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프리랜서라고 해야하나 어쩔라나
나는 명목상 프리랜서다.
회사는 나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집밖으로 출퇴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정적인 일은 없다. 간간히, 아주 이따금씩 불시에 들어오는 영상 번역일이나 도서 검토일을 한다. 즉, 먹고살만한 돈은 벌지 못한다. 그러니 프리랜서라고 하기엔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업무 상 메일에서나 통화에서 나는 번역가님 혹은 역자님이다. 샘플 테스트를 통과하고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영상 번역 회사만 무려 세 곳이지만, 일이 생각처럼, 기대처럼 들어오지는 않는다.(프리랜서 일이란 들어올 땐 한 번에 몰려오고 안 들어올 땐 불안하리만큼 안 들어온다는 그 법칙을 믿고 기다리고 있다) 영상 번역이 내가 꿈꾸는 번역가의 일은 아니지만, 수요가 많은 분야이기도 하고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출판 번역가로 데뷔하기 전까진 돈은 어떻게든 벌어야 하니까. 기술 번역 일도 해보고 싶었으나, 번역 전용 소프트웨어가 없거나 다루지 못하면 샘플 테스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아니면 인하우스 번역가처럼 내근직을 지원해야 하는데, 어쩐지 출퇴근의 벽을 쓰러뜨리는 일이 이제는 쉽지가 않다.
번역가 중에서도 출판 번역가가 되겠다는 건 이전의 경력에서 비롯된 욕심에서였다. 나는 뭐가 됐든, 원하든 것이든 아니든 주어진 건 치열하게 어떻게든 해내려고 했고, 승패와 별개로 그 노고를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획 방향을 튼튼하게 잡아도 광고 꽃은 크리에이티브라 했고, 캠페인 성공의 영광은 광고주의 몫이었다. 나는 그저 TVCF 홈페이지에 만든 이 AE에 이**이라는 이름만 남길 뿐이었다. 결국 나의 몫을 아는 사람은 업계 사람들뿐이었다 (심지어 광고가 성공적이었다는 전제하에)
이름. 포도알 스티커가 내겐 이름이었다.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돈과 지위는 이름 뒤에 자연히 따르리라 싶었다. 그리고 퇴사 후 나는 그 이름의 욕구 표출구를 책에서 찾았다. 책에는 역자의 이름이 남는다. 역자를 확인 안 하는 독자들이 더 많겠지만, 광고를 만든 AE보다야 더 많이 봐주지 않을까. 그리고 때마침 나는 번역의 길로 다시 들어서고 싶었다. 그 외에 번역을 하게 된 이유는 다른 번역가들과 비슷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났다.
작년 한 해는 아카데미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입문반, 심화반, 실전반 순서대로 넘어갈 때마다 수업이라는 핑계가 하나씩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면서 정신없이 보냈다. 11월 종강 후부터 지금까지 샘플 번역도 참여해 보고, 도서 검토서도 다섯 번 작성해 봤지만, 출판 번역가가 되기 위한 내 현재 위치가 어디쯤인지 모른 채 다음을 막연히 기다리고 준비할 뿐이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묻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물으면 머뭇거린다. 뭐라고 해야 하지.
어쩐지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게 된달까. ‘영상 번역일 하면서 출판 번역가 데뷔 준비하고 있어.’ 정도면 되려나.
번역가는 맞는데, 아니야. 번역가 맞지. 맞지?
머지않아 ‘책 번역하고 있어.’라고 말할 날이 올 거야.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