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관한 글쓰기가 주제로 선정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고흐의 방>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지도 실제로 본 작품도 아니지만,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어떤 특이한 경험(?)을 했다. 아마도 중학교 때쯤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미술 과제 때문에 인터넷과 미술 교과서를 뒤지며 과제에 적절한 그림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흐의 방>이란 작품을 접했고, 처음으로 그림을 보면서 슬픈 감정을 느꼈다.
어렸을 때는 나름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영화나 책을 보면서 펑펑 울 때가 많았거든) 그래도 음악이나 그림을 보면서 엄청 감동하거나 울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흐의 방>을 보면서도 운 건 아니었지만 그림을 본 순간, 흔한 말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중학생 때면 사는 게 그리 힘들 때도 아니었는데 그냥 슬프더라. 그의 삶을 알아서였을까. 지금도 고흐의 일생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당시에 내가 아는 그의 삶은 지금보다도 더 단면에 불과. 그 단면이 하필이면 비극이라 그런 건지. 그림 속 방안에 그려지는 그의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당시에는 과제가 급급했는지 그림을 보고 혼자 울컥하고 넘어갔는데 글을 쓰기 위해 <고흐의 방>에 대해 좀 찾아보니 여러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고흐의 방>이란 제목의 그림이 총 3개나 있는 연작이었고, 내가 어렸을 때 본 그림이 그중 가장 첫 번째 작품이었다는 것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이란 책에 따르면 첫 번째 <고흐의 방>은 고흐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1888년 가을에 그려졌다는 것.
방문을 열고 들어와 혼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아침에 일어나 의자에 앉고, 늦은 저녁 창문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모습까지. <고흐의 방> 그림 속 고흐는 아니, 내 상상 속 그는 내내 혼자였는데. 실상은 그가 새로운 동료들과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을 때라니. 조금 당황스럽다.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베개 등 한 쌍으로 이뤄진 물건이 그런 고흐의 마음을 표현한다고 하는데 어린 나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는지 쌍으로 된 물건은 생각도 않고 그저 내내 우울해하는 고흐의 모습만 그렸다.
우스운 일이다. 심적으로 힘들었던 1889년에 그려진 <고흐의 방> 두 번째, 세 번째 작품도 아니고 첫 번째 그림을 보고 그런 모습을 상상 하다니. '아는 만큼 보인다'의 안 좋은 예(?)로 딱 들어맞지 않을까. 허세를 좋아하던 시절엔 일부러 미술 관련 서적을 도서관에서 여럿 빌리곤 했었다. 나름 그림을 좋아하기도 했고 공부를 못하니 그런 쪽으로나마 유식해 보이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완독을 하는 책은 손에 꼽혔고 항상 그림만 훑어보다 반납하기 일쑤였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었고, 어린 마음에 '역으로 생각하면 아는 것만 보인다는 소리잖아. 나는 남들은 모르는 다른 것을 느끼고 싶어!'라며 되지도 않는 말로 합리화하며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해서 위처럼 우스운 일이 일어났지. 그렇다고 내 감상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변명은 아니지만, 예술 작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작가나 감독이 특정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소화는 오롯이 감상하는 사람의 몫 아닌가. 나처럼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당시 작가의 상황이나 감정을 오해할 수도 있고 잘못된 정보로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술이 수학은 아니니, 어떤 메타포가 통상적으로 뜻하는 게 있다 해도 그걸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게 예술의 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