신으로 회사까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7시 50분쯤 자리에 앉아 엑셀을 켰다. 8시 반에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다들 나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에 대화를 해 본 적 없는 사람까지도 나에게 말을 걸고 갔다. 모니터를 보는데 세상이 빙빙 돌았다. 안경을 바꿀 때가 돼서 이러나 싶어 눈을 비볐지만 그래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출근하던 동기가 내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했다. 얼굴이 너무 창백하고 핏기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나는 그냥 ‘아 멀미를 좀 해서.’ 하고 말았지만 동기가 보기에는 멀미 수준이 아니었던 것 같다.

 평소에 내 안색을 궁금해하지 않던 팀장도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보더니 놀라서 잠깐 이리 와보라고 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팀장은 ‘너 얼굴만 봐도 상태 진짜 안 좋아 보여. 빨리 집에 가.’ 하며 나를 등 떠밀어 내보냈다. 남들은 다 업무를 시작하는데, 8시 59분에 나 혼자 퇴근을 해야 했다. 원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오늘 이벤트 보내야 하는데. 걱정을 하며 택시에 타서 눈을 감았다.     




 공황장애. TV에서 수많은 연예인이 고통받고 있던 그 병.


 의사는 딱히 이렇다 할 원인을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스트레스라는 네 글자로 모든 걸 설명했다. 일을 쉬면 낫는다고 한다. 일을 쉬면 저 자신은 누가 먹여 살리나요. 그래도 일단 쉬어야 한다고 했다. 무서웠다. 분명한 원인도 없고, 겉으로 티가 나는 증세도 없는데 아프다고 말하기 민망했다. 원래도 아픈 걸 기민하게 감지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더 어색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온갖 질문 세례를 받았다. 사실 부서에서 병 하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황장애가 뭐 대수라고. 그냥 머리가 좀 어지럽고, 두통이 가라앉지 않고, 기억력이 약간 흐려졌을 뿐인데. 증상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공황장애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쏟아냈다. 쉬어야 한다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많았지만, 내부 업무자는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팀장도 내가 아프다는 것을 듣고 조금은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런데, ‘머리가 어지럽고요….’ 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팀장이 내 어깨를 잡고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야, 니가 어지러우면 나는 벌써 쓰러졌다! 누가 아프래? 나도 죽겠어 진짜.’ 어쨌든 부서 사람들 모두가 과중한 업무에 고생하던 때였고, 팀장은 자기도 힘들다며 나를 잡고 하소연했다. 팀장이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공황장애라고 해서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출근길에는 계속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일을 할 때는 여전히 화장실을 못 갔고, 퇴근은 늘 12시에 했다. 자려고 누우면 환청이 들렸다. 너무 피곤해서 잠들고 싶은데, 누가 귀에 대고 왁! 소리를 질렀다. 놀라서 깨고, 무서워서 깨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으면 다시 무서워서 잠이 안 왔다. 점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죽어야만 끝난다는 기분이 뭔지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렇다고 정말로 죽는 건 무서웠다. 그런데 또 출근을 하는 건 더 무서웠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어렵게 퇴사 이야기를 꺼내는 나에게 팀장은 ‘너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 받아서 병이 났다’고 했다. 모든 건 나 때문이었다. 일을 망친 것도, 팀장의 기분을 망친 것도, 팀에 피해를 준 것도 전부 내 탓이었다. 아픈 걸 동정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모든 엄청난 상황이 전부 내가 초래한 거라고 말하는 팀장을 보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갑작스러운 퇴사 결정에  사람들은 다들 난감해했다. 팀장은  달이  사표를 수리해 주지도, 새로운 사람을 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네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잖아.’ 하며 웃었다.  웃음을 보며 아무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말하고 3주가 지나도록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이러다 붙잡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날로 자리에서 짐을 전부 정리했다. 팀장은 그런 나를 보며 황당해하다가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도  인사를 받지 않고 관계를 정리했다.


 어렵게 퇴사를 하고 조금씩 컨디션을 회복했다. 아직 완전히 괜찮아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출근길에 사고가 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됐다. 지나고 나니 사실 그 때는 달을 보며 퇴근할 때 조금 낭만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라는 건 참 간사하다. 얄궂게도 아무리 힘든 일도 좋았던 것으로 포장된다. 기억의 포장을 한 꺼풀만 벗기면 지옥 같은 나날을 떠올리게 되는데, 힘들었던 날에서 멀어질수록 ‘그래도 이런 건 좋았지’ 하는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도망치듯 회사를 떠났으면서, 나는 오늘도 미화된 기억의 조각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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