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일찍 나가볼게, 다녀올게".
남편은 짧은 휴무를 보내고 출근을 했다.
2020년 7월부터 6개월간 남편은 육아휴직 중이었다.
저녁에 화장실에서 아이를 목욕시키던 어느 날, 남편은 변기에 앉아서 자신의 관심사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눈이 반짝거릴 정도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고기 굽는 게 너무 좋아. 다른 사람들이 내가 구운 고기를 먹으면 맛있다고 말해주는데 그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고 행복해".
"나중에 6-7시간 동안 걸리는 바비큐 요리도 해보고 싶어, 특별한 고기 요리를 하는 식당도 차리고 싶고".
결혼하고 나서 한참 후에 알았던 남편의 관심사. 바로 고기였다. 나는 고기 굽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잘 못 굽기도 하고 약간 노동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남편은 그 시간이 정말 좋다고 한다. 그 좋아함은 고기 유튜버들의 영상을 섭렵하며, 직접 스테이크를 굽는 스킬까지 터특하고 있었다. 뭔가 열정이 느껴졌었다.
언젠가는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년 8월, 남편은 퇴사를 했다. 개인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그 일을 3개월 정도 하던 차에 코로나로 인해 수입이 일정하지 못했고 잦은 출장으로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결국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모아둔 돈으로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고, 하루하루가 불안한 나날이었다.
무기력함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남편은 힘을 냈다. 누구보다 더 조급하고 불안하고 힘들어했을 텐데, 마음에 여유를 가지면서 다시 뭔가에 도전하고 있었다.
재취업을 위해 기업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은 지 4개월쯤 된 것 같다.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매일 자소서를 쓰고 기업을 서칭 하며 묵묵히 남편은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아무 연락이 없자, 우리는 다시 머리를 맞댔다. 남편이 지원하는 직무에서 남편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 길이 아닐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일을 찾아봐라 하는 메시지였다고 할까?
그래서 6월부터는 뭐라도 해보자고 지금 하고 있는 것만 붙잡지 말자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있는 동안 (지금은 퇴소했지만) 남편과 나는 다이어트를 할 거라며 집 근처 뒷산을 올랐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단골 정육점 팀장님에게 정육 일은 어떤지 물어볼까?, 그 일에 관심이 있었어". 남편은 말했다.
"정말 제대로 하고 싶은 거라면, 3년 동안 진짜 열심히 해봐!". 내가 대답했다. 3년을 해봐야 뭐든 알 수 있다는 것을 책에서 보았다. 그래서 일 하는 기간을 최소 3년이라고 말했나 보다.
좋은 생각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등산을 하고 부랴부랴 내려가서 정육점에 도착했다. 국거리용 고기를 사면서, 남편이 팀장님에게 평소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남편이 제대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보셨던 것 같다. 현실적 조언(급여, 근무환경, 근무시간, 업무강도, 비전, 힘든 점, 좋은 점 등)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남편은 정육점에서 일하고 싶은 의지와 각오를 단단하게 다지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팀장님이 성심껏 좋은 일터를 찾고 알아봐 주셨다. 남편은 직접 그 일터에 전화하고 찾아가면서 정말 내가 일할 곳인지 눈으로 보고 팀원들도 만났다고 한다.
여러 곳을 알아보았고 드디어 재취업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만장일치했던 곳이라서 더욱 감사하고 뭉클했던 순간이었다.
장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서서 일하는 환경이라 남편이 힘들 수 있을 텐데, 몸은 고되고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하지만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친다. 남편이 정육점에서 일한 후로 집에 맛있는 고기를 사서 가지고 오는데 밤마다 나는 신이 난다. (고기 걱정은 없을 것 같다)
도저히 감사하게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거의 1년간 펼쳐졌다고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왔을까. 남편이 얼른 잘 풀려야 하는데 생각보다 되지 않아서 힘들었던 순간은 늘 존재했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감사했던 순간인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남편에게 도움이 되었고, 그 덕분에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정육점으로 가는 남자. 남편을 힘차게 응원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를 위해 다른 게 또 있을 거야". 그거면 된다. '실직해서 정말 감사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원했던 건 이거야. 이것만이 답이었다"라고 말하면 모든 에너지가 '이것'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잘 안되었지만 다른 게 또 있을 거야"라고 말하면, 가능성으로 가득 찬 미래로 에너지가 옮겨 간다.
가능성 있는 여러 결과에 마음을 많이 열어놓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즉시 감사할 수 있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제이 세티 지음, 다산북스>