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로 하여 수시 접수 기간이 대부분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 기간 동안 대학에 진학하고자 다양한 유형의 수시를 썼을 텐데요.
그러나 이번 수시에서는 여태까지의 수시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소개서'의 폐지입니다.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에서는 교육계에서 아주 논란이 될만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 자기소개서에 관련된 사건만 크게 기억나는 게 2가지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소개서를 일종의 '폐단'으로 여겨 지난 정권에서 이번 해의 입시방향성을 규정하면서 자기소개서를 폐지하도록 지시했지요. 그렇다면 이런 자기소개서의 폐지는 수시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고, 더 나아가서 입시 전반에는 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한 번 알아보도록 합시다.
수시에 미친 영향
자기소개서의 폐지는 굉장히 복합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물론 평가원 모의고사 이슈와 결합해서 말이죠.
학생부종합전형의 선호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자기소개서는 일반고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자기변호 수단이었습니다. 특목고의 화려한 활동이나 일반고 중 특성화고 등 내세울 것이 있는 학교에 대비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활동의 질을 자기소개서를 통해서 보완하고 활동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새롭게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소개서의 폐지로 인해 일반고 학생들이 자기변호를 할 수단이 더 이상 없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활동이 한 번 꼬이거나 활동의 질이 특목고 등에 버금가지 않는 학생들은 학생부종합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학생부종합전형의 기피가 예상되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쟁률은 거의 그대로 유지했거나 소폭 상승했습니다. 이는 자기소개서의 폐지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확신과 6월, 9월에 학생들이 응시했던 평가원 모의고사의 변덕스러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생부교과전형의 기피
반면, 자기소개서의 폐지로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학생부교과전형은 오히려 출원인원이 감소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학생부교과전형 대부분이 수능 최저를 두고 있기에 수시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도 한 것에 더하여 위에서 언급했듯 수능 난이도의 예상이 매우 어려워 학생들이 불확실성 때문에 학생부교과전형을 기피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차기에 실시할 수능이나 평가원 모의고사의 변칙성이 더더욱 심해진다면 수능 조건을 요구하는 전형은 점점 더 약세를 띄게 되겠지요.
논술전형의 선호
놀랍게도 논술전형의 선호가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이는 논술이 학생부 요소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은 데다가 정시 전형에 비하면 비교적 완화된 수능 조건을 요구하다 보니, '걸리면 대박'이라는 심정으로 논술 전형의 응시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자기소개서의 폐지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진 학생들이 논술 전형을 복권처럼 신청해 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시에는 무슨 영향을 끼칠까?
자기소개서의 폐지는 수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출처: 세계일보
자기소개서의 폐지로 인하여 논술전형의 선호도가 꽤 높아졌고, 이 때문에 수능 최저를 맞춰야 하는 학생들의 수가 증가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능 출원자 중에 실제 응시자의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참고로 작년에는 전체 출원자 50만 8천 명 중 국어 영역을 응시한 실제 응시자 수는 44만 6천여 명 정도였습니다. 실제 응시자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등급컷이 더 높아지고, 표준점수는 그만큼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점을 주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을 대비해야 하나요?
변화한 수시를 위해서 입시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명확한 진로 설정
이제 학생부 전반이 '자기소개서 없이' 반영되는 만큼 학생들이 선택한 진로와 그들이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한 활동들이 명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것을 줄여서 '전공 적합성'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러한 전공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떤 학과로 진학하고 싶은지, 또는 최소한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는 고등학교 3학년 동안 일관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던 학생이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 때 컴퓨터공학자로 진로를 변경한다면, 자기소개서가 있던 상황에서는 생물학자가 되기 위해 했던 활동들이 사실은 컴퓨터공학자로서의 꿈을 결정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자기소개서가 없는 현 상황에서는 그저 변덕처럼 여겨지면서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진로 또는 학과 설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첫 상담을 하기 전까지 다양한 진로 박람회나 체험 등 진로 탐색활동을 해서 명확하게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로(전공)에 부합하는 활동
진로를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진로에 대한 이해입니다. 자기소개서가 없어지면서 이러한 이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활기록부에 적혀있는 교과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정도밖에 없습니다. 물론 비교과 측면에서 적히는 창의적 체험활동 상황도 중요하나, 자율동아리 활동이나 진로진학활동에 대한 내용이 기재가 불가능하거나 대입에 미반영된다는 점은 비교과 측면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따라서 각 교과목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진로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활동을 해야만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컴퓨터공학과를 지망하고 있는 학생이 물리 교과목을 이수하면서 '파동과 정보통신 단원을 이수하면서 정보의 전달 과정에 대한 내용을 배우게 되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CPU의 처리 능력에 대해 더 깊은 탐구를 진행했다.'라는 뉘앙스의 활동이 적히는 것이 좋습니다.
진학하려는 학과 또는 학교에 부합하는 성적
물론 생활기록부 전반을 모두 평가요소로 삼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내신 성적의 중요도가 학생부교과전형보다는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말일뿐 학생부교과전형 못지않게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내신은 중요합니다. 다양한 입학처에서 내놓은 자료들, 그리고 입시소장님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전공적합성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학업충실도입니다. 즉, 단순히 활동을 많이 한 것보다는 실제로 우수한 성적으로 해당 교과목을 이수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학생들은 학생부종합전형을 생각하고 있더라도 적절한 성적을 거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주사위는 결국 던져졌고 우리는 적응해야만 합니다.
입시의 변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학생이라도 그 흐름에 자신을 맞추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의 폐지'라는 주사위가 던져진 지금 학생 여러분은 그 흐름에 맞춰서 어떤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야 할까 하는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만 합니다. 다음번에는 '킬러문항 없는 정시'에 관한 글로 돌아올게요.그 때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