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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l 05. 2024

고마운 마음은 표현해야 아는 건데

그 옛날의 나와 우리 엄마아빠에게

다른 집도 다 그러했듯, 우리 집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잘 살던 아파트를 세주고 아빠의 허름한 공장 2층에 있는 집으로 이사 가던 날.


엄마는 연신 우리의 눈치가 보였는지

“어때? 맘에 들어?”

(마치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가 샌프란으로 이사해 처음 집을 만났을 때처럼) 물어보았다.


“엄~~ 청 크고 넓고 좋은데?”

이 말은 사실이었다. 아파트 빽빽한 새 동네는 아니었고, 평범한 빌라촌도 아닌 공장촌 가운데 집이었지만 더 크고 방도 많고 넓었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멀진 않아서 다니던 학교를 전학하지 않고, 아빠가 등하교를 자차로 시켜주던 어느 날.

“주디야!!”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학원차 기사님이 아니신가!


“안녕하세요~!!!”

멀리서 손 흔들며 인사하곤 아빠차를 탔는데 그날 저녁 기사 아저씨가 슬쩍 물어보셨다.


거기 학교 다니냐고, 매일 그 시간에 나오냐, 아버지가 데리러 오시냐 등등

그리고는 기사님도 거기서 우리 집 쪽으로 지나가니 하굣길에 태워주시겠다는 거다.


세상에.


지금 생각하면 두 가지 감정을 가질 것 같다.


하나는

왜? 이 험한 세상에? 잘 모르는 학원차량 기사님이, 그것도 그것도 무료로?


두 번째는

너무 감사해라!


우리 집은 단연코 너무 감사해라! 였다.

그렇게 몇 달 정도 기사님의 차량을 나는 얻어 타고 하교했다.


어떻게 흐지부지 그 차량탑승이 끝난 건지 기억은 없다. 다만 그 차를 탈 당시에 초반에는 기쁘고 감사했고 뒤로 갈수록 시간 맞춰 나오기 불편한 기분도 있었던 덧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워낙 내성적이라 말도 잘 안 했고 타인과 긴밀하게 가까워지지 못하는 편이라 그랬을 듯)


성인이 되고 나서 종종 아저씨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가 생각하게 됐다. 혼자 편하게 가시면 되는데 굳이 학생하나를 기다렸다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주는 수고를 해주신 걸까.


다시 생각해도 그 마음에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고마움은 어떻게든 표현했어야 하는데..’라는 것이다.


내 기억에 우리 부모님은 기사님께 뭔가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으신 것 같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감사전화라든가, 과일이라든가, 등등


성인이 되고 내가 배운 것 중 하나는 선물로(직접적우로는 “돈”으로) 베푸는 습관이다. 돈으로 표현하지 않는 고마움은 생각보다 그 힘이 약하다. 물질만능주의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매일 고맙다는 말 한마디보다 커피 한 잔이라도 사주는 친구에게 마음이 더 가던걸.


돌아보면

어려운 시절 고작 30대였던 엄마아빠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듯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베풀며 살고,

고마운 마음은 꼭 표현하고 살자고!!


늦었지만 기사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마음덕분에 아직도 그 시절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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