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anU Apr 18. 2021

난 며느리상이 아니야

며느리상 따윈 없었다



나의 어머니 '태경'은 직장을 다니는 둘째 며느리였다. 그 옛날 회사를 다니는 여자가 거의 없던 시절, 태경은 첫째를 낳고 한 달만에 출근할 만큼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당시 그녀는 광고업계 AE였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카피라이터를 하고 모텔에서 1박 2일 하며 밤을 지센 날이 많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태경은 부잣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를 하시면서 국회의원이었고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 요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멋진 사모님이었다. 태경은 어릴 때부터 위, 아래에 치여서 예쁨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첫째, 둘째는 첫째, 둘째라서 부모님의 주목을 받았고 넷째는 막내라서 특히 이쁨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대학생이던 시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그녀는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고 제약회사 홍보팀에 입사한다. 



어린 시절, 어린 내가 보기에 태경은 큰엄마보다 항상 덜 고생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큰엄마는 매주 친가에 방문인사를 갔으나 태경은 15년 전부터인가 친가 모임에 가지 않았다. 그때마다 큰엄마 혼자 며느리 노릇을 하는 것이 참 안타까웠고 왜 태경은 친가에 안 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좀 오지..

어릴 때부터 집에서 쉬는 태경이 좀 미웠다.  




시간이 많이 흘러 얼마 전, 몇 년 전 태경과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함께 장을 보고 오다 맏며느리로 시집간 친구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리고 그 맏며느리 이야기를 하다가 태경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다.


나 : 엄마, 엄마는 확실히 맏며느리상은 아닌 거 같아
태경 : 맞아
나 : 그치?
태경 : 근데 난 며느리상이 아니야(웃음)


태경의 말을 듣고 난 좀 멍해졌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며느리상 따위는 없다. 그 누구도 며느리가 되기 위해 태어나진 않는다. 생각해보니 큰엄마도 맏며느리상이 아니라 한 인간일 뿐이었다. 태경도 그저 태경이다.


나는 그 점을 잊고 태경에게 무의식 중에 계속 며느리상을 강요했는지 모른다. 며느리상, 어머니상 이 모든 것은 강요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며느리, 어머니 인 사람은 없는 것이고 그들도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데 그 자리에 맞게 옷을 입길 바랬다. 


태경은 누군가의 며느리보다 회사의 관리직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동그라미와 네모가 연애를 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