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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Jul 30. 2023

하루를 기록하는 즐거움

작은 이야기 4

항상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다. 아날로그 일기장에 꾹꾹 눌러쓰고 여기저기 감춰두든, 각종 포털의 블로그에 흩뿌려두든 멈추지 않고 썼다. 그러다가 입사를 하며 일기를 많이 쓰지 않게 되었는데, 일기 쓰기를 멈춘 시점과 내 삶이 팍팍해진 시점은 상당히 일치했던 셈이다.

올해 상반기는 누가 뭐래도 회사에서는 새 조직 적응, 개인적으로는 유튜브 채널 2개 운영에 개인적인 재테크 공부와 자격증 취득으로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지만, 지나고 보니 또 남는 아쉬움은 있었다. 내가 과연 그 모든 과정을 충분히 느끼면서 지났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냥 하루를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쏟아지는 일을 바쁘게 쳐내며 살지 않았나, 그래서 쌓이는 결과에 뿌듯함은 있었어도 지나면 뭐 했는지 모를 날들 아니었나 하는. 그래서 흐르는 시간에 좀 더 충실하기 위해 수면, 식단, 운동 등 건강 관리에 힘써보자 하는 막연한 결심도 있었다. 아무래도 컨디션이 나쁘면 대충 살게 되니까.

그러다가 기록을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언니 덕분이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 언니는, 내가 주중 오후까지라도 강제로나마 규칙적으로 사는 것과 다르게 모든 것이 자율인 생을 살고 있다. 그러다 21년 방송된 <노는 언니 2>라는 예능을 다시 보며, 펜싱 국가대표 윤지수 선수가 출연해 매일 같이 훈련 일지를 썼다고 말한 것에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물론 언니만큼이나 감명을 받았고 자기 계발 분야에서 특히 귀가 얇은 우리 자매는 당장 일지 쓰기를 시작했다. (세상에, 매일 자기를 기록하고 셀프 피드백을 정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 년 후가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 혼자 쓰는 것은 재미가 없으니 구글 스프레드를 이용해 공유하기로도 했다. 그렇게 꾸준히 일지를 쓴 지 육 개월이 흘렀고 그 결과 우리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을 쓰게 되었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지난 목요일에 시작했으니 이제 4일째인 셈이다.

일지는 각자 편한 양식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나의 경우 행으로는 주/날짜/요일을 밑으로 쭉쭉 내리며 쓰고, 열로는 식단/수면/운동 1칸, 사전 목표 1칸, 기록 1칸, 피드백 1칸을 만들어 기록하고 있다. 뭘 하고자 했는데, 뭘 했고, 그러니까 어떤 점에서 만족한다거나 어떤 부분이 놀랍다거나, 좀 더 신경 쓰자거나 그런 것들을 적는다. 언니도 약간 다르지만 일단은 비슷한 양식으로 출발했다. 앞으로 변화를 겪겠지만, 당장은 만족스럽고, 그렇기에 그 만족감을 쓰고 싶었다. 오늘 일요일을 맞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난 일주일 간의 일지와 다음 주의 목표를 다시 꼼꼼히 정리하다 보니 고작 4일째지만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놀란 것은 하루만 밀려도 한 일이 잘 생각이 안 난다는 점이다. 몇 시에 자고 일어났는지는 물론이고, 뭘 먹었는지도 의외로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보니 첫째는 규칙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둘째는 이렇게 기록을 하지 않으면 정말 하루가 휘발되는구나 싶다. 다음으로는 생각보다 하루에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쉰 것 같은 날에도 하다못해 드라마라도 한 편 봤든가, 빨래라도 했든가, 무엇보다 출근을 했다. 그리고 적다 보니 그 일들은 점점 더 사소하기보다 알차고 뿌듯한 일로 느껴진다. 내가 이걸 통해 뭘 배웠지, 어떻게 성장했지, 또는 어떻게 성장을 거부했지 하는 고민도 늘어난다. 단 4일 만에 깨달은 점치고는 거창하지만, 4일 만에도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게 또 장점이다. 여러모로 지금까지는 아주 만족스러운 일지 쓰기.

일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하루를 기록하는 것도 매력 있는 일이다. 여기에서 또 일기가 나오기도 하겠지. 멍하지 않게, 집중하고 느끼며 살아보고자 한다. 이번주 일지를 정리하다 보니 아직 브런치 업로드가 없다는 걸 깨닫고 쓰러 온 것은 일지의 순기능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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