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데이 간증 후기들이 과연 진짜일까?
달리기, 마라톤, 러닝, 조깅 모두 내 30년 넘는 삶에
조금도 관련이 없던 단어였다.
달리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예전 꼬맹이 국민학교 1학년 시절(내가 6학년 때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운동장 조회가 끝나고 교실로 뛰어들어가다 주위의 시선을 받으며(쟤 뭐해?? 누구야??) 화단에 토를 했던 일로 역시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흑역사다.
이 일은 중고등학교 때도 몇 번 반복되었는데, 아슬아슬하게 등교시간에 맞춰 교문에 세이프 한 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비틀 화장실로 달려… 아니 걸어가서(이후는 다 예상 가능할 테니 생략).. 체력장의 오래 달리기도 괴로웠지만 그건 모두가 겪는 괴로움이고 등교시간 절박한 뜀박질(안돼도 되게 하는 학생 정신) 같지는 않았으니 뭐 나쁘지는 않았던 걸로 하자.
대학생 때는 도청에서 열린 작은 지역 행사에서 5킬로를 달려보고자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5킬로는 별거 아니지! 가깝지 않아?) 친구와 나갔다. 시작은 좋았으나 500미터를 넘기고는 친구에게 나 죽을 것 같아… 속삭이곤(또 속이 안 좋았지만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았다) 몇 분 앉아있다가 그 이후로는 아주 천천히 걸어 들어왔던 것이 이때까지의 나의 달리기 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래저래 달리기는 나와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가 없는 관계였다. 달리면서 즐거웠던 일이라곤 고등학교 때 점심 먹으러 급식소로 달려가던 기억 정도가 전부였던 내가 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걸까? 사실 일생을 달리려는 생각조차 없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바로 육아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육아보다는 달리기가 낫다. 뭐 이렇게 간단하게 줄여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둘째 출산 이후 몸무게가 15킬로가 늘었는데 5킬로만 빠지고 나머지 10킬로는 빠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너무 불공평한 세상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모에게 부탁드려 평일 오전 시간 동안은 둘째 애를 봐주시기로 했다. 그런데 나머지 3일간 탱자탱자 잠만 자는 나를 몇 달 계속 지켜본 이모가 어느 날 아침,
“너 이제 혼자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와서 돈 받고 별로 하는 일도 없어서 괜히 오나 싶어…”
라고 얘기하셨다. 나는 이 꿀 같은 혼자만의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부랴부랴 아니라고 나 이제 산책할 거야 외치며 근처 공원으로 거의 쫓겨 나오게 됐다.
나와서 며칠간은 그냥 공원 둘레를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 달리기가 살이 잘 빠진다는데.. 그러고 보니 런데이라고 내가 예전에 한두 번 했던 거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나서 다시 어플을 깔았다. 런데이는 몇 년 전에 한번 재밌을 거 같아서 시작했다가(항상 새로운 건 조용히 잘 시도해보는 게 내 특징) 왼쪽 발 아치가 쑤셔서 그만두고 필라테스로 전향했었다. 그때 당시의 필라테스 선생님이 몸이 불균형한 상태에서 뛰니까 발에 무리가 가는 거라고 이렇게 달리면 오히려 몸에 안 좋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근육이 너무 없는 상태에서 뛰어서 관절에 바로 무리가 갔던 듯하다. 하지만 이번에 시작할 때는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난 후라 체력도 약간 올라왔고 무엇보다 발목 운동(이라고만 말하면 지금 필라테스 샘이 기겁하겠지? 그거 발목 운동 아니거든요? 하실지도.. 다양한 자세로 열심히 포인, 플렉스를 반복하는 거, 발목 운동 아닌가요? 종아리 운동인가??)을 반복해서 예전보다는 다리가 좀 쓸만한 상태였다.
런데이 첫 회차를 무사히 마치고 어? 힘들지만 할 만 한데? 싶어서 필라테스가 없는 오전 시간마다 살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계획 세우기만 좋아하고, 도장 찍고 기록하는 거 좋아하고(초반만 좋아함), 새로운 거 시작하기 좋아하는 나한테 딱 맞는 시간 활용 운동이었다.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자유롭고! 뭔가 멋있고!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르면서 도장도 쌓여가고, 달리는 시간도 늘어나고, 말 안 통하는 아기와 너무 힘들 때는 퇴근한 남편에게 육아 바통터치 후 밤 공원을 달렸다.
달리기는 그 자체로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고, 달리는 도중은 너무 힘들어서 이걸 내가 도대체 왜 하러 나왔을까? 싶지만 바로 그 힘듦 때문에 아무 생각도 안 난다는 점(정확히 말하면 달리는 내내 언제 끝나지? 힘들다. 지금 몇 분일까? 이 생각만 계속한다)이 참 좋았다. 집도 아이도 잊어버리고 그냥 나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는 자유로움이 현재의 나에게 너무 잘 맞았던 것 같다.
은근히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고 사는 나는 달리기도 예외가 아니라서, 항상 집을 나설 때 내 복장 괜찮나? 잘 뛰지도 못하는데 너무 본격적이라 좀 웃길까 신경 쓰이다가도 달리기 시작하면 아 지금 내가 죽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뭔 상관? 하며 뛰게 되는데 그 느낌이 너무 즐겁다. 처음 밤에 뛰었을 때 날벌레가 코와 입에 들어올까 걱정되지만(그래서 처음엔 마스크를 쓰고 뛴다) 달리고 있으면 너무 힘들어서 벌레가 먹히든 새가 먹히든 아무 상관없어지는 원효의 일체유심조 모드가 되는 나 스스로가 너무 재밌다. 달리고 나면 끝까지 한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운데 이런 내 모습이 너무 기쁘다. 그래서 계속 달리게 되었다.
마지막 달리기 시간, 정말 30분을 달리고 나서 숨을 고를 때 들려온 성우분 멘트에 눈물이 핑 돌았다. 멘트는 다들 궁금하겠지만, 직접 달리고 들어 보시라고 비밀!
이게 나의 달리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