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진다,
시 쓰기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
(이 글은 분명하다.
내 글을 기다려준 여러분들이다.)
글쓰기가 깊어질수록, 나는 소수를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글이 읽히지 않는데도, 글쓰기 자체가 나에게 큰 기쁨이므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쓸수록 나는 다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나 읽기 쉬운 문장,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
그 순간, 나의 진짜 목소리는 희미해지고 있었다.
여기에서부터 문제였다.
내가 말하고자 한 진실은 무엇인가?
그 '소수'는 누구이며, 나는 그조차 잃고 있었다.
내 글이 나를 혼란 속에 가두고 있었다.
나의 목소리는 다수가 아닌 소수를 위해 있어야 했건만, 어느새 그 목소리는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스스로를 잃고 있었다.
(내 글을 읽어주시고 구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분명히 밝힌다! 마음으로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다. 이 페이지를 빌려 정말 감사드린다. 나는 작가라 불리기엔 한없이 부족한 사람으로, 좋은 글까지는 못 쓰더라도 날 구독해 주시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인 것은 철학일 터인데,
어찌하여 나는 상식에 매달리고 있는가.
(요새 쓰는 글들은 대부분 상식에 관한 글이다, 하하하. 그래서 브런치에 올리지 않고 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점점 상식에 몸을 기대게 된다.
정해진 틀 속에서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나는 어째서 그렇게 상식을 찾아 헤매는가?
모두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해받지 못할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문학은 최소한 상식을 아닐 것이다.
문학은 상식을 넘어서고,
상식은 안정 속에 머물러 있음을 잘 안다.
문학은 그 경계를 뚫고 나와야 한다.
글이란, 수면 위에 고요히 떠 있는 배가 아니라, 바닷속에서 진실을 찾는 잠수부다.
그 진실은 불편할 수도 있고, 때론 다수가 외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진리의 낌새를 드러난다.
문학이란 상식이 아니므로,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에게 파고드는 단 하나의 메시지로 남을 것이다.
그 소수에 내가 포함되었으면 한다.
더욱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읽을 것이다.
그리고 느리게 읽기보다 더 게으르게 쓸 것이다.
빠르게 쓰고, 빠르게 읽어
놓쳤던 모든 것들을 한 곳에 모아
육각형 거울 앞에 두고
천천히 돌려가며 느낄 것이다.
천천히 바라볼수록 진실은 더 깊이 드러날 것이다.
나는 이제 서두르지 않겠다.
작가가 되기보다, 작가의 독자가 먼저 되고 싶다.
이 글을 쓴 진짜 이유:
안녕하세요. 김소이입니다.
요새 일터에서 일이 제법 늘었고, 연구할 거리도 많아졌어요.
(씨익) 절 찾아주는 이가 많아졌어요,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본분에 충실하고자 브런치에서 당분간 글쓰기를 멈춰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시 쓰기에 중독된 김소이가, 이전처럼 왜 글을 안 쓰나 하고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작가님들 글을 마음을 다해 깊이 읽고 싶습니다. 이전처럼 방문이 잦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라, 그리고 행복하시라, 빛나시라."
작가님들의 글은 내게 위로이며, 기쁨이며, 웃음이므로.
그래서 작가님들의 글은 참으로 빛나니까.
작가님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빛나셔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