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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tle Latte 젠틀라떼 Jan 20. 2019

[퇴사일기 #17] 빛처럼 밝게 솔처럼 푸르게

빛솔장학회의 시동을 다시 걸다

  퇴사 이후, 하고 싶었던 일들과 더불어 해야 할 일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장학회의 정상적인 운영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09년 1월에 '빛솔장학회'라는 이름의 청소년 장학단체를 만들었다. 지인들과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학업을 돕는 작은 모임이다. '빛솔'은 '빛처럼 밝게, 솔처럼 푸르게'의 줄임말이다. 인생의 후배이자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꿈을 향해 밝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지었다. 그렇게 시작해 이제 10년이 됐다.

  지방의 한 작은 도시에서 성장한 나는 큰 부족함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많은 것들을 누리며 지냈다. 특히 자녀 교육에 시야가 넓으셨던 어머니가 도시의 아이들에 뒤지지 않도록 학업과 다양한 경험들을 지원해주셨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 집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으셨고, 아버지가 하시던 일도 잘 풀리지 않았던 시기였다. 누나들은 서울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도 건강이 좋지 않아 1년 동안 병원을 오갔다. 이런 여러 상황들로 인해 가계 상황이 좋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시절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기 싫어 학자금 대출을 받고자 했지만,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대학 공부까지는 직접 지원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결국 대출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을 앞두고 새삼 고생하신 부모님께 감사했고 죄송했다. 비록 넉넉하지 않았을지언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나는 행운아였다. 이마저도 어려운 학생들은 어떨까 싶었다. 심지어 대학생이라면 대출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학업을 지속할 수 있지만 그보다 어린 학생들은 더 막막하지 않을까, 그런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블로그에 글을 썼다. 장학단체를 만들어 꿈이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댓글이 하나씩 달렸다. 동참하고 싶다는 지인들이 늘어났다. 직접 만나 의견을 모았고, 트위터에 장학생 선발 공고를 올렸다. 그렇게 빛솔장학회가 시작됐다.


  면접에서 만난 학생들의 꿈은 다양했다. 의상 디자이너, 공연 연출가, 바리스타, 요리사, 가수, 기자, 건축가, 영화감독, 축구행정가 등 여러 모습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주고자 애썼다. 관련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해주고, 도서 지원과 전문가와의 만남도 주선했다. 문화예술적인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함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규모가 큰 장학재단에 견줄 수는 없었지만, 우리가 가진 능력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해주고자 고민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장학생들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친구들도 있다. 이제는 만나서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기쁘다.

  S사를 다니던 시절 장학회를 그만둘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바쁜 업무로 인해 장학생 선발을 비롯한 안건들을 추진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나와 멤버들 모두 바쁜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 의사결정이 늦어지거나 제대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장학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이탈하는 멤버도 생겼다. 회장으로서 책임감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마음의 짐이었고, 내려놓고 싶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장학회는 내 평생의 목표였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빠르게 실현할 수 있었던 만큼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퇴사와 함께 새로운 장학생 선발 작업에 돌입했다.


  드림스폰이라는 장학금 정보 제공 스타트업과 손을 잡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찾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2명의 학생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학업을 위한 인강 수강과 교재, 체대 입시에 필요한 운동용품 등을 지원하며 응원했다. 비록 10년 전에 비해 규모 면에서 많은 확장을 하지는 못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또 한 번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찾았다. 만약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장학회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퇴사는 나에게 평생의 목표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장학회 운영은 여전히 쉽지 않다. 체계적으로 키워나가겠다던 전략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 생겨도 선뜻 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장학회를 평생 이어갈 것이라는 마음은 변함없다. 미안하고 고마운 멤버들에게도 장학회가 인생의 중요한 즐거움이었으면 좋겠다. 천천히 가되 멀리 보고 건강한 장학단체로 성장시키고 싶다. 장학생들이 후배들을 도울 수 있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나 자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꼭 이루고 싶은 목표다.


  빛솔장학회의 슬로건은 '젊음이 젊음을 돕는다'다. 설립 당시에는 모든 멤버가 20대였다. 이제 멤버들도 나이가 들다 보니 슬로건이 다소 무색해지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젊음을 유지하며 평생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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