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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경 Dec 09. 2021

코로나 시대의 퇴사

8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인 뒤라 다행이었다. 여름엔 사무실만큼 시원하고 쾌적한 곳은 없으니까. 우발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봄이 오기 전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코로나로 거래처들의 연간 예산은 삭감되었고, 어쩔 수 없이 예전보다 더 많은 몫의 일을 수주해야 했다. 거기에 내로라하는 회사들도 사정이 어려우니 너도 나도 경쟁 입찰에 참여하면서, 내가 있던 회사처럼 몸집이 작은 집단의 승산은 점차 낮아졌다. 그럼에도 회사는 성장을 위해 투자를 명분으로 사세를 확장했고, 규모 대비 높은 개인 당 매출 목표를 요구했다. 그것이 의지치라 할지언정 별 수 없이 채찍질을 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건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유지형 몰입’의 인간이었다. 카드값, 적금 등 경제적인 이유로 직장에 머물며 언제든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사는 쪽이었다. 정시 퇴근조차 벅찬 일을 하며 퇴근 후 이직을 준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취업난에 대책 없이 그만둘 수는 없으니 일단 ‘버텨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쏘아 올린 업계의 위기는 나의 몰입을 위태롭게 흔들었고, 머지않아 더 이상 버틸 요량이 없었다. 실적, 성과, 평가 등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일 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처럼 보였다. 오죽하면, 빈자리 없이 꽉 찬 일요일의 카페에서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 마냥 울어 버렸을까. 더위에 모든 게 실증난 것이 발단이었지만, 출근할 다음날을 생각하니 그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다. 터져 버린 울음은 나에게 답이 되었고, 며칠 뒤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퇴삿날을 받아두고도 그렇다 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여행을 이야기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이라는 말과 함께. 물론 아예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 그것도 퇴사자의 여행이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렴 좋으니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떠올렸다. 해외로 나갈 수가 없으니 그와 가장 비슷한 형태의 체류를 염두한 것이다. 소형차 한 대를 빌리고, 제주 섬을 동서로 나눠서 절반씩 지낼 수 있는 숙소를 구하는 것이다. 혼자 지내기엔 다소 위험할 수 있으니 현대식 건물 위주로 머물고, 반드시 부엌이 갖춰져 있어 하루 한 끼는 제주의 것들로 요리해 먹는다. 채광 좋은 요가원에서 요가를 하고 해 질 무렵 오름을 오른다.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지금 가능한 가장 행복한 삶.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당분간 방구석 퇴사 인간으로 남기로 했다.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건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 위함이었으니. 물론 그러기 위해선 여행도 좋은 수단이지만, 그전에 나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다. 우선 나에게 집중할 ‘완전에 가까운’ 공간이 필요했다. 방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자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K의 생각에 도움을 받아, 방을 작정하고 가꿔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최소한의 것들만 남겨두고 서랍과 옷장을 비웠다. 세월의 때가 묻은 벽은 아이보리 색으로 말끔하게 칠한 뒤 기분 전환엔 이만한 게 없다는 빔 프로젝트를 설치했다. 침대와 책꽂이의 위치도 바꿨다. 그리고 위시리스트에 수개월 간 담아둔 원목 책상과 그에 어울리는 의자를 구매해 배치했다. 특히 책상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들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그 위에서 보내고 있다.


3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직접 만든 한 끼를 먹는다. 그 외 시간에는 운동도 하고, 매일 밤 러닝을 한다. 스무 살 이후로 이렇게 나에게만 집중하며 하루를 채워본 적이 있었나 싶다. 어쩌면 코로나 덕분에, 밖으로 퍼져 나갈 시선이 오롯이 내 안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제법 괜찮다, 코로나 시대의 퇴사도. 퇴사란 결국 그것이 언제든 그 무엇도 아닌 나를 존중한 선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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