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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경 Jun 14. 2023

가지가지하네

어차피 먹을 거라면 (5)

가지는 여름 채소다. 사계절 내내 구할 수 있는 식재료 중 하나라 제철 채소라는 말이 무색하긴 하지만, 어쩐지 탱탱한 껍질 속 풍부한 채즙을 떠올리면 여름 계절에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볶은 가지, 튀긴 가지, 절인 가지, 스테이크처럼 구운 가지, 계란물에 부친 가지 등. 다양한 가지 요리 중에서도, 나는 가지 파스타를 가장 좋아한다. 일명 '여름 채소 가지로 만든 일본식 가지파스타'. 몇 년째 믿고 해 먹는 유튜버 혜니쿡레시피다. 토마토나 오일 베이스가 아닌 간장, 액젓, 식초 베이스의 파스타라니. 이보다 더 여름에 걸맞은 파스타가 있을까.


엄마가 사다 놓는 가지는 항상 세 개씩 비닐에 담겨있다. 꼭 세 개라서 ‘한 개만 쓸까? 아냐. 가지는 요리하면 숨이 줄어서 모자랄 텐데.. 하지만 두 개를 쓰면 하나만 남아서 그건 그거대로 애매하고..’ 고민하지만, 그래, 모처럼 먹는 파스타니 두 개 쓰지 뭐. 가지 두 개를 깨끗이 씻는다.


가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썬다. '서걱'하다가 '푹신'하게 '댕강' 잘리는 느낌이 좋다. 힘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대로 슥슥 잘리는 게 마치 내가 칼질을 굉장히 잘하는 느낌이랄까. 가지 파스타의 핵심은 가지를 둥글게 돌려가며 써는 것이다. 길쭉하게 썰면 소스가 잘 스며들지만, 둥글게 썰면 씹을 때 가지 특유의 채즙이 입 안 가득 느껴져서 훨씬 더 좋다. '이렇게 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썰어도 괜찮다. 어차피 금방 숨이 죽는다. 이제 차근차근 레시피대로 요리를 한다.



재료

가지 2개, 대파 반-한 단, 청양고추 1개, 마늘 3톨, 파스타면

소스: 간장 2 숟갈, 참치 액젓 1 숟갈, 올리고당 1 숟갈, 식초 1 숟갈, 후추 약간


만드는 법

필요한 소스를 한데 섞어 미리 만들어두고, 파스타면을 삶을 물을 끓인다.

파와 청양고추를 쫑쫑 썰고 마늘 세 톨도 슬라이스 한다. 이쯤 되면 물이 보글보글 끓을 테니 파스타면을 한 줌 넣고 삶기 시작한다. 그러면 한쪽에서는 본격적인 요리 시작.

기름을 두른 팬에 파기름을 내듯 파를 볶다가 슬라이스 마늘도 넣고 휘젓는다. 어느 정도 볶아지면 청양고추를 투척. 소금으로 간을 살짝 해준 뒤 가지를 넣고 중불로 올려준다. 살살 볶아도 충분히 가지가 익기 때문에 슬슬 저어주듯 재료를 한데 볶는다. 이제 면수 반국자를 넣고 자글자글해진 팬 위로 맨 처음 만든 소스를 붓는다. 서서히 숨 죽은 가지에 소스 간이 배도록 도와준다. 삶은 면을 팬에 넣고 열심히 '팬 치기'를 한다(단, 팬 치기는 꽤 요란스럽고 팬 바닥이 상할 수도 있으니 엄마 모르게 살짝만 해볼 것) 이제 팬의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열심히 볶는다.

어느 정도 다 됐다 싶으면 불을 끄고 후추를 툭툭, '산미'가 좋다면 식초를 한 숟갈 빙 두른다. 이제 접시 위에 담고서 깨를 뿌리고 구운 김을 길게 썰어 올린다. 집에 구운 김이 없다면 조미김을 쓸 때도 있는데, 대신 조미김을 쓰려면 중간중간 소금 간을 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혜니쿡 조언대로 조미김보단 구운 김을 추천. 마지막으로 계란 노른자를 가운데 올려주면 끝.


*레시피 출처: 혜니쿡의 가지파스타


'그래. 이거지.'


맛이야 보장된 레시피지만, 가지 파스타는 어떤 면을 쓰느냐가 꽤나 중요해 보인다. 집에 남은 면이 페투치네면 뿐이라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특유의 텁텁함 때문에 얇은 면이 더 어울리는 듯싶다. 가지 파스타는 산뜻해야 하거늘. 그래도 포크로 면을 열심히 말고 입에 넣기 전에 굵직한 가지를 하나 쿡 찍어서 함께 먹으면 입안에서 뿌드득 터지는 가지의 식감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오로지 가지만이 선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다.


내게는 가지만한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없지만, 몇몇 사람들에게 가지는 불호인 식재료다. 오죽하면 대규모로 온라인 게임이 업데이트되거나 스트리머의 콘텐츠가 재미있고 즐길 거리가 다양하면 '제육볶음'이 나왔다고 하고, 반대로 콘텐츠가 부실하면 ‘가지무침’이 나왔다고 하겠는가.


쏜 맛과 향 때문에 싫어하는 오이와 달리, 사람들은 물-컹하는 식감 때문에 가지를 싫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그 물컹함도 빛을 발하는 요리가 있다. 버무린 가지가 싫다면 바삭함을 곁들일 수 있는 튀긴 가지를 먹어도 보고, 그래도 거부감이 든다면 통째로 구워서 식감 대신 가지 본연의 담백한 맛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물론, 억지로 싫어하는 걸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동안 오해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뭐든 오해란 풀리면 좋은 거니까.


그래도 이 설명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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