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의 아내>
국민과 매국노. 개인과 전체. 사랑과 꿈. 대립되는 요소들 속에서 반복되는 불안과 믿음을 큰 에너지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어둠과 빛으로 혼란스럽게 또는 명료하게 표현해낸다.
마지막의 울음은 무엇일까. 드디어 끝난 미친세상에서 미쳐야만 했던 사토코. 종전이라는 미친세상의 끝에서 이제는 미치지 않아도 되었을 때, 드디어 드러난 사토코의 본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을 만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그녀는 진작에 울었어야 했지만 경찰서에서 잠시 웃은 후, 미쳐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4년을 울지 않고 미친 사람으로 버틴 것이고, 천천히 문을 열며 세상이 바꼈음을 확인하자 남편을 잃은 보통사람으로 돌아가 바다를 미친 듯 헤매며 오열하게 된 것이 아닐까.
순수하리 만큼 깨끗한 마음으로 믿었기에 끝끝내 배신이라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끝끝내 스스로 미친사람으로 조용히 버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경찰서에서 상영된 영상에서 ‘덧없는 사랑이여, 찰나의 연분이여’라는 가사로 노래가 흐를 때 그녀는 사랑의 마음은 다 지워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 가사인 ‘밀려오는 슬픔에 휩싸이는 이 내 몸’의 감정으로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미친 척하기로 했을 것이다.
영화의 표현 중 도드라지는 것은 빛과 그림자다. 스파이가 어둠에 가깝다면 빛에 가까운 것은 찬란한 사토코의 삶이다. 그런 그녀가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서 불안이 증폭되다가 어둠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이 된 그녀의 밀고 이후 남편 유사쿠가 집에 돌아왔을 때, 밀고할 때만 입었던 기모노를 입지 않았다는 점도, 잔뜩 어두운 커튼 뒤에 서서 남편을 기다렸던 것도, 그녀가 배신할 줄 알았던 내가 이상하게 보았던 점이고, 결국 미장센이 진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에서 인상깊었다.
두 번의 큰 반전을 제시하는 플롯과, 자성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담아낸 기획, 그리고 빛과 그림자, 그리고 소리로서 감정과 스토리를 담아내는 연출력 등 많은 것이 좋았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토코하는 개인의 사랑의 감정이다. 그녀가 느꼈던 불안, 안도, 설렘, 실망, 공허… 이 영화가 방향을 틀 때마다 그것을 납득시키고 집중시킨 것은 사토코의 감정이며, 사토코를 연기한 아오이 유우의 매력이다. 그로서 이 영화는 메시지만 있거나 이야기만 참신한 것이 아닌 매력적인 영화로서 기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