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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석 Dec 31. 2020

확신은 없지만, 용기는 생겼다.

상쫄보 사장님의 2020 결산

2020년이 끝나간다. 딸내미의 크리스마스 깜짝쇼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이제야 한해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작년에는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그래도 분기에 한번 즈음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마저도 더 멀어져 연초에 쓰고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결산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글로 뱉어내는 과정은 마음의 환기와도 같아서 때가 되면 몹시 마려워(?) 진다. 자- 올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다짐해보자.


미리 예고하건대 이번 글 또한 대단한 인사이트는 없을 예정;; 코로나로 더욱 시야가 좁아진 정글에서 안정적으로 살아남는 법에 대한 명확한 답은 올해도 없었다. 확신에 차 선명하게 던져지는 많은 전문가들의 메시지들과는 달리, 나는 그저 계속해서 안갯속을 겨우 한 걸음씩 더듬거리며 내딛고 있는 쫄보일 뿐이다. 어쩌면 명확한 답이란 것은 없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무튼 쫄보 사장님은 그 신기루를 꿈꾸면서 올 한 해도 살아남았다다더라.. 가 팩트인 듯!?  


1인기업을 졸업하며, 오른팔 장착!


J의 자리를 만들면서 큰 천포스터 붙여주고 혼자 좋아했...

올해 첫 다짐글(링크)과 같이 나는 1인기업을 졸업하기 위해 1월에 바로 채용공고를 올렸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았는데, 대표 혼자뿐인 회사에 지원을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겠더라. 그렇기에 공고를 올릴 때 많은 고민을 담아 올렸다. 대단한 연봉을 올린 것도, 베일듯한 칼퇴근을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이 작은 회사에 지원하는 젊은 청년에게 일말의 막연함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이고, 추구하는 일의 방식,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구구절절 썼다. 결론적으로 무려 4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예상외의 흥행(?)에 아주 신중하게 고민하여 10여 명의 면접대상자를 선발했다. 지원자들에게 지원 계기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구인공고에서 '안심이 되었다'라고 했다. 의도가 통한 것 같아 기뻤다. 그렇게 첫 번째 직원 J가 합류하였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혼란스러웠지만 우리 회사 '원포인트'는 1년 내내 계속 분주했다. J는 정말 큰 역할을 우직하게 해내었고,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회사의 각을 잡아 나갔다. 덕분에 원포인트는 2019년 대비 163%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며 2020년을 마감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회사 종무식에서 나는 연간 매출 그래프를 띄워놓고 이 63% 성장의 성과는 온전히 J의 활약 덕분이라고 독려해주었다. (Feat. 성과급)

우리끼리 종무식에서 리뷰했던 슬라이드. 19년까지는 혼자. 20년부터 함께. 어려운 시기에 참 다행스러운 성장을 기록했다.


위기 속 찬스, 왼팔도 장착!


쫄보 사장인 나는 J를 뽑을 때 재무적 안전선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잡고 있었다. 누군가의 청춘을 책임진다는, 실은 좀 과할 수도 있는 책임감에 최악의 수를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나는 일이 전혀 없어도 1년을 버틸 수 있도록 회사의 곳간을 채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J가 합류하고 나니 자연스레 일의 Capa가 상승했고, 그 여력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해나가면서 생각했던 재무 안전선 한참 위로 더 두터운 재정을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 또한 코로나 여파로 인한 각종 채용 관련 지원 사업들이 등장하면서, 이참에 그럼 팀원 하나 더 가자!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첫 직원이 어려웠지, 두 번째 직원에 대한 결단은 조금 더 쉬웠던 것 같다.


지원사업으로부터 인건비 1인 지원 TO를 확보한 추석 즈음부터 2차 채용을 시작했다. 채용 공고를 3번 정도 기한을 연장하며 긴 시간 동안 지원을 받았고, 이번에는 약 25명의 지원자가 모였다. 채용과정 자체가 길어졌던 이유는 채용 직원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J와 함께 총 3명의 이상적인 합이 나올만한 친구를 찾는 것에 초점을 두려니 오히려 더 어려운 면이 있었다.


J는 참 일사천리 쉬웠는데, 두 번째 직원은 쉽지 않았다. 새 책상에 앉을 주인을 만나기까지 제법 우여곡절이 있었다. 고민해서 뽑은 A는 되는 줄 알았던 지원사업 자격여건이 충족되지 않아(졸업증명 불가) 이틀 만에 떠났고, 들어와서 바로 던져준 첫 프로젝트에서 상당한 퀄리티로 나를 흠칫 놀라게 했던 B는 다른(더 큰) 디자인 회사의 합격통보에 일주일 만에 떠났다. 사람 뽑고 관리하는 게 엄청 스트레스라는 주변의 조언들에 콧방귀를 뀌었던 나는(J는 정말이지 그러지 않았으므로!) 이번에는 실로 통감을 하였다. 그리고 그 끝에 지금 호흡을 맞추고 있는 S가 11월 중순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2명이나 회사를 거쳐갔고, 세 번째 친구가 안착하게 되었다. 요 무렵 제법 끙끙 댔었다.


이미 동종업계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었던 S는 오자마자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특히 J가 나의 작업 방식과 톤 앤 매너를 그대로 흡수하며 성장하는 친구라면 S는 약간 다른 스타일의, 하지만 높은 완성도로 작업을 손 빠르게 해내었다. 이것저것 일부러 다른 미션들을 줘봐도 무엇이든 곧 잘 해내었다. 연말에 다가오면서는 이제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초안을 받아 들면 어떤 팀원에게 주어야 이상적인 아웃풋이 나올 수 있을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J와 S의 캐릭터는 사뭇 달랐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원포인트'의 작업 스펙트럼을 넓히는 관점에서는 이상적이라는 판단이 든다. 드디어! 나의 오른팔, 왼팔이 생긴 것이다.


다음 계단에 오를 준비


아직까지 나는 국대급 노비 생활을 하며 일을 해대고 있지만! J와 S가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조금씩 시간의 틈이 생기게 되었다. 그 덕분에 회사 홈페이지를 정비하고, 대행사를 만나 광고 집행을 테스트해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미뤄두었던 각종 인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원포인트는 디자인진흥원에 공식 등록된 시각디자인 전문회사이자, 기술역량 우수기업인증, 출판/인쇄업 신고, 디자인 직접생산인증을 확보한 회사가 되었다. 이 모든 인증의 과정은 공공입찰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인데, 그토록 말로만 떠들었던 공공영역에서의 디자인 프로젝트 수주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막상 해보니 그다지 시간이 걸릴 일도 아닌데, 이만큼도 여유 없이 살았다는 게 참 우스울 지경)

리뉴얼된 원포인트 프레젠테이션 홈페이지. 제안서, 발표, 피치덱, 입찰 준비를 함께 해보아용!


그리고 드디어 '매출 분석'이라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일에 파묻혀 있었기에 나는 뒤를 돌아볼 새 없이 항상 일정에 쫓기는 신세였다. J와 S가 나의 분신들로서 일을 많이 가져가 주면서, 지난 한 주간 정도 나는 과거 수년간의 매출 데이터를 펼쳐놓고 방향성을 살필 수 있었다. 4년 동안 변화해 온 카테고리별 매출의 비중과 몇 가지 필터를 거쳐보니 영업의 방향성이 명확해졌다. 2021년은 총 4가지 방향에서 영업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 내용과 방향을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제 역할을 찾고자 집중하는 J와 S가 정말 든든하고 고마웠다.


확신은 없지만 용기는 생겼다.


올해를 지나오며 야무진 친구들을 만나 작고 단단한 팀을 만들 수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여전하다. 많은 사업자들이 크게 어려웠던 올해를 준수한 성적으로 끝낼 수 있어 천만다행이긴 하나, 어떤 면에서는 운이 상당히 많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명확한 예측인데,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미래가 명확할  없다는 것만 계속 직면 해 왔던 것 같다. 그러니 되는대로 오늘에 집중하고, 집중하고, 또 집중하면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계속 해냈던 것. 계획적인 템포 조절 따위는 불가능한, 할 수 있다면 무조건 해낸다! 의 느낌?


S가 오기 직전. 엄청난 전쟁 속에 있었던 원포인트 프로젝트 스케쥴..토닥토닥

그런데 이것이 또 묘하게 몇 년 반복을 해보니 '아 어차피 계속 이런 거라면, 마찬가지로 계속 솟아날 길도 있겠구나. 지금까지 그랬듯.'이라는 생각은 든다. 직원을 뽑고 나면 동반되는 각종 세금과 고정지출, 예상치 못한 비용 등등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또 어찌어찌 된다. 그리고 올해는 몇몇 프로젝트에서 마주치게 된 동종업계의 탑 티어 회사와 마주칠 일들이 있었는데, 내막을 살펴보니 대단치 않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래.. 어차피 다 똑같은 거였어. 너무 쫄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래서 내년을 들어가는 지금은 마음의 경직이 조금 풀렸다. 처음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던 요 근래의 시간 덕분에, 회사의 수익 파이프라인을 늘리려는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본 것이 위안도 되었고.(물론 맘처럼 안될 거란 것도 이미 알겠고ㅎㅎ) 적어도 이제는 테스트 해 보고자 하는 몇 가지 방향이 생겼으므로, 그게 잘되든 안 되는 의미는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쫄보 치고 우쭐한 용기가 생겼다. 


중요한 것은 변화와 시도


올해의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니 '변화와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5년 말 퇴사하여 뛰쳐나온 정글에서 1인기업으로서 4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내며 꾸준히 매출을 늘려온 것도 충분히 셀프토닥 할만한 이야기지만, 올해는 환경적으로 큰 변화를 시도했었다는 것이 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부딪히며 마주한 새로운 숙제들은 막연한 공포 속에 존재했을 때와는 달리 어렵지 않게 길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그릇이 한 뼘 즈음 커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변화를 만들고, 변화 속에서 길을 찾아보고, 살짝 한 발자국 나가보고. 그게 나 같은 쫄보에게는 용기로 치환되는 커다란 동력이다. 미래는 어차피 불투명하고, 확신할 수 없는 돌발 이슈들이 끝도 없이 터지는 카오스지만 언제나 길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올해는 그것이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회사, 원포인트


종무식에서 우리를 이 챕터의 제목처럼 정의하고 최고의 용병 집단이 되어보자고 팀원들에게 이야기했다. 비즈니스란 것은 결국 가치교환이고, B2B던 B2C던 간에 한쪽이 다른 편에게 제안을 하는 것이 모든 비즈니스의 시작이다. 물건을 팔 때도, 앱을 출시할 때도, 공장을 세울 때도, 투자를 받을 때도, 입찰을 따낼 때도 모두 동일하다. 우리 회사 원포인트는 그 제안의 시점에 가장 적절한 설득력을 갖는 비쥬얼 아웃풋을 만들어 주는 전문가가 될 것이다. 그것은 제안서가 될 수도, 브로슈어가 될 수도 있다. 데모데이 피치 덱도, 회사소개서도 포함된다. 그저 시각적으로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자료의 최종 수신자 관점에서 친절하게 돕는 것이 비즈니스를 위한 디자인 핵심임을 우리 팀원들에게 강조했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해나가야지. 그래서 내년은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잘해 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올해도 나님, 참 수고 많았다! 그리고 원포인트의 미래를 믿고 기꺼이 이 코딱지만 한 회사에 합류해준 우리 팀원들도 참 고맙다.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시간 속에 언제나처럼 나를, 가족을 지탱해준 아내도 정말 고맙다.


내년엔 더 잘해보자! 안녕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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