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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Apr 26. 2019

동시대에 태어난 "악마와 천재"

아돌프 히틀러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탄생 130주년

지난 4월 20일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였던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탄생 130주년을 맞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26일 오늘은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불리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130번째 생일입니다.


공교롭게도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은 훗날 오스트리아 린츠의 국립실업학교인 레알슐레에서 동창으로 만나게 됩니다. 물론 둘은 직접적으로 서로를 언급한 적이 없어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냥 학교 복도에서 지나가다 마주친 사이에 불과했을 수도 있죠.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가 함께 나온 사진

두 사람의 접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사상가 '오토 바이닝거'입니다.

평생 유대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했던 히틀러. 하지만 유일하게 그가 인정했던 유대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토 바이닝거입니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의 비트겐슈타인 역시 오토 바이닝거의 저작을 읽고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천재의 의무'에 사로잡힙니다. 동시대에 태어나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으나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 생각보다 접점이 많으면서 전혀 다른 운명의 길을 걸었으니, 이 무슨 얄궂은 신의 장난인가 싶기도 합니다.

히틀러가 천재적 재능을 보인 비트겐슈타인을 질투하며 콤플렉스를 느꼈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호사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풍문일 뿐,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불과 6일의 시차를 두고 한 나라에서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와 최고의 철학자가 함께 태어난 사실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했기 때문인지, 이런 근거 없는 썰(?)이 확산된 것 같네요.


그런데 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의 인연은 1933년 유대인과 아리안인을 구분하는 '뉘른베르크 법'이 통과되면서 다시 이어집니다. 뉘른베르크 법에 따르면 유대계와 아리안계가 3/4으로 섞인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아리안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분류가 됩니다.

이 때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비트겐슈타인의 형 파울은 스위스로 망명하는데, 그의 누나들은 아무리 나치라도 오스트리아 최고 재벌인 비트겐슈타인 가문을 건드릴 수는 없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목숨과 재산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러자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던 비트겐슈타인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사태를 수습합니다. 당시 전쟁 준비 중이던 히틀러에게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재산은 아주 긴요했기 때문에 결국 해외에 있는 재산 대부분을 히틀러 정권에 헌납하는 조건으로 비트겐슈타인 가문은 '혼혈'로 분류되어 목숨을 부지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폴란드 침공 이틀 전에 비트겐슈타인 가문을 혼혈로 인정하는 명령서에 직접 서명을 했다고 합니다. 참 기이한 악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필로소픽에서 출간한 책 《비트겐슈타인 가문》에서 이와 관련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 두 사람의 평전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히틀러 탄생 130주년을 맞아 그에 대한 책들도 소개되고 있는데요, 특히 히틀러 탄생 130주년을 맞아 히틀러의 비서와 부하, 친구, 친족, 심지어는 청년 시절의 하숙집 주인까지 히틀러의 지인 200명 이상의 인터뷰와 미공개 일기, 서한, 공식 문서 등을 정리한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2권 세트도 출간됐더군요. 비트겐슈타인 역시 탄생 130주년을 맞아《비트겐슈타인 평전》(리커버 개정판)이 새롭게 출간됐습니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연구가 중 한 명인 사우샘프턴 대학 철학과의 레이 몽크 교수가 비트겐슈타인의 일생을 20세기 초 유럽 사상사 속에서 하나의 연대기적 드라마로 소개한 작품입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흐름 속에서 꼼꼼히 재구성해낸 전기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죠. 흥미진진한 전기로서뿐만 아니라 철학 연구서로서도 손색없는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 연구자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추천되는 책 중 한 권입니다.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 두 사람의 탄생 130주년을 맞아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인물의 생애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는 역사 공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PS. 그러고 보니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역시 불과 일주일의 차이를 두고 출간됐군요! 탄생 130년이 지나서까지 이어지는 묘한 접점이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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