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들은 여러 번 다시 보게 됩니다. 가장 많이 본 작품을 꼽자면 영화로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일 테고, 애니메이션은 픽사 전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만화책은 「명탐정 코난」을 따라올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드라마는 단연 「커피프린스 1호점」이에요. 특히 느티나무의 잎이 풍성해지는 초여름이면 습관처럼 생각이 납니다.
너무 옛날 드라마라 지금의 정서와는 맞지 않아요. 게다가 이미 많이 본 터라, 몇 년 간 볼 생각이 없었죠. 그런데 올해 갑자기 고파졌어요. 그래서 연휴에 정주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상치 못한 것들과 마주해 버렸습니다.
커피프린스를 가장 최근에 본 게 벌써 5년 전이더라고요. 한참 회사에 적응하며 힘들었던 때라 분명히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극 중 '고은찬'과 '프린스'들이 저보다 어려진 게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경악스러울 만큼 촌스러운 주인공들의 패션에 더 큰 충격을 받았었죠.
이번에도 비슷한 감정일 거라 생각하고 봤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아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일단, '한결'의 패션이 덜 촌스러웠습니다.
패션이 돌고 돈다는 게 이런 걸 뜻하는 건가 봐요. 하긴 거의 20년 전이니 이제 돌아올 때도 되었지 싶어요.
그리고 '한결'에게 가장 공감이 가기 시작했어요.
분명 지금까지 감정이입의 대상은 줄곧 '은찬'이었는데 말이죠. 우스갯소리로 더 나이 들어서 보게 되면 '홍사장님'에게 가장 공감이 갈 수도 있겠다 했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벌써 이 세계에 없는 사람이 셋이나 되더군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 사실을 잊었다 이내 다시 떠올리곤 공허함에 가라앉기를 반복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졌어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 헤멜정도로요.
세상 어른처럼 보였던 주인공들이 이제는 젊다 못해 어리게 보입니다. 배경으로 보이는 서울의 모습과 소품들로는 격세지감을 느꼈고요. 거기다 떠나간 사람들이 웃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18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가슴이 아릴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생은 얼마나 덧없는가. 우리는 얼마나 짧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철학자들이나 던질 법한 질문들이 잠들지 못하게 밤을, 머리맡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의 반짝이던 청춘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어요. 화면 속에서 반짝 거리는 배우들의 젊은 모습이 그들에게도 그리운 모습이 되어버린 것처럼요.
반짝임은 청춘의 전유물일까요?
무엇이 한 사람을 반짝거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일까요?
젊음과 청춘은 다른 것일까요?
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꺼려하는 걸까요?
좋았던 것들은 왜 그리움으로 남아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걸까요?
저는 도대체 뭐가 이렇게 두려운 걸까요?
순식간에 저를 덮치는 질문들 사이에서 저는 답을 찾지 못하고 허우적 대는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아직 연휴가 며칠 더 남았습니다. 초여름 태양빛에 반짝이는 느티나무의 초록잎. 그 반짝임마저도 질투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아요. 영원히 반짝거리며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거든요.
언젠가 먼 미래에 돌이켜보면 지금도 반짝이는 한 순간일 수 있겠죠. 그러니 그런 장면을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 살아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떨쳐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를 정주행 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거대한 질문을 마주하고 있어요. 질문에 답을 해주실 분이 있다면, 언제든지요. 단 그 답이 42라면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