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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경 Apr 18. 2023

나의 라면 부흥기

어차피 먹을 거라면 (3)

비가 와서 그런지 오전 10시라기에는 방 안이 너무 어둡다. 태양이 태업이라도 하는 건지. 덩달아 생체시계까지 고장 난 것 같다. 매일 달리던 트레드밀 4km를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밖에서 달렸더니 몸이 납덩이같다. 건강 해지려고 운동을 하지만, 운동을 하면 몸에 피로가 쌓인다. 


냉동실 들어가기 전 말랑말랑한 식빵 한 쪽에 땅콩버터를 바르고 커피를 한 잔 마신 지 네 시간쯤 지났을까. 배가 고픈 건 아닌데, 낮 2시라는 숫자만 보면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일종의 강박감이 든다.


일단 배가 고프면 가장 먼저 하는 고민이 있다.


'배달 시킬까?' 

'샌드위치? 닭강정? 떡볶이?' 

'오후 2시면 활동 가능한 시간이 한참 남았으니 뭘 먹어도 죄책감이 덜 들지 않을까?'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배달 앱조차 켜지 않는다. 그저 머릿속으로 매일 기계적으로 떠올리는 루틴일 뿐.


'다 돈 낭비야.'


그래서 라면을 먹기로 했다. 내가 라면을 요즘처럼 자주 먹게 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나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았다.


라면은 내게 감정 음식에 가까웠다. 라면 1개에 함유된 나트륨양 1,800~1,900mg이라는 숫자의 힘은 내게 너무나 강력했다. 물을 끓이는 순간부터 나는 내 몸에 아주 못할 짓을 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다 보니 1년에 라면을 끓여 먹는 횟수가 손에 꼽힐 정도였는데. 요즘은 봉인이라도 풀린 건지, 라면이 떠오르면 라면을 끓여 먹는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먹고 싶은 거 먹자는 건 아니다. 특정 브랜드 라면에 꽂힌 것도 아니다.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왜 갑자기 정성스레 끓여 먹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토마토 라면을 끓여 먹기 시작한 이후부터인 것 같다. 일종의 터닝포인트.


숙취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 아침 처음으로 토마토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그 이후로 라면의 포지셔닝이 아예 달라진 듯했다. 라면은 꽤 괜찮은 음식이구나. 이제는 '땀 좀 빼면서 기운 좀 차리고 싶다' 싶으면 토마토 라면을 끓인다. 



재료

라면 1봉지, 방울토마토 8개, 양파 1/2개, 청양고추 1개, 다진 마늘 0.5T, 식초 1T


만드는 법

냄비에 물을 500ml 정도 받는다. 라면 봉지에는 보통 550ml라고 되어 있지만, 토마토에서 수분이 나오기 때문에 500ml가 적당하다. 방울토마토 8개를 반으로 잘라서 냄비에 넣고 같이 끓인다. 물이 끓으면 수프와 라면을 넣는다. 종종 썬 청양고추 1개를 넣고 다진 마늘 0.5T도 넣고 센 불에 끓인다. 불을 끄기 직전에 식초 1T를 빙 둘러서 넣어 라면을 완성한다. 




별거 없어 보여도 재료 하나 제각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 한 가지만 빠져도 맛이 섭섭해진다. 특히 산미를 아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저 식초 한 숟갈 때문에 토마토 라면을 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물 속 토마토가 뜨거워서 그런 걸까. 유독 토마토 라면을 먹으면 땀을 흠뻑 흘린다. (심지어 3, 4월 날씨에도 토마토 라면을 먹으려면 선풍기가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먹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매운 걸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또 라면 먹게? 요즘 자주 먹네?" 


라면 봉지를 부엌 조리대에 탁 내려놓는 소리를 들은 엄마가 말한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국물보다는 자작 자작한 게먹고 싶으니 토마토 라면 대신 볶음 라면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대신 지난 주말에도 진라면으로 토마토 라면을 끓여 먹었으니, 오늘은 마음속 한편에 남은 죄책감에 못 이기는 척, 건면으로 만들어 먹어야지. 비록 건면이라는 걸 무색하게 만드는 양념장이지만, 어차피 한 끼 먹는 거 맛있게 먹기로. (양념에는 다진 마늘, 파, 건더기 수프, 분말수프 2/3, 식초 1T, 기름 3T, 땅콩버터 1T이 들어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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