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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밤이 Mar 15. 2024

자유의지와 불안의 필연적 공존

[서평]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린저, 민음사

불안을 꼭 껴안은 채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남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남들이 사는 것이 답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대다수가 선택했다는 안도감이 불안을 감소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당연하게 대학은 가는 것이고 회사에 취직하여 사는 삶만이 다인 것으로 알며, 남들이 선망하는 것을 나 또한 선망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갔다.  그러다 외면하고 있었던 응어리들이 터지기 시작했고 정서적으로 몇 년간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난 후 작년부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시작했다.


방황의 시기가 필요했구나.


그래서 나는 올해 십 년을 넘게 해 오던 일을 멈추고 진정 내가 두근거리는 것들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을 접했다.


마음속에서 내가 선택하고 싶은 인간 삶의 모습은 니나(내 삶에 대한 자유의지)였으나, 현실은 니나의 언니(내 삶에 대한 방관자)가 되어버려 고통이었던 과거의 시간.. 니나이고 싶고 니나처럼 살기 위해 선택한 현재의 시간들에 확신을 주었다.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어> 하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무언가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까 봐 불안합니다. 그 무언가를 영원히 상실할까 봐 불안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안의 가장자리, 아직 포착 가능한 불안의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뭔지 모릅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불안,  그 <무언가>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나는 그 불안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남들처럼 살아가는 안정감만 추구하면서 마음속에서 이게 아니라고 외치는 힘을 외면하느라 고통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니나는 ‘안정감’을 주는 슈타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아실현을 위한 용기와 더불어 불안을 해소하는 안정감을 추구하는 욕구가 공존하기에 니나 또한 그가 주는 안정감에서 안주하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어야 하는 자기 의지의 표상으로서 니나는 마음속 그 무언가를 추구하는 삶을 선택했다. 모든 게 미정이지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사실은 이 여러 자아 가운데 하나의 자아만을, 미리 정해져 있는 특정한 하나의 자아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만

슈타인은 안정적인 삶에 접어든 중년이었다. 그의 삶은 바깥에서 보면 성공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니나를 만난 후 자신은 항구를 떠나본 적 없는 배였음을 깨닫는다.

니나가 자유의지, 정의, 사회적 가치, 행동하는 사람, 불안을 껴안고 사는 비범한 사람을 대표한다면, 슈타인은 안정적인 삶, 개인적 가치,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일반적인 사람을 대표한다.  자유의지로 대표되는 니나를 성적 호감을 넘어서 동경하기에 니나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만들지 않고 오랜 기간 조력자로 남아있을 뿐이다.

니나 또한 이런 슈타인을 존경하며 일반적인 남녀의 연애관계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오랜 기간 둘의 우정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성적 관계로서 서로를 종속시키려 하는 욕구가 발산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삶의 방관자였던 니나언니의 관점에서 니나의 조력자인 슈타인의 편지로 인간의 고독과 삶의 의미에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는 이 책을 통해 니나의 언니와 같은 과거의 나를 버리고 니나가 되려 한다.


삶에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삶의 주인이 나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온몸으로 불안을 껴안고 자유의지로 살아갈 용기를 낸 스스로를 응원해 본다.



정작 인생에는 한 가지 계산서도 없고 아무런 결말도 없는데 말이야. 결혼도 결말이 아니고, 죽음도 겉보기만 그렇지 결말이 아니고. 생은 계속 흘러가는 거야. 모든 것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으며, 모든 것은 즉흥적으로 생성되고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서 한 조각을 끌어내서는, 현실에는 없고 삶의 복잡함에 비하면 우스울 뿐인, 작고 깔끔한 설계에 따라 그것을 건축하고 있어. 모두가 꾸민 사진에 지나지 않아. 내 소설도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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