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와 함께 10km 마라톤 도전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3km도 허덕거리던 내가 점차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5km를 나름 무난하게 뛰게 되자 슬슬 마라톤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km는 지금도 항상 뛰고 있는 공원에서 다양성 있는 코스로 구성해서 뛸 수 있는데 10km는 시간도 길고(내 속력으로는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코스를 반복해서 돌아야 되기 때문에 좀 재미가 없어서 아예 판을 깔아주는 마라톤에 나가봐야겠다 싶었다.
이런 내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일본의 에세이 만화가 다카기 나오코의 마라톤 책이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순식간에 한 권을 다 읽었다. 달리기 초보였던 작가가 우연하게 달리기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친구와 함께 마라톤을 참가하고 끝내 풀 마라톤까지 뛰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는데, 그 과정이 나와 겹쳐 보이기도 하고 마라톤에 참가하는 모든 과정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 마라톤 1년 차, 2년 차, 해외 마라톤 이야기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너무 좋아서 결국 따로 구입해서 집에 두고 있다(로컬 마라톤 이야기도 있다던데 왜 번역본이 나오지 않는지 안타까운데 예전에 나온 책들이라 새로 번역될 거 같진 않아서 슬프다).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로컬 마라톤(지역 마라톤; 주로 지방자치단체와 그 지역 체육회가 같이 주최하고 자치예산을 써서 특산물이나 관광지 등을 홍보한다)에 참가하는 부분들이었는데 거봉 마라톤에 참가하면 거봉을 먹고, 포도밭을 달리고, 참가 상품으로 한 상자를 받고, 끝난 뒤 주변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부분이 너무 재밌어 보였다. 그런데, 여기도 그런 지역 마라톤이 있잖아? 일단 가까운 김제부터도 매년 마라톤이 열리고 쌀을 상품으로 준다. 그리고 지금은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열리지 못했던 마라톤 대회가 우후죽순으로 열리고 있는 상황! 나라는 배가 순풍에 돛 단 듯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인터넷에서 마라톤 일정을 검색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육아 동지인 남편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대회에 같이 가든 혼자 가든 내가 뛰는 동안은 남편도 혼자 이리저리 뛰며 아이들을 봐야 하므로.
시작하기 전 올해 참가할 마라톤을 고르며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좀 더 일찍 마음먹었으면 더 많은 대회에 나가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도 남지만, 달릴 수 있는 실력이 된 게 바로 지금인 것 같으니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다. 실력이 안 되는 데 참가했으면 고통스러운 기억만 받고 그만뒀을 수도 있으니까. 다짐은 다음과 같다.
1. 전라북도의 지역 마라톤에 참가한다.
왜 전라북도냐 묻는다면 일단 가까우니까. 아마 혼자 다닐 일이 많을 것 같은데 대충이라도 몇 번 가본 지역에 가는 게 심리적 안정에 좋을 것 같고, 가까운 거리라면 뭔가 이 달리기는 아니다(?) 싶을 때 바로 도망쳐오기에도 좋으니까. 혹시 너무 빠른 사람들만 모여 내가 눈에 띌 거 같은 분위기면 바로 내뺄 수도 있다.
2. 거리는 10km를 달린다.
왜 10km냐 묻는다면 그게 지금 내가 달릴 수 있는 최장거리이기 때문에. 몇 번 달려보면 하프도 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시점에선 그런 생각은 없다. 계속 달린다면 다음 해 중반쯤에나 생각해 보지 않을까 싶다. 뭐라고 하더라.. 더 나아지고 싶다는 향상심? 나에게 그런 건 없다. 그냥 안전하게 즐겁게 부상 없이 오래 뛰어야지. 그리고 하프를 뛴다고 해도 기력이 없어서 구경도 못하고 뭘 먹지도 못하고 퍼져버릴 것 같다.
3. 끝난 후 그 지역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
내가 요즘 마라톤과 달리기 관련 유튜브를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주로 마라톤 참가 영상들), 마라톤 TV라는 곳에서 말하길, 지역 마라톤은 각 자치단체에서 지역을 홍보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써서 유치하는 행사라고 한다. 그런데 마라톤이 끝난 후 그냥 제공하는 식음료만 먹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그냥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사실 절절하게 이해가 된다.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 지역민들에게는 큰 이득이 안되니 그냥 돌아가지 말고 밥도 먹고 특산물 같은 것도 사고 돌아오자는 멋진 이야기였다(딴 말이지만 여기서 소개한 청도반시 마라톤은 나도 가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마음까진 아니지만 나도 겸사겸사 그곳에 갔으니 그 지역 특산품과 먹거리를 즐기고 돌아오고자 마음먹었다(다카기 나오코가 책에서 마라톤 후 벌인 음식잔치도 영향을 줬다.)
4. 마라톤의 특징, 코스의 특징, 지역의 특색들을 담아서 기록한다.
살아오면서 흔치 않은 건강한 결심을 하고 건강한 운동을 하는 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고 언젠가 예상치 못하게 또 그만두거나, 중단할 일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때 이 기록이 있다면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았었지 하고 추억하기에도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5. 가능하다면 다음 해에도 참가하여 즐겨본다.
위에서는 그만둘 수 있다는 가정을 했지만 사실 계속 꾸준히 달려서 다음 해에도 이 기록을 보고 아, 이 마라톤은 이랬었지. 다시 참가할 땐 이걸 해봐야겠다 뭐 이런 식으로 참고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더 나아가자면 나의 이 글이 지역 마라톤에 참가해보고자 마음먹은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겠지. 결심한 김에 브런치에 작가 신청도 했다. 누군가 보고 있다면 더 열심히 기록하지 않을까 싶어서. 마라톤에 참가할 여러분, 여러분도 저도 모두 파이팅입니다. 일단 올해 신청한 마라톤들까지라도 잘 달리길 빌어주세요!
인터넷에는 참 많은 마라톤 대회들 일정이 있었다. 런데이 같은 비대면 마라톤부터, 브랜드가 주최하는 대회(유명 대회는 신청이 빨리 마감된다), 나이트런, 좀비런 같은 이색 행사, 춘천마라톤 같은 대형 대회(서버가 다운된다고도 한다)까지. 만약 나와 같이 대회를 처음 검색하는 사람이라면 ‘마라톤 온라인’에서 대회 일정을 보길 추천한다. 좀 작은 이벤트 대회나 걷기 행사 등은 빠질 수도 있는데 일단 자치단체나 체육회가 매년마다 진행하는 마라톤은 빠지지 않고 올라와서 검증된 대회를 확인하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