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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Jul 01. 2019

'타다'가 좋은 서비스? 새벽에 강제하차 당하다

'별점 제도'와 '프리랜서' 기사 채용의 부작용

누가 ‘타다’를 좋은 서비스라 했던가. 새벽에 도로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지다.


지난주 금욜 새벽 1시 넘어 경리단길 보석길에서 타다를 불렀다. 처음 매칭된 타다는 1분 거리라더니 2-3분 후 전화가 와서 뭔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라며 취소해달라고 했다. 취소 후 다시 불렀더니 다른 차가 바로 매칭됐고 1분 거리라고 떴다. 근데 한참을 돌더니 거의 10분이 걸려서야 왔다.


탑승 후 난 뭘 확인하느라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폰만 봤다. 그러다 뭔가 이상해 고개를 들어보니 차가 계속 골목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뱅뱅 돌고 있었다. 경리단길 골목이 좁고 복잡하긴 하지만, 내가 여기서 택시를 처음 타본 것도 아닌데 심하다 싶었다. 좀 돌아가거나 다른 방법을 취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사가 “아까부터 표정이 띠껍다”며 “별점 테러하실 것 같으니 그냥 내리고 다른 차 타시죠”라고 했다. 난 타다 별점을 줘본 적도 없고 별점 테러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집에만 가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손님이 ‘싸가지’없이 말하지 않았냐”며 “꼭 이러는 손님들이 별점 1점 주더라. 내가 갑을관계에서 을이지만 블랙박스 녹화되고 있는데 회사에 다 알릴 거다”라고 했다.


싸가지..? 갑? 새벽에 혼자 택시를 타며 내가 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난 “전 갑질을 할 생각도, 별점테러를 할 생각도 없다”며 “다른 택시를 잡을 기운이 없으니 제발 집에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기사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는 듯하더니 씩씩거리면서 계속 “별점 1점 매길 거죠”라며 시비를 걸었다. 나도 짜증이 폭발해서 “알겠어요 그럴게요”라고 말이 나와버렸다.


그러자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 배차 취소하겠다며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고 내리라 했다. 인도도 없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위였다. 기가 막혔지만 더 이상 상종하기가 싫었다. 기사가 정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억울한 마음에 내리면서 “내가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하고 번호판을 찍었다. 도로 위에서 겨우 일반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도착한 지 한참 뒤에야 앱에 ‘사고 혹은 기타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배차가 취소됐다’고 떴다. 너무 화가 나서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신고할 거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그냥 가만 있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기사가 폰번호, 주소를 아는데 괜히 해코지하면 어떡하냐는 걱정이었다. 아빠도 그냥 덕 쌓는다 생각하라 하셨다. 나도 화가 좀 진정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체 타다에서 별점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오죽하면 그랬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또 타다를 부를 일이 생겼다. 기사에게 전날 일을 얘기하고 별점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라고, 좀 이상한 사람 같으니 신고를 하라고 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한 달 평균 평점이 4.8 미만이면 서비스 교육을, 3개월간 평균 4.8미만이면 해고한다고 통지한다”는 증언이 나온다. 이 기사는 블박 너머 회사의 감시 때문에 별점 시스템의 문제를 솔직히 말 못한 게 아닐까. 민감한 질문을 한 게 미안해졌다.


아직 난 그 기사의 말투나 눈빛, 행태가 정상은 아니었고 일을 그만뒀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기사의 피해의식은 시스템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회사로선 서비스 질을 높이려 만든 제도일 텐데 별점 낮게 받는 거 어떻게든 피하려고 손님을 길가에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마냥 이 기사만 탓할 수 있을까. 운 나쁘게 진상손님이 이유 없이 별점테러를 연달아 하면 기사는 그냥 해고돼야 할까.


일반택시가 아무리 불친절하다 해도 길거리에서 내리라는 기사는 못 봤다. 사실 난 타다 옹호론자가 아니다. 운 좋게 택시에서 인정 많은 기사분들을 주로 만났고, 다들 타다를 예찬하는 데 대한 일종의 반항심이 있었다. 타다를 직접 불러본 건 카택이 안 잡혔을 때 고작 세번인데 이런 일을 겪었다.


요즘 차량공유 사업자들 간 갈등이 이슈다. 타다는 무결한 서비스가 아니다. 이재웅 대표는 별점 시스템으로 인한 이런 부작용을 상상이나 할까. 그 기사는 어떻게 타다의 취업문을 뚫었을까. 타다 기사는 프리랜서로 일당을 받는 경우가 90%, 4대보험을 적용받는 파견노동자가 10%다. ‘시급제 프리랜서 계약직’은 승차거부 가능성을 낮췄지만 직업의식 없는 수준 이하 기사도 양산하고 있다.


오늘 탄 택시 기사분은 “타다는 45세 미만만 고용한다더라”며 “사명감이나 노하우가 부족한 운전 초보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을 이용해야 할까. 아직 난 문제의 기사를 신고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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