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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nU May 15. 2021

왜 나에겐 스승이 없을까

스승의 날 써보는 글


스승의 뜻을 구글에 찾아보면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고 쓰여있다. 


난 고등학생 때까지 '스승'이라고 느낀 선생님이 없었다. 공부를 잘 한 아이도 아니었고 선생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활발한 성격의 아이도 아니었기에 선생님들에게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학생 중 하나에 불과했다. 심지어 고1 때 나의 담임선생님을 하셨던 분은 4년 만에 나를 만나고서 나를 담임한 적이 없다 하셨다. 물론 선생님들은 많은 제자를 지나쳐 보내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나는 평범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대학교 입학 후 만난 교수님은 선생님보단 더 먼 존재였다. 어쩌면 당연했다. 대학에는 담임선생님이 없고 모든 걸 내가 알아서 찾아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만 잠깐 보는 교수님들은 선생님보단 더 먼 존재였고 나 또한 전공에 열정이 있던 것이 아니었기에 교수님과 친하게 지낸다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 학과 학술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다. 그 당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전공을 열심히 하지도 않던 난데 학술 동아리를 들어갔다. 그곳은 주로 학과 학생회를 했던 친구들이 들어가는 곳인 것 같기도 했는데 (주로 학생회 출신 선배들이 있었다.) 난 당시 학과 학생회도 아니지만 철판을 깔고 들어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판보단 눈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곳에서 동아리 담당 문 OO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다정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좀 무뚝뚝하달까? 동기들은 교수님을 '엄한 아버지'같다고 했다. 좀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면 혼도 내시는 분이었다. 언제는 내가 너무 큰 소리로 말을 해서 앞자리에 앉아있던 교수님이 혼을 내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그런 모습이 싫다기 보단 따뜻하게 느껴졌다. 밖에서 자식이 행동을 잘못해서 욕먹길 원치 않는 아버지의 마음이신 걸 알았기 때문이다.


졸업 후 어느 날, 교수님을 찾아뵈었고 개발 일을 안 한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엔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웠다. 사실 컴퓨터 쪽 전공을 하고 졸업까지 한 사람들 중 이렇게  전혀 다른 진로를 선택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문과에선 전공과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공대에선 다른 선택을 하는 친구들이 적었다. 내 주변만 해도 나와 같이 전혀 무관하게 간 케이스는 별로 없었다. 개발을 안 하더라도 IT기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포부를 가지고 전공을 버린 것도 아니었기에 목소리에도 떨림이 있었다.

떨리는 고백 후에 교수님은 담담히 말을 꺼내셨다.


좋은데?
그렇다고 네가 배웠던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게 아니잖아  
네가 배운 것은 결국엔 너의 일과 나중에 연결될 거야
컴퓨터는 그런 것이거든
 

교수님은 알고 계셨다. 내가 컴퓨터 쪽에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또, 인생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닌 것을. 

교수님의 말씀대로 내가 배웠던 것들은 다 그만의 의미가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데이터 분석을 할 때 학부 때 배웠던 것을 쓸 일도 있었고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수월하게 웹 쪽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알고리즘을 배운 덕에 일 처리를 할 때도 머릿속에서 순서도가 그려졌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순간마다 교수님께 전화를 하기도 하고 끝난 후에 상황을 말씀드리기도 했다.




왜 나에겐 좋은 스승이 없을까


제목은 중학교 시절의 내가 나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왜 나에겐 좋은 스승이 없을까. 스승의 날 때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꽃을 주러 간다는 친구들을 보며 나에겐 왜 그런 좋은 선생님이 안 오실까 생각했다. 나도 좋은 선생님 만나면 스승의 날 때 연락드리고 만나고 싶은데 나에겐 그런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그 인연들을 길게 가져가지 못했던 것이다. 여OO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신OO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 모두 나에게 배울 점이 있는 어른이었고 스승이었다. 나의 주변엔 항상 스승이 있었으나 내가 그분들을 스승의 인연으로 연결해서 가져가지 못했던 것이다. 


또, 스승을 만들고 싶으면 나에게 왜 안 올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먼저 스승을 찾아 나서야 했다. 스승이 될 만큼 좋은 인성과 멋진 사람은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멘토로 삼고 싶은 그런 분을 정해서 일단 연결을 계속해보려 노력하거나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런 스승이 있을 만한 곳으로 내가 직접 가야 한다. 인생의 스승을 찾는 데 그 정도 노력은 들여야 맞지 않는가?

 

오마에 겐이치


오마에 겐이치는 사람을 바꾸는 3가지 방법으로 시간을 달리 쓰고 사는 곳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라고 말했다. 만일 당신도 인생의 스승을 못 만났다면 내 주변엔 왜 스승이 없는가를 탓하기보단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을 했는지 뒤돌아보자. 그리고 잘 찾아보자. 어쩌면 좋은 스승은 당신의 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22년만에 첫 스승을 만났던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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